모로코 페스(1) - 색깔과 냄새로 느끼는 도시

페스의 골목길, 1,200년의역사가 살아 있는 도시

by 남쪽나라

전통호텔 옥상에 차려진 아침 상이 꽤나 푸짐하다. 이번 여행 중 제대로 먹어보는 아침상이다. 우리는 불편스럽게도 이 전통 호텔에서 하루 밤만 겨우 자고 오늘 다른 숙소로 옮겨야 한다. 계속 머물고 싶지만 예약이 꽉 차 더 이상 머물 수가 없단다. 어쨌든 우리는. 짐을 꾸려 맡겨놓고 페스의 메디나(구시가지) 구경을 나선다.

image.png 메디나의 푸른 문 입구

메디나 구경의 출발점은 푸른 문(Blue Gate), 푸른 타일이 입혀져서 불리는 이름이다. 민박집 안주인이 말하기를 현지인들은' Blue Gate'하면 못 알아들으니 반드시 택시 기사에게 'Bob Bou Jeloud' 가자고 말해야 한단다. 푸른 문 앞에는 아침부터 사람들로 붐빈다. 성문 안쪽으로 보이는 두 개의 높다란 탑은 Kairouine 사원의 미나렛인가? 우리는 성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벌써 긴장되기도 하고 살짝 흥분되기도 한다. 페스(fez)의 메디나(구시가)! 자그마치 1,200년의 역사를 가진 도시이다. 서기 789년에 아랍 정복자들에 의해 건설되었고, 지금까지 이슬람 신앙과 문화, 예술을 선도하는 모로코의 정신적 수도이다.


image.png 메디나 큰 골목

메디나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Kairouine대학(859년 설립)도 있고, 그 외에도 이슬람을 대표하는 유명한 모스크와 이슬람 신학교(Madrasa)등도 여럿 남아 있다. 그런데 페스의 메디나는 사람 한 두 명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미로 같은 골목길이 무려 9,400여 개에 달하기로 더 유명하고, - 우리는 그 악명(?)을 어제 이미 체험했지만- 골목의 길이 만도 장장 300km에 이른다. 이처럼 믾은 미로 골목길을 만든 이유는 순전히 방어 목적 때문이란다. 외적들이 침입해 와도 미로와 같은 좁은 골목길에서는 힘을 쓸 방법이 없지 않았을까? 메디나는 14세기에 동서교역의 중심지로서 최고의 번영을 누렸고, 한 때 인구가 20만 명, 공방 수 만해도 3500개에 달했다고 한다. 페스(fez)라는 지명도 '장인'을 의미한단다.


무엇보다 페스의 진정한 매력은 역사만 자랑하는 죽은 과거의 도시가 아니라, 지금도 생동하는 살아 있는 도시이기 때문이다. 페스가 어떻게 살아 있는지 보기 위해 이 유명한 메디나 골목길을 우리는 겁도 없이 무작정 들어간다. 지도 한 장만 달랑 들고. 실은 이 골목 안에서는 지도는 무용지물이다. 현지인들도 길을 한 번 잃어버리면 알라신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빠져나올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도 없으니 그냥 가보기로 한다. 이곳도 사람 사는 곳인데 설마 노인네 둘이 미아신세가 되지는 않겠지. 아직 아침이라 중심가 가게들이 하나둘씩 슬슬 문을 열기 시작한다. 말이 중심가이지 겨우 당나귀 한 마리가 지나다닐 수 있는 폭이다. 좁은 길의 양변에는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낡은 건물들에 옷가게, 가죽 공예품 가게, 도자기 가게 등이 늘어서 있다. 차를 담는 듯한 손 때가 묻은 커다란 주석 통도 보이고.


image.png 강력한 원색 골목길

우리는 미로에 들어 설가 봐 일단 중심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조심스레 걷다가 강렬하고 화려한 색깔에 유혹 당해 우리도 모르게 이상한 골목길로 들어서고 만다. 마치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사이렌의 노랫소리에 유혹당하는 뱃사람처럼. 아름다운 천을 내리 두른 골목도 있고, 원색 물감을 칠한 골목도 있고, 알룩달룩 원색 그림으로 장식한 골목도 있다. 이런 강력한 원색들은 다른 도시라면 결코 어울릴 수 없겠지만 페스의 메디나에서는 절대적으로 어울린다. 강렬한 색깔은 바로 메디나의 이미지이자 얼굴이기 때문이다.


image.png 수백 년 된 공방 골목

우리는 잠시 색깔의 유혹에 빠져 다른 골목길을 한동안 헤매긴 했지만 다행히 큰길로 다시 나온다. 이어 Rcif광장 쪽으로 꺾어 도니 거기엔 페스의 명물, 수백 년 된 공방들이 시간을 거슬러 사람들의 눈을 즐겁게 한다. 주석공방, 거울공방, 도자기공방, 등기구 공방 등 가지각색으로 없는 게 없다.. 몇백 년 전에도 메디나의 모습은 이랬겠지? 우리도 시간이 정지된 공방 골목들을 돌아보면서 페스다운 1,200년 역사의 숨결을 느껴본다. 페스의 메디나는 보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는 말이 비로소 실감 난다. 그리고 골목마다 공중 급수대도 보인다. 매우 낡고 작은 것도 있고, 타일로 아름답게 장식한 것도 있다. 메디나에 이런 공중 급수대가 무려 60여 개나 있다고 한다. 지금도 이처럼 잘 사용되고 있으니 당시 아랍인들의 뛰어난 토목기술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메디나 내의 현지인 식당에서 모로코 음식으로 점심을 먹은 후, 우리는 알라신의 도움(?)으로 무사히 미로를 빠져나와 간밤에 묵은 전통호텔까지도 잘도 찾아간다. 리어카꾼을 불러 짐을 싣고 미로 같은 골목길을 내려와 새로 예약한 숙소로 택시를 타고 이동한다. 대중교통수단이 많지 않은 이곳에서 택시는 시민들의 발이나 마찬가지 같다. 요금은 무척 싼 편이지만 탈 때마다 흥정을 해야 하고 택시 잡기도 쉽지 않다. 우리는 평소 택시를 잘 이용하지 않는 편이지만 모로코에서만은 어쩔 수가 없다. 자주 이용할 수밖에. 역시 전통 스타일의 새 숙소는 다행히 평지에 있고 푸른 문에서도 가까워 훨씬 더 편리하다. 전번 숙소만큼 고급스럽지는 않지만 방은 훨씬 더 크고 깔끔한 데다 숙박비도 싸다. 젊은 여직원 와하는 영어도 잘해 메디나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을 지도를 펼치고 일일이 추천해 준다.


Resized_20180430_165125_5479.jpeg?type=w773 이슬람 신학교, Madrasa Bou Inania
Resized_20180430_165429_1381.jpeg?type=w773 신학교의 화려한 Plaster 장식

와하의 추천이 없었으면 있는지도 몰랐을 가까운 거리의 이슬람신학교 Madrasa Bou Inania부터 먼저 찾아간다. 14세기에 지어진 이 건물은 비 무슬림들에게 공개되는 메디나 내의 유일한 이슬람 종교시설이란다. 약간의 입장료를 내고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놀랍게도 그곳에는 스페인에서 보던 아름다운 무데하르양식 건물이 떡하니 서 있다. 건물은 모스크도 겸했는지 높다란 미나렛도 있고 화려하게 조각된 plaster 장식이 알함브라나 알 카사르에서 보던 그대로다. 다음날 이런 양식의 건물들은 메디나 도처에 볼 수 있었는데 오늘 묶을 숙소 벽에도 새겨 저 있다. 모로코에서는 이런 무데하르양식은 매우 보편적이었던 것 같다. 모로코가 스페인에 영향을 준 건지, 아니면 스페인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건지? 내 생각으론 이슬람이 에스파냐를 지배하던 시절에는 지금과 같은 국경도 국가 개념도 없던 시절이다. 마그레브의 왕조가 에스파냐 땅을 같이 통치하던 시대였으니 모로코니 에스 파냐니 구별하는 자체가 무의미하지 않을까? 그들은 이슬람 지배 채 제하에서 동일한 문화와 예술을 공유했을 테니까.


우리는 메디나 구경은 대충 마무리하고 내일 오후 카사블랑카행 기차표를 사기 위해 택시를 타고 역으로 향한다. 역은 이중아치 구조를 형상화해 상당히 멋스럽다. 여기서는 인터넷으로 예약이 안 돼 역에 나가 직접 표를 사야 한단다. 우리는 일 등석 표 2장을 사고 택시로 돌아가는 도중에 언덕 위의 색다른 유적이 보이길래 방향을 돌려 그쪽으로 향한다.


20180430_182029.jpg?type=w773 메디나 성문밖 언덕의 무덤

택시 기사는 다행히 영어를 조금 할 줄 알아 유적에 대해 설명을 해준다. 이 유적은 14세기 마리니드(Marinid) 왕조의 무덤이라는데 정확히 누구의 무덤인지 아직 잘 모른단다. 택시를 잠시 세워놓고 유적이 있는 언덕 위로 오르니 페스 시내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저 멀리 초록색 지붕 유명한 Kairaouine 모스크와 대학 건물도 보이고. 택시를 다시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는 높고 기다란 성벽들이 메디나를 완전히 둘러싸고 있다. 오전에 둘러본 골목길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메디나가 거기 있지 않은가? 택시 기사는 신이 나 메디나에 성벽 출입구만 무려 70개나 된다고 자랑한다.


20180430_183610.jpg?type=w773 메디나를 둘러싼 높은 성벽과 성문 출입구

우리는 택시에서 내려 성벽들을 좀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 다가갔더니 성벽들이 정말 높고 위용이 대단하다. 보존상태도 매우 좋아 보인다. 그 앞의 넓은 광장에는 꽤나 많은 현지인들이 나와 성벽 밖으로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여유로운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다. 천 년 전에도 메디나 사람들은 이곳에서 똑같이 지는 해를 쳐다보았겠지! 우리도 그들 틈에 슬그머니 앉아 석양을 바라본다. 지는 석양 속에 어느 듯 어제의 불쾌했던 기억들도 사르르 녹아 버리고 우리는 페스의 색다른 정취에 우리도 모르게 물들어 가고 있음을 느낀다. 석양이 물들이는 노을처럼 붉고 그리고 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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