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로코가 바로 코앞인데 안 갈 수야 없지

처음 밟는 북아프리카 땅에서의 모로코식 열렬한(?) 환영식

by 남쪽나라


그동안의 무리한(?) 일정과 나이 탓인지 아내와 나도 컨디션이 영 별로이다. 우리는 어제 론도(Londo)와 이탈리카(Italica)로 가려던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하루 종일 쉬었다. 시내에 있는 Metrppol Parasol도 구경하고 주위의 카페에서 한가롭게 커피도 마시면서. 오늘도 우리는 숙소에서 고기도 구워 먹고 한가히 세비야 거리 카페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다가 오후 5시 비행기로 모로코로 건너간다. 비행시간은 불과 30 여분. 배로 가도 스페인 남단 타리파에서 모로코의 탕헤르까지 30분 밖에 안 걸린다고 하니 <건너간다>고 해도 무방하겠다.

스페인과 북아프리카대륙은 지브랄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지호지간이다. 양대륙의 최단거리는 불과 14킬로. 기원전부터 수많은 세력들이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또 유럽에서 아프리카로 건너 다녔다. 한니발이 그랬고, 반달족이 그랬고 이슬람이 711년 해협을 건너 700년간 에스파냐를 지배했다. 이처럼 스페인과 마그레브의 역사는 따로 생각할 수 없을 만큼 서로 밀접한데 스페인까지 와서 모로코를 안 가볼 수야 없지!


저가항공 라이언에어를 타고 페즈(Fez) 공항에 무사히(?) 도착한다. 라이언항공의 불친절과 불편함이야 익히 들었지만 싼 항공료에 정시에 도착까지 해주니 감사할 따름이다. 어쨌든 우리는 아프리카 땅을 처음 밟는다. 감개무량(?)하다. 출입국 신고서를 쓰느라 머뭇거리다가 20~30분 늦게 공항 밖으로 나오니 같이 탔던 승객들은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리고 공항 로비에는 우리 부부만 달랑 남았다. 공항은 비교적 크고 깨끗한데 왜 이리 한산하지? 승객은 안 보이고 청소부들만 옹기종기 앉아 있다.


안내 데스크의 여직원에게 부탁해서 숙소 주소를 아랍어로 번역한 후 공항 밖을 나서는데 기분이 좀 이상하다. 다들 시에스타를 즐기러 갔나? 아무것도 안 보인다. 택시도, 버스도, 승용차도, 심지어 사람들도. 마치 유령 공항 같다. 아내의 손을 꽉 잡아 보지만 나도 모르게 긴장된다. 몇 분을 그렇게 서 있는데 모로코 전통복장을 한 사람 몇이 다가와 뭐라고 말을 거는데 자기들 택시를 타라는 이야기 같다. 그중 한 명에게 아랍어로 된 호텔 주소를 내 보이니 150 디람을 내란다. 달달 외어 간 아랍 숫자로 100 디람에 흥정을 하고 캐리어를 끌고 따라가니 500미터쯤 먼 거리에 고물 같은 차 한 대가 서 있다. 당근 택시 표시도 미터기도 없다. 휴우! 그래도 얼마나 다행이냐? 이런 차라도 탔으니.


20180430_104713.jpg?type=w773 숙소 부근의 거리 모습

나이께나 든 택시 기사는 우리를 테우고 20여분을 가더니 사람들이 여기저기 모여 앉아 있는 어떤 후진 시장 입구에 차를 세우고 다 왔다고 우리더러 내리란다. 아무리 봐도 호텔이 있을 장소가 아닌 것 같아 여기가 아니지 않으냐고 아무리 손사래 쳐도 여기가 맞다고 빡빡 우기다가 우리 짐을 차에서 휙 내려놓고 가버린다. 한 마디로 황당하다! 어쩔 줄을 몰라 짐을 든 채 쩔쩔 매고 있는데, 사람들의 눈길이 전부 우리를 향한다. 담배를 피우며 째려보는 듯한 젊은 건달 패거리들도 있고, 무기력하고 지친 표정의 노인들도 길가에 앉아 있다.


시에스타가 끝난 해질 무렵에 시장바닥 주변에서 별 할 일 없이 그저 시간을 죽이는 듯, 말도 없고 무표정한 얼굴로 그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다. 낭패당한 기분으로 가깝게 서 있는 교통경찰에게 달려가서 도움을 청해봐도 전혀 무반응이다. 주위에 영어 하는 사람 없냐고 크게 외쳐봐도 다들 묵묵부답일 뿐.


그런데 갑자기 어디에선가 건장한 사내가 작은 리어카를 끌고 나타나서 뭐라고 하면서 우리 짐을 다짜고짜로 싣는다. 그 옆엔 열 살쯤 되어 보이는 아들까지 나타나 뒤에서 리어카를 밀려한다. 나는 반사적으로 길을 막고 짐을 끌어내리는데, 이번에는 다른 사내가 또 나타나 우리 짐을 빼앗아 옮겨 실으려는 것 아닌가? 나중에는 저희들끼리 서로 삿대질을 하고 싸우고 야단이다. 이런 상황을 멘붕이라고 하나? 우리는 상황 판단이 제대로 안된다. 문명세계에서 갑자기 몇 세기를 거슬러 올라가 이름 모르는 아랍 땅 한 곳에 내버려진 느낌이다.


땅거미는 지기 시작하는데 말은 전혀 통하지 않고, 아귀처럼 짐꾼들은 달려들고, 사람들은 전혀 우호적이지 않은 눈빛으로 쏘아보고, 아내는 사색이 되어 한켠에 겁먹고 서있고, 나도 등에서 식은땀이 흐른다. 어찌할 바를 몰라 우리는 우선 호텔에 전화라고 걸어 보려 하는데 유심 없는 우리 폰은 아무리 눌러도 안 통한다. 마침 지나가던 한 젊은 친구가 서투른 영어로 말을 걸어오길래 무작정 호텔 전화번호를 보이며 전화 좀 걸어 달라고 부탁해서 간신히 호텔직원과 연결된다.


Resized_20180430_080905_9361.jpeg?type=w773 페즈의 구시가 주거지역

호텔 직원이 나타났을 때 마치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다. 직원 왈(曰), 호텔은 우리가 내린 Rcif 광장에서 가깝기는 하지만, 차가 들어갈 수 없는 구시가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어서 통상 여기까지 택시로 와서 리어카에 짐을 싣고 골목의 계단길을 올라가야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을 한다. 짐삮은 보통 20 디람(원화 2,500원). 제기랄! 미리 이메일로 그런 상황을 알려 줄 것이지? 우리는 모로코식 공포(?)의 환영식을 이미 치른 다음이 아닌가? 간이 콩알만 해지고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흐르는. 부킹 닷컴에서 힘들게 예약한 비싼 호텔이 차도 안 들어가는 그런 곳에 있을 줄 우리가 어떻게 알겠어? 아까 핏대 내며 싸웠던 짐꾼의 리어카를 미안한 마음으로 뒤따르는데 미로 같은 좁은 길들과 계단은 장난이 아니다. 정말 놀랄 노자다.


20180430_102809.jpg?type=w773 호텔로 가는 미로 같은 골목길

알라신의 도움 없이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는 페스의 미로길의 명성(?)이야 익히 들어서 알지만, 꽤나 비싼 호텔이 이런 곳에 처박혀(?) 있을 줄은 상상조차 못 했다. 미로를 몇 번 돌아 언제 무너질지 몰라 각목으로 겨우 버티고 있는 좁디좁은 막다른 골목에 조그만 호텔 간판이 보인다. 와 이거 페스가 자랑하는 호텔(전통숙소 Riad) 맞아? 부킹닷컴에서 몇 달 전에 겨우 예약한 평점 9.4짜리 비싼 호텔이 이런 곳에?


Resized_20180430_095644_1067.jpeg?type=w773 전통숙소 Riad의 내부 타일바닥
Resized_20180430_095910_2277.jpeg?type=w773 아름다운 나무장식의 내부

그런데 막상 안으로 들어 서니 그곳은 바깥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별유천지이다. 바닥에는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의 아름다운 아라베스크문양의 타일이 깔려 있다. 벽면의 작은 수조에는 맑고 깨끗한 물이 찰랑찰랑 거리고 건물은 온통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목재로 장식되어 있다. 옥상에 올라가 보니 구시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시원한 전망도 일품이다.


Resized_20180430_080753_5966.jpeg?type=w773 숙소 옥상의 테라스 식당

우아한 50대의 안주인은 유창한 영어로 우리를 맞이하며, 거실에서 페스에 대한 여러 가지 설명과 함께 모로코 전통차를 대접한다. 우리는 모로코에 도착한 지 불과 한두 시간 만에 지옥과 천국을 왔다 갔다 하는 기분이다. 조금 전까지의 험악했던 바깥세상과 우아하기 그지없는 이곳, 어느 쪽이 진짜 모로코일까? 우리는 너무나 상이한 두 가지 환영식에 얼떨떨하다. 어쨌든 내일부터 진짜 모로코를 제대로 볼 수 있겠지. 긴장이 풀리자 피로가 갑자기 몰려와 씻지도 먹지도 못한 채 침대에 몸을 눕힌다. 북아프리카를 처음 밟은 날의 우리의 모로코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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