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는 인류의 보물창고 - 올맥의 거대 두상을 만나다

비야에르모사의 라벤타공원박물관

by 남쪽나라


비야에르모사(Villahermosa)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아침 일찍 와아카공항을 향한다. 이번 멕시코여행에서 처음으로 항공편을 이용한다. 15시간이나 걸린다는 ADO 밤버스를 도저히 탈 자신이 없어 비행기를 예약했는데 항공편도 만만치 않다. 비야에르모사까지 가는 직항 편이 없어 멕시코 시티로 가서 환승을 해야만 했다. 아침 8시 10분에 출발한 비행기는 오후 1시 반에야 비야에르모사에 도착한다. 바로 가면 1시간 거리인데 5시간이 넘게 걸린 것이다. 그래도 연착하지 않고 예정시간에 도착해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


사실 이번 여행 전까지 우리는 비야에르모사(Villahermosa)라는 지명도,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조차도 전혀 몰랐다. '아름다운 마을'이란 뜻이 무색하게 비야에르모사(Villahermosa)는 대부분의 멕시코 여행자에게도 관심 밖의 도시에 속한다. 단지 타바스코 주(州)의 주도이자 멕시코 석유산업의 중심지로서 부티나는 도시라는 것 외에는.


그런데 우연히 알게 된 비야에르모사는 마야의 3대 유적지인 팔렌케(Palenque)를 가기 위한 거점 도시이고, 아직도 미스터리에 싸인 메소아메리카 최초의 자생문명이자 어머니문명인 올맥(OLmec)이 자리하던 곳, 또한 전 세계 '초콜릿의 영원한 고향' 멕시코에서 유일하게 카카오 농장 투어(Ruta del Cacao)를 할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마야문명의 보고 유카탄반도로 가는 길목에 있으니 들려보지 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라 벤타 공원박물관 입구

호텔에 짐을 던져두고 먼저 라 벤타 공원박물관( Parque Museo la Venta)으로 택시를 타고 바람같이 달려간다. 문 닫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이다. 다행히 아직 문이 열려 있어 이 유명한 공원박물관 숲 속을 서둘러 도는데 아열대지역 특유의 더위와 습기로 인해 그늘인데도 땀이 줄줄, 감당하기 어렵다. 어제부터 식중독으로 배까지 살살 아픈 상황이 겹치니 식은땀까지 더 보탠다.


꿇어앉아 있는 모습의 돌 조각상
관모를 쓰고 가부좌를 한 조각상

하지만 막상 이 공원의 자랑 올맥의 조각상들이 하나둘씩 보이기 시작하자 속으로 탄성을 지르며 더위도 배 아픈 것도 어느새 잊는다. 드디어 올맥의 상징 거대 두상들이 눈앞에 나타나는 순간 아찔한 전율을 느낀다.

스탕달 신드롬까지는 아니지만, 스탕달이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Santa Croce) 교회의 Reni의 그림을 보고 잠시 무릎의 힘이 빠지며 경험했다는 황홀경을 조금은 이해할 것 같다.


공원 내의 올맥 두상
20160511_171042.jpg?type=w1 아프리카인의 코와 입술을 닮은 올멕 두상

나우틀어로 <고무 땅의 사람들>이란 의미의 올맥(Olmec)은 기원전 1,200년경부터 기원전 400년까지 멕시코만 연안 베라쿠로스 남부와 타바스코 주에 자리했던 메소아메리카의 가장 오래된 문명이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보다 더 오래 전의 문명. 이 근처에서 발견된 두상들은 거대한(최고 40톤에 달하는) 크기만으로도 사람을 압도하고 남는다. 하지만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아프리카 흑인을 닮은 툭 튀어 난 입술과 납작한 코, 길게 째진 눈 등으로 그들이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들일 거라는 추측도, 또 여러 조각상들이 관모를 쓰고 꿇어앉은 자세나 가부좌 자세를 한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 고대 중국의 상나라에서 건너온 사람들일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한 미스터리문명 중 하나이다.


지금까지 이 라 벤타(la Venta) 지역에서 발견된 총 17개의 올멕 두상 중 무려 4개가 이 공원에서 자연의 모습 그대로 우리를 맞아주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가?


공원 내의 어슬렁거리는 개미핣기
우리나라 중앙박물관의 개미햛기 조각

공원 주변을 여기저기 어슬렁거리며 다니고 있는 저 개미햛기는 또 무엇인가? 이 지역이 주 서식지인 개미햛기를 나는 처음 보는데, 똑같은 개미 핥기의 축소판 토우(5세기 유물로 추정)를 우리나라 중앙박물관 신라관에서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된 일일까? 일전 어느 학자의 주장대로 고대 한국인과 멕시코 원주민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근거일까?


공원 내에 설치된 올맥의 조각상은 그 수가 40개가 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위대한 인류 문명의 빛나는 유산이다. 내가 보낸 몇 장의 사진을 보고 '멕시코는 보물창고 같아요'하던 며늘아이의 말이 생각난다. 그렇다. 멕시코는 정말 보물창고다. 그것도 박물관에 고이 보관된 보물이 아니라,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냄새 맡고, 있는 그대로 느껴볼 수 있는 자연 그대로의 보물창고. 우리는 한두 번 더 두상 주변을 둘러본 후 문 닫는 시간이 임박하여 공원 밖으로 나온다. 오늘 잠시나마 올맥을 직접 체험한 것 만으로 행복하고 비야에르모사에 온 수고가 전혀 헛되지 않은 기분이다.


숙소로 돌아오자 호텔 직원에게 부탁해 카카오 농장 투어를 운영하는 한 현지 가이드와 전화로 통화를 하는데 하루 가이드투어 비용으로 2000페소(한국 돈 14만 원)를 달란다. 물가 싼 멕시코에서는 지나치게 과한 액수라 인접한 대형 쇼핑몰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고민을 한다. 그 돈 내고서 내일 카카오농장을 갈 것인가? 아니면 버스로 2시간 거리의 밀림 속의 마야유적지 팔렌케로 갈 것인가? 나는 처음부터 카카오농장을 가고 싶어 했다. 아내는 팔렌케를 더 원했지만. 피라미드 유적들은 벌써 몇 군데 보았고, 다음 행선지 유카탄 주에는 치첸 이사(Chichen Itza)나 욱스말(Uxmal) 등 유명한 마야유적들이 또 있지 않은가?


하지만 초콜릿의 원산지, 초콜릿의 고향 멕시코 카카오 농장은 내일이 아니면, 이곳이 아니면 영영 보기 힘든데, 차를 렌트해 볼까? 운전을 싫어하는 나는 멕시코에서 도저히 운전할 자신이 없다. 도로나 신호체계도 우리와 많이 다르고 난폭 운전자의 천국 멕시코에서 나 같은 노인이 운전하긴 상당히 위험하다.


쇼핑몰 안의 이색 퍼레이드

무슨 행사인지 거의 벗다시피 한 팔등신 여인네와 요상한 흑인남자가 요란스레 춤추며 우리에게 윙크까지 하는 쇼핑몰 안을 난감한 표정으로 어슬렁거리는데, 복도 가운데 조그만 여행사 부스 하나가 보인다. 혹시나 해서 서툰 스페인어 몇 마디로 말을 거는데, 부스 안의 여직원이 오히려 유창한 영어로 답해오지 않는가? 열심히 인터넷 검색을 하더니 저렴한 비용의 카카오농장 투어가 내일은 없고 모래는 신청 가능하단다. 아니, 우리는 내일 밤 떠나는데요!


우리의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보더니 마리아(우리는 친해져 이름까지 통성명했다)가 대뜸 그럼 내일 그냥 시외버스로 가면 되는데 뭘 야단이냐 한다. 1시간이면 간단다. 어! 시외버스가 있었나? 인터넷에선 못 봤는데! 그런데 멍청한(?) 호텔아저씨들은 전혀 버스 이야기 안 해줬잖아! 비싼 가이드투어 이야기만 했지! 우*질!


마리아는 상세히 정거장 위치를 적어주고, 콜렉티보가 아닌 에어컨 빵빵 나오는 대형버스이니 더위 겁먹지 말고 안심하고 타란다. 그러고 보니 비야에르모사의 차들은 다들 에어컨이 있다. 부자동네라서 그런가? 너무 더운 지역이라서 그런가?


Why not? 마치 구세주라도 만난 기분이다. 화사하게 미소 짓는 마리아를 향하여 땡큐를 연발하며 상기된 기분으로 숙소에 들어오긴 했는데 그래도 배 아픈 것은 마찬가지이다. 한국서 가져온 배탈 약을 계속 먹지만 밤새 화장실을 들락날락해야만 했다. 아! 피곤한 비야에르모사의 밤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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