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소아메리카 최초의 도시
새벽의 교회 종소리가 잠을 깨운다. 얼마 만에 들어보는 정겨운 새벽 종소리인가? 어린 시절 시골 교회마당에 높이 서 있는 종탑에 기어올라보려고 용을 쓰기도 하고, 기다란 종줄을 당기려다 야단을 맞던 기억이 새롭다. 서울에선 한동안 새벽 종소리 대신 차임벨이 울려 퍼지기도 했는데, 종소리도 차임벨도 아예 사라져 버린 것은 언제부터던가? 남산에서 보면 별만큼(?)이나 많았던 교회의 붉은 십자가가 서울의 밤을 장식하고 있었으니 교회마다 종을 울렸다간 대란(?)이 일어나지 않았을까?
아침을 서둘러 먹고 오늘은 몬테 알반( Monte Alban)을 가기로 한다. 어제 광장 관광안내소 여직원이 일러 준 버스 승차장 약도를 들고 찾아간 정류소에서 눈이 빠지도록기다리는데 한 시간에 한 대뿐이라는 버스는 시간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한참을 더 기다리다가 정류소가 시장 뒷골목인 것이 조금 이상해서 지나가는 사람더러 물으니 승차장이 여기 아니란다!
친절한 멕시코 사람은 길을 일러주다가 답답한지 우리더러 따라 오란다. 모퉁이 하나를 지나 몇 블록을 더 가서야 버스 정거장이 보인다. 관광안내소 직원이 잘못 알려줬나? 아니면 그새 정거장이 바뀌었나? 도리없이 우리는 거기서 40~50분을 더 기다려야만 했다. 잔뜩 부은 얼굴을 한 채. 털털거리는 콜렉티보버스는 중간중간 승객을 태우고 내리기를 반복하더니 고불고불 산길을 돌아 우리 부부만 정상까지 실어간다. 한 때 사포텍(Zapotec) 문명의 중심지였던 몬테 알반은 다른 유적들과는 달리 꽤 높은 산 정상에 위치해 있다. 와아카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높이이다.
몬테 알반(Monte Alban)은 본래 지명이 아니다. 에르난 코르테스의 멕시코정복 후 이 유적을 처음 발견한 에스파냐 군대의 한 병사가 이탈리아 로마근교에 있는 알반 언덕(Alban hills)의 지명을 따 붙인 것일 뿐이란다.
몬테 알반은 기원전 500년 경부터 조성되기 시작하여 2~3세기에 번영을 누리고 기원후 750년경에 멸망해 버린 문명이자 한 때 25,000명의 인구를 거느린 메소아메리카 최초의 도시였다. 테오티우아칸과 올멕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지만, 그들과 달리 여러 형태의 상형문자와 비문을 남겼고 유적의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몬테 알반은 당연히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 정도 역사적 배경이나, 눈앞에 질서 정연하게 펼쳐진 피라미드와 제단, 광장과 경기장의 광경에 이젠 새삼 놀라지 않는다. 우리를 놀라게 한 것은 몬테 알반이 주는 고요, 적막감이다. 그래서 더욱 신비스럽다.
사람들이 거의 없는 이른 시간이라 그런가? 유적지를 돌다가 광장의 한 나무그늘 아래 아내와 둘이 앉으니 들려오는 것은 오직 새소리와 바람소리뿐이고, 눈앞에는 오로지 아침 햇살에 눈부신 몬테 알반의 아름다운 풍경만이 펼쳐 저 있다. 사방의 고요 속에 우리는 태고의 적막을 보듬는다. 그리고 천년도 더 된 세월을 거슬러가 그들의 숨결을 듣는다.
우리는 몬테 알반의 역사를 굳이 더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40억 년의 지구의 역사 속에서 이 짧은 적막의 순간과 천년의 세월이 무엇이 다르랴? 천년의 세월도 이처럼 한 순간인데 왜 사람들은 지지고 볶고, 미워하고 싸우고 야단 들일까? 나는 이 적막 속의 몬테 알반에 취해 일어설 줄을 모른다.
한참을 그렇게 멍하니 앉아 있는데 아내가 적막을 깨고 피라미드를 오르자고 한다. 갑자기 아내가 웬 힘이 이렇게 나지? 계단이라면 질색을 하던 사람이. 지난번에 한 번 피라미드를 올랐다가 혼이 나서 손사래를 치는 나를 기어이 일으켜 세워 제일 높은 제단까지 올라간다.
인상을 쓰며 막상 높은데 올라서니 정말 멋진 풍경이 발아래로 펼쳐진다. 여길 못 올라 와 봤으면 후회할 뻔했네! 드문 드문 보이기 시작하는 관광객들에게 부탁해 처음으로 카플사진도 찍고 우리는 몬테 알반을 제대로 만끽한다. 몬테 알반은 번잡하지 않고, 나무 그늘이 있어 더욱 좋다.
우리는 몬테알반에서 오전 시간을 보내고 다시 버스로 시내로 돌아오니 와아카는 한낯 더위로 찜통이다. 이 더위 속에 알룩달룩 수공예천을 팔에 잔뜩 걸친 원주민 여인의 미소가 마냥 밝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미소 뒤에 뭔가 감추고 있는 듯한 그것은 체념일까? 고난 속에 채득한 평안인가? 이 땅의 주인이자 와아카 인구의 절반(48%)을 차지하는 원주민 인디오의 삶은 이처럼 하루하루가 팍팍하기만 해 보이는데, 도통 이 거리에서는 크리오요(Criollo, 스페인계 백인혈통)의 모습은 찾아보기조차 힘들다. 큰 길가에 높다랗게 달려있는 훤한 풍채의 지사선거 홍보벽보 외에는.
점심을 먹고 우리는 어제 못 본 후아레스(Juarez) 대통령의 집 대신 시청사에 걸려 있다는 후아레스대통령의 벽화를 보러 가는데 시청 앞에는 무장경찰들이 삼엄하게 지키고 있다. 후아레스대통령의 벽화는 이 건물이 아닌 다른 시청사 건물에 있단다. 다시 뙤약볕 아래 한참을 왔다 갔다 하다 결국 못 찾고 지쳐 포기한다. 후아레스와는 인연이 없나 보다.
오늘이 와아카의 마지막 날이라 몇 군데 와아카 맛집을 찾아 나섰다. 점심때 택시까지 타고 일부러 찾아 간 식당이 그저 그래서 저녁은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다는 A라는 대중식당을 찾아갔는데 왠지 전통음식의 도시 와아카가 내세울 정도는 아니다. 여행할 때마다 그 지역 향토음식을 즐겨 먹는 우리인데 오늘은 저어기 실망이다. 와아카 음식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컸나? 아니면 맛집 찾아다니지 말라는 속언이 또 맞는 건가?
더위 때문인지 음식 때문인지 약간은 몸 컨디션이 좋지 않은 채 호텔로 돌아오는 길 어두운 길섶에 며칠 째 어린 아기를 안고 손을 내미는 원주민 여인의 모습이 보인다. 깡통을 들고 우리를 따라오는 서너 살 큰 애에게 호주머니 속 푼돈을 다 털어주는데, 유난히 쨍그랑하고 밤공기를 뚫고 들리는 빈 깡통 소리가 편안한(?) 호텔로 들어가는 우리의 발걸음을 오늘따라 영 편치 않게 해 준다. 세상 어느 곳에도 빛과 그림자가 늘 있기 마련이지만, 인디오의 땅 와아카에서 보는 인디오의 고달픈 삶의 모습은 조금은 더 마음을 저리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