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에블라에서의 하루
비가 살짝 내린 후라서일까? 푸에블라(Puebla)의 밤공기는 산뜻했다. 멕시코 시티에서와 같은 탁함도 밤 새 울리는 사이렌 소리도 없었다.
우리가 예약한 호텔은 식민지 풍의 건물을 개조한 아담한 호텔인데 소칼로(광장)에서 매우 가깝고 가운데는 내가 좋아하는 스페인식 중정(Patio)이 있다. 방은 깨끗하고 숙박료마저 적정하다. 영어가 유창한 프런트직원들은 세련되고 무척 친절하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질문에 막힘 없이 답해준다.
다음 날 아침 숙박료에 포함된 근사한 아침을 먹고 촐룰라(Cholula)행 버스를 타기 위해 시가지를 걷는다. 푸에블라(Puebla)의 역사지구(Centro Historico)는 오랜 식민도시답게 아름답게 잘 정비되어 있다. 특히 이 지역 명물 타일로 장식된 건물들과 아름다운 바로크식 건물들은 우리가 마치 유럽 어느 나라에 와 있는 착각을 들게 한다.
푸에블라는 식민시대 이전부터 교통의 요지로서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도시이다. 특히 1862년 푸에블라 전투에서 나폴레옹 3세의 프랑스군과 맞붙어 큰 승리를 거둔 5월 5일은 멕시코의 전승기념일이자 국경일이다. 이날을 기념하여 푸에블라에서는 해마다 5월 5일(Cinco de Mayo) 축제가 며칠씩 벌어지는데 어제가 바로 5월 5일이 아닌가! 오늘 밤 소칼로에 나가면 풍성한 볼거리가 펼쳐지려나 보다.
우리는 호텔 직원이 가르쳐 준 대로 소칼로광장을 지나 한 30분쯤을 걸어 겨우 촐룰라(Cholula)행 버스를 탄다. 버스는 소위 콜렉티보 버스, 완행보다 더 느린 동네버스이다. 겨우 20여 명 남짓 탈 만한 중형버스는 매우 낡긴 하지만 탱크처럼 무식하게 튼튼해 보인다. 그런데 버스 앞머리에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엠부램이 당당히 붙어 있다. 이거 정말 벤츠차 맞아? 버스 차장도 있어 차비를 거두고 손을 흔들면 세워주고 내려주기를 반복한다. 정말 오랜만에 타보는 우리나라 시골의 완행버스 같다.
그렇게 시골길을 달리기를 한 시간쯤, 옆 자리의 한 남자가 우리를 보고 뭐라고 열심히 말을 건다. 여기서 내리라는 소리 같아 응급결에 차를 세우고 낯선 길가에 내리긴 했는데, 주위가 우리가 찾아가는 촐룰라가 아닌 것 같다. 다시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10여분을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니 드디어 촐룰라광장이 나온다. 나는 이런 수고로움이 좋다. 푸에블라에서 불과 12km 거리, 택시를 타면 30분도 안 걸리지만, 버스를 타고, 길을 묻고, 길을 잘 못 들어 헤매기도 하고, 때로는 짜증도 나지만 나는 이런 여행을 좋아한다. 왜냐고? 나는 관광 다니는 것이 아니고 여행을 하는 것이니까. 나는 길 위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생전 보지 못한 색다른 풍광을 접하고, 그들의 삶을 옅본다. 대부분은 조금 남루하고 가난해 보이지만 그들의 미소는 순박하고 마음은 따뜻하고 정이 넘친다. 내 서툰 스페인어 몇 마디에 감동하고, 때로는 직접 목적지까지 동행해주기도 한다.
넓고 울창한 수목으로 덮여있는 광장 벤치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 후 우리는 곧장 대 피라미드(Gran Piramide)를 찾아 나선다. 기념품점이 즐비한 길을 돌아 조금 더 걸으니 아름다운 식민지풍 교회를 머리에 인 높은 동산 하나가 맑게 개인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서 있다. 바로 촐룰라의 유명한 대 피라미드이다.
내가 굳이 푸에블라에 들린 이유는 순전히 이 피라미드 때문이다. 코르테스는 1519년 아스텍제국을 정복하러 가는 도중 이곳 원주민 3천여 명을 무참히 학살했다. 365개나 되던 사원들을 모두 파괴하고 이 대 피라미드마저 흙으로 묻어버린 후 꼭대기에 지금 보이는 교회를 세운 비극적 역사의 현장인데 500년 전 비극은 다들 잊은 채 대 피라미드를 오르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
무릎이 안 좋다고 오르기를 포기한 아내를 그늘에 쉬게 하고 나 혼자 무리들을 따라 계단을 오른다. 정상에 오르니 시원스럽게 사방으로 시야가 탁 터이고 , 저 멀리 내가 보고 싶어 하던 5,452m 높이의 유명한 활화산 엘 포포(El Popo, 정식명칭 Popocateptl)가 떡 버티고 서 있다. 우리가 오기 불과 한 달 전에도 큰 폭발이 일어나 사람들이 피신하고 난리였다는데 지금은 얌전히 흰 연기만 뿜은 체 우리를 맞아준다. 아래쪽으로는 촐룰라의 옛 사원을 허문 자리에 코르테스가 세웠을 교회도 보인다.
사실 내가 촐룰라를 찾아온 또 하나의 이유는 바로 저 화산을 지근에서 보기 위해서다. 우연히 어디에서 본 하얀 눈을 인 엘 포포(El Popo)와 대 피라미드(Gran Piramide)의 눈부신 사진 한 장이 나를 유혹했다. 그런데 피라미드 꼭대기 어디를 둘러봐도 저런 멋진 사진 포인트는 없다. 하기야 내 스마트폰 카메라로는 담을 수도 없지만.
조금은 실망한 체 내려오는데 엄청난 규모의 발굴 현장이 눈 아래 보인다. 약간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본 발굴 현장에서 비로소 대 피라미드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산 전체가 피라미드인 것이다. 실은 1969년 이전까지도 이곳이 피라미드인 줄 몰랐다고 한다. 그저 자연적인 언덕으로만 알았을 뿐.
촐룰라 대 피라미드의 높이는 이집트의 기자 피라미드보다 조금 낮지만 지상 면적은 세계 최대이다. 촐룰라의 기원은 테오티우아칸 전성기 시대까지 올라간다. 365개의 사원과 대 피라미드를 품었던 촐룰라는 멕시코 중원의 종교 중심지였고 한 때 인구가 10만에 이르는 대도시였다. 그런데 멕시코 정복자에 의해 일순간에 학살되고 파괴되면서 역사의 현장에서 사라져 버린 것이다. 잠시나마 우리가 몰랐던 역사의 현장에 서 보는 것은 언제나 짜릿한 감동을 선사한다.
우리는 피라미드를 내려와 촐룰라광장에서 잠시 쉬면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낸다. 대낮의 광장에는 5월 5일 축제일답게 폭죽이 요란스럽게 터지고 음악소리가 들리고 온통 시끌벅적하다. 우리는 망고도 실컷 맛보고 타코보다 훨씬 더 비싼 아이스크림도 사 먹고 광장 회랑을 왔다 갔다 해본다. 당연히 주변의 시선들이 동양의 두 노인네에게 온통 집중된다. 하지만 불편한 느낌이 하나도 안 드는 것은 웬일일까?
뙤약볕에 서서 20여분을 기다린 끝에 다시 콜렉티보(Collectivo) 버스를 타고 푸에블라(Puebla)로 돌아오는데 기타를 든 악사 한 사람이 차에 올라 기타에 맞추어 멋지게 노래를 불러준다. 지난번 테오티우아칸 가는 버스에서도 그랬는데. 지루한 버스에서 멕시코 생음악을 듣는 것도 나쁘지 않다. 노래 솜씨가 엉터리가 아니다. 여기 사람들도 다들 가수인가? 원래 라틴계 사람들은 노래를 잘 부르는데 이들 중에서 제2의 도밍고, 비아손이 못 나올 이유도 없겠지?
오후의 푸에블라 소칼로 주변은 벌써부터 인산인해이다. 차길은 꽉 막히고 어디에서 몰려왔는지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족들이 소칼로 주변을 굉음소리를 내며 누비고 있다. 모두 오늘 있을 5월 5일 축제를 즐기려 왔나 보다.
우리는 소칼로 주변에서 겨우 한 식당을 찾아 늦은 점심을 먹고, 소칼로 일대를 한동안 어슬렁거려 본다. 크고 화려한 교회 내부를 들여다보기도 하고, 손자가 신으면 예쁠 신발가게 앞을 기웃거려보기도 하는데, 인파에 밀려다니는 것도 피곤해서 호텔로 돌아와 잠시 쉰다. 저녁에 사람 붐비는 소칼로(Zocalo)로 다시 갈 것인가? 아니면 멋진 레스토랑에서 푸에블라가 자랑하는 토속요리 Mole Poblano를 맛볼 것인가?
우리는 소칼로행을 주저 없이 포기하고 푸에블라에서 손꼽힌다는 멕시칸 레스토랑 Casareyna로 간다. <여왕의 집>이란 뜻답게 식당의 분위기는 우아하고 품위 있다. 우리는 푸에블라 특산요리 Mole Poblano를 시켰는데 멕시코에 와서 제대로 된 식당에서 제대로 된 멕시코요리를 처음 맛보는 셈이다. 잘 먹긴 했지만 멕시코요리는 기대만큼 우리 입맛에 맞는 요리는 아닌 것 같다.
늦은 저녁을 즐기고 돌아가는 길에 일부러 잠시 소칼로 광장을 거치는데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완전 파장 분위기이다. 아직 광장 한 모퉁이에는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는 광장은 썰렁하기만 하다. 그래도 푸에블라의 밤길을 걷는 기분은 무척이나 가뿐하다. 멕시코 시티처럼 긴장할 필요도 없고 길을 헤맬 걱정도 없다. 모든 것들이 지호지간이니까. 문득 푸에블라가 좋아지는 저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