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는 무려 8,000개의 피라미드가 있다.
오늘은 테오티우아칸을 가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둔다. 아침 일찍이 아니면 허허벌판 테오티우아칸에 내려쬐는 태양의 공습(?)을 피할 길이 없다고들 해서. 짐을 싸서 민박집에 맡겨놓고 아침도 제대로 못 먹은 채 지하철을 타고 시외버스터미널이 위치한 Autobus Norte 역을 향한다. 복잡한 아침 출근 시간대의 멕시코시티 지하철이라 다소 긴장했는데 지하철은 별로 붐비지도 않았고 생각보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한다.
멕시코 시티에서 테오티우아칸까지는 약 50km, 시외버스로 한 시간 정도 걸린다. 선인장이 반겨주는 테오티우아칸 입구(Puerto1)에 내려 광장으로 들어서는 순간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이것은 대자연이 주는 감동과는 전혀 다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던, 인간이 만든 위대한 문명, 위대한 유산 앞에 서는 경의와 감동! 더 넓은 광장에 거대한 피라미드의 무리들이 눈앞에 짝 펼쳐 저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별세계에 온 느낌이다.
가벼운 심장 고동소리를 들어며 아내와 함께 <죽은 자의 길(Calzada de los Muertos)>을 걷기 시작한다. 가슴 뛰게 하는 이 길이 왜 하필 <죽은 자의 길>인가? 사람들이 처음 이 피라미드들을 발견하였을 때 이들을 신을 위한 제단이 아닌 무덤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란다.
이 위대한 도시 테오티우아칸의 면적은 약 21평방 킬로미터, 축구장의 약 3000배 크기이다. 전성기 때의 인구는 12만에서 20만 정도. 피라미드도 600개나 있었다 한다. 당시로는 엄청나게 큰 세계적인 도시다. 지금도 계속 발굴작업이 계속되고 있다는데 현재까지 겨우 10분의 1 정도만 발굴된 상태라니 그 규모에 입이 벌어진다.
테오티우아칸은 BC100년 경에 조성되기 시작하여 AD450년에 그 전성기를 누리다가 AD650년경에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아직도 멸망 원인은 명확지 않은데 당시의 갑작스러운 기후변화로 인한 식량난과 기근으로 인해 멸망하지 않았나 추측할 뿐이란다. 그들은 유감스럽게 아무런 문자기록을 남기지 않았다. 그 이후 아스텍인들이 이 도시를 발견했을 때도 당연히 아무것도 알려져 있자 않았다. 도시의 이름도, 역사도. 아스텍인들은 이 도시의 거대한 피라미드들을 사람이 만든 것으로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어 신들이 만들었다고 믿었다. 그래서 아스텍인은 이 도시를 Teotihuacan이라고 불렀다. <신들이 머무는 거처>라고.
달의 피라미드에 이르는 <죽은 자의 길>은 꽤나 길고 업다운이 심하다. 양 옆으로 크고 작은 제단들이 늘어 선 길을 걷는 동안 계속 얕은 계단을 오르고 내려야 했다. 업다운이 끝나는 길섶에 사람을 압도하는 거대한 태양의 피라미드가 하늘에 닿을 듯이 우뚝 서 있다. 그 위에 올라서 있는 개미같이 작은 사람들의 모습도 보이고. 사실 나는 피라미드를 처음 본다. 더구나 이렇게 큰 피라미드는. 어떻게 2000여 년 전에 돌로서 저렇게 거대한 피라미드를 세웠는지 그저 놀라울 뿐이다.
태양의 피라미드를 지나고부터는 비로소 <죽은 자의 길>은 넓고 평탄해진다. 당시 이 길이 호수였다니! 발굴된 길이만 2.5km에 이르는 죽은 자의 길 끝에는 달의 피라미드가 서 있다. 달의 피라미드는 당시 테오티우아칸의 중심이었다. 달의 피라미드 앞엔 널따란 광장이 조성되어 있고, 주위를 10개의 독립된 제단들이 들러싸고 있는데 모든 희생 제의들이 달의 피라미드에서 이루어졌다.
나는 객기를 부려 달의 피라미드 중간 제단까지 올라 보는데 생각보다 가파르고 힘들다. 그렇지만 그 위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정말 파노라믹 하다. 다들 46m 높이의 피라미드 정상까지 잘도 올라가는데 그 위에서 보는 광경은 또 어떨까? 더 올라가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제하고 내려오긴 했는데 나의 이 정도의 객기도 나중에 적지 않는 대가를 치른다. 무릎이 아파 며칠을 고생한 것이다.
태양이 점점 중천으로 옮겨 오기 시작하자 정말 이곳에는 햇빛을 피할 곳이 거의 없다. 그늘에 들어서기만 해도 시원하긴 한데 나무 한그루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는 아침에 지하철역 입구에서 사 온 샌드위치로 허기를 때우는데 그나마 그늘을 못 찾아 기념품판매 상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어느 피라미드 모퉁이에서 서서 먹는다.
시계가 12시를 지나자 막 몰려들기 시작하는 관광객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제1문을 서둘러 나오는데 왠지 가슴이 뿌듯하다. 인간이 2천여 년 전에 이런 위대한 도시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뿌듯하고 오늘 내가 이 현장을 걷고 있다는 사실도 뿌듯하다. 우리가 여태 보아온 서양문명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사실 또한 더없이 뿌듯하다.
출구를 나오자 마침 서 있는 시외버스를 타고 멕시코시티로 돌아와서 우리가 마지막으로 찾은 곳 과달페(Guadalpe)성당. 지하철을 타니 금방이다. 멕시코 시티의 지하철은 조금 특이하다. 1968년 멕시코올림픽이 열리기 전쯤 만들어진 듯한 지하철은 객차량이 몇 개(2~3개) 안되고 실내는 우리 지하철보다 좁다. 차량이 적은 만큼 거의 일분 간격으로 다닌다. 실내에 에어컨이 없는지 창문을 온통 열어 놓고 다니는데 지하의 퀴퀴한 먼지와 냄새가 보통이 아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퀴가 타이어인 것이다. 객차의 무게가 가벼워 타이어로도 감당이 된다는 건가? 한편 환승통로는 엄청 길고 복잡하여 갈아타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
멕시코시티 지하철이 위험하다고들 하는데 우리는 잘 못 느끼겠다. 오히려 생각보다 노선이 많고 굉장히 신속하게 이동할 수 있어 무척 편리하다. 버스나 택시로 이 넓은 멕시코시티 교통지옥을 다닌다고 생각해 보라. 게다가 지하철요금마저 너무 싸다. 한국 돈으로 300원 정도.
과달페(Guadalpe)성당이 있는 Bacillica역에 내리니 금방 이곳이 유명한 곳임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어느 유명 절 입구처럼 상점들과 기념품 가게와 길거리 장사꾼들이 진을 치고 있다. 스페인의 정복 초기 어느 가난한 원주민에게 나타난 성모발현 이야기로 유명한 과달페 성당은 세계 3대 성지 중 하나라나? 과달페(Guadalpe)에서의 성모발현 기적은 굳이 가톨릭신자가 아니라도 다 안다. 믿고 안 믿고는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막상 내가 궁금한 것은 기울어진 구성당보다는 새로 지었다는 새 성당건물이다. 몇 백 년씩 된 고색창연하고 화려한 교회 건물들만 주로 보아 왔는데 최근에 지었다는 새 성당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예상대로 두 건물은 겉모양부터 무척 대조적이다. 기울어진 구성당은 흔히 보던 교회건물인데 새로 진 교회당은 엄청난 크기와 현대적 외관이 사람을 압도한다. 막상 새 교회 안으로 들어서니 사람들로 꽉 찼다. 그냥 구경 온 사람들이 아닌 것 같다. 심지어 입구에서부터 무릎으로 기어 들어오는 사람들도 꽤나 많다. 유럽교회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하던 신앙의 열기이다.
교회당 내부 역시 화려하고 대단하다. 만 명 이상이 족히 예배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이다. 교회 제단 한가운데쯤 검은 피부의 과달페성모의 모습이 걸려 있다는데 우리는 감히 제단 앞까지 접근해 볼 엄두도 못 내고 숙연한 분위기 속에 잠시 모자를 벗고 의자에 앉았다가 조용히 나온다. 이 땅의 가난하고 힘든 삶을 사는 모든 이들에게 과달페성모 신앙이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기를 빌면서.
숙소에 들려 택시를 불러 타고 ADO 버스터미널로 향한다. 지하철과 달리 매연과 꽉 막힌 멕시코 시티 교통을 제대로 경험하며 터미널에 도착하는데 이 택시는 우리가 멕시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 본 미터기 달린 택시였다.
푸에블라(Puebla)행 버스에 몸을 실으며 우리는 멕시코시티를 빨리 떠나는 것이 조금도 아쉽지 않다. 멕시코 시티는 우리가 기대하던 그런 멕시코가 아니어서 인가? 그럼 지금부터 가는 멕시코는 진짜 멕시코일까? 우리는 버스 안에서 기대 반, 의심 반으로 몽롱해하며 꿈속을 헤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