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시간의 밤버스를 타고
우리는 호텔을 나와 쇼핑몰에 잠깐 들러 여행사 직원 마리아(Maria)와 작별인사를 나눈다. 그녀 덕분에 카카오농장 투어도 무사히 잘하고 투어비용도 엄청 절약하지 않았나? 어제 카카오 농장에서 미겔(Miguel)이 내게 준 카카오 열매를 선물했더니 파안대소하면서 무척 좋아한다. 자기도 카카오열매를 보기는 처음이란다. 좀 더 머문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텐데.
마리아와 아쉬운 작별을 하고 메리다(Merida) 행 밤 9시 40분 출발 아데오(ADO) 버스를 탄다. 10시간 정도 걸리는 야간버스를 타보기는 처음이다. 비행기도 10시간이면 죽을 맛인데 밤버스라니? 그렇지만 여기서는 별 선택의 여지가 없다. 버스는 산길을 넘고 시골동네를 지나기도 하면서 생각보다 느리게 가는데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허리도 아프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새벽 4시경 캄페체(Campeche)를 경유하며 잠시 쉬면서 운전기사를 교대한다.
운전기사 한 사람이 무려 6시간 반을 잠도 안 자고 화장실도 못 가고 운전만 하다니! 한마디로 살인적 운전이다. 푸에블라에서 와아카 갈 때도 5시간 동안 운전기사가 쉬지 않고 운전하는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는데, 멕시코 버스는 승객의 안전이나 운전기사의 안전은 안중에도 없는가 보다. 아데오 버스에 대한 좋은 인상들이 분노로 바뀐다.
어쨌든 버스는 아침 6시 30분경 예정대로 메리다(Merida)에 도착한다. 너무 이른 아침이라 터미널에서 약간 뜸을 들이다가 8시쯤 민박집으로 향한다. 통상 체크인 시간이 12시 이후라서 짐이나 맡겨놓고 나올 생각으로. 그런데 민박집 안주인 엘리사(Elisa)는 이른 시간인데도 따뜻하게 우리를 맞이하며 바로 빈방으로 안내한다. 고풍스러운 가구들과 높은 천장, 호텔 방의 두 배는 됨직한 넓은 방은 보기만 해도 시원하다. 그리고 아침 상까지 새로 차려 준다.
집안에는 작은 풀장과 널따란 정원도 있어 웬만한 호텔 뺨친다. 그런데 숙박료는 35불. 조용하고 아늑하고 널찍하고 값마저 싸다. 안채와 별채가 따로 있는데 손님이 머무는 현관 별채에는 주방과 식당이 따로 있어 투숙객이 간단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다. 우리는 황송한(?) 마음으로 푸짐한 아침을 먹자마자 시원한 방에서 그대로 곯아떨어진다. 10시간의 밤 버스여행은 아무래도 우리에겐 무리인가 보다.
1시경에 겨우 일어나 시내(Centro)로 나오는데 한낮의 메리다는 아열대지방 아니랄까 엄청 덥다. 1,905년 인천에서 두 달간의 항해 끝에 1,033명의 한인 이민자가 멕시코 땅에 처음 발을 디딘 곳이 바로 이곳 메리다이다. 그들은 에니깽(Henequen) 농장에서 노예처럼 일하면서 얼마나 황당하고 힘들었을까? 청운의 꿈을 안고 이국 땅에 왔는데 이 찜통 같은 더위를 피할 방법도 돌아갈 수도 없었으니.
시내버스를 타고 시내에 내려 소칼로(Zocalo, 광장)를 찾는데 지도에도 안 보이고 사람들한테 물어도 잘 모른다. 소칼로? 그런데가 있나요? 하는 시늉이다. 소칼로처럼 보이는 어떤 광장 주변 건물에 있는 관광안내소를 겨우 물어서 찾아간다. 이름이 하필 괌(Guam)이라는 직원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으니 시원하게 답해 준다. '그런데 소칼로는 어디 있는 거요?' '여기가 소칼로요.' '아니, 지도에는 플라자 그란데(Plaza Grande)만 있는데?' '네. 메리다 사람들은 아무도 소칼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Plaza Grande(대광장)라 해야 알아듣습니다.'
이름만 '대 광장'이지 다른 도시의 소칼로(광장)와 뭐가 다른지! 괌이 말하기를 그것은 단지 메리다(Merida)인의 자존심의 표시란다. 유카탄 반도의 중심지이자, 마야문명을 품은 문화도시 메리다 사람들의 자존심.
대광장(Plaza grande)은 한낮의 더위에도 불구하고 꽤 많은 사람들이 오간다. 대광장 주변은 역사지구답게 오래된 식민지풍 건물들이 가로 세로 잘 뻗어 있다. 그리고 여늬 소칼로(광장)와 마찬가지로 대성당도 보인다.
괌은 우리에게 오늘 밤에 근사한 민속축제가 있으니 놓치지 말라는 조언과 함께 메리다의 자랑이자 중심가인 몬테호 거리(Paseo de Montejo)는 꼭 가보라고 지도를 펴고 가는 길도 자세히 가르쳐준다.
한낮의 태양이 뜨겁기는 하지만 중간중간 벤치도 있고 해서 30분쯤 쉬엄쉬엄 가니 드디어 괌이 가르쳐준 몬테호 거리가 나온다. 거리 초입에는 몬테호 부자의 동상이 우뚝 서 있다. 널따란 길 양쪽으로 아름답고 화려한 식민지풍 건물들이 펼쳐 저 있고 고급식당과 호텔, 명품가게들도 심심찮게 보인다. 유럽도시들 못지않게 넓고 아름다운 대로는 멕시코 시티의 개혁의 거리(Paseo de Reforma)를 연상시킨다. 분수에 맞지 않는 에스파냐식 허세(?) 같은 분위기.
몬테호(Montejo)는 1542년 <T'ho>라 불리던 열대 마야의 땅 이곳을 정복하여 에스파냐에 귀속시킨 에스파냐 정복자의 이름이다. 그는 <T'ho>에 있던 마야 신전들의 돌들로 새로운 에스파냐 식민도시를 건설하고 Merida로 명명한다. 그는 메리다의 정복자이자 건설자였다.
운 좋게도 메리다는 19세기 후반 무렵부터 에니깽(Henequen, 선인장의 일종으로 배의 밧줄과 카펫을 만드는 데 사용) 재배농장으로 대박을 터뜨려 엄청난 부를 축적한다. 그 부에 걸맞은 영화를 자랑하려 화려하게 조성한 것이 바로 몬테호거리이다. 하지만 그 영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20세기 중반 에니깽을 대체하는 값싸고 튼튼한 나이론이 등장한 것이다.
뭔지 쓸쓸해 보이는 몬테호 거리를 걸으면서 19세기 후반 천연고무라는 노다지를 만나 넘치는 부를 주체할 줄 몰랐던 아마존 상류의 작은 도시 마나우스(Manaus)가 갑자기 생각난다. 마나우스는 넘치는 부로 아마존 밀림 속에 가당찮게(?) 당시 세계 최고의 오페라하우스를 짓고 카루소를 불러오는 등 한동안 졸부 놀이를 즐겼다. 하지만 고무 생산지가 동남아로 옮겨 가자 도시의 영화도 그것으로 끝. 지금은 퇴색한 오페라 하우스 '아마조나스'만이 한 때의 영광을 상기시켜 줄 뿐 아닌가?
메리다의 매력은 이런 흔해 빠진 식민도시 건물이나 거리에 있는 것이 아니다. 메리다는 유카탄 반도에 널리 산재하던 위대한 마야문명의 거점도시이다. 치첸이사와 우스말 등 위대한 마야유적들이 한두 시간 거리에 위치한다. 그리고 멕시코에서 인디오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다. 이 도시 인구의 60%가 인디오 혈통이란다. 가장 마야다운 마야를 숨 쉴 수 있는 곳이 바로 메리다이다.
우리는 몬테호 거리를 찬찬히 둘러보지만 우리가 주의를 기울여 찾고 있는 것은 이 거리의 월마트이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우리는 마침 부엌이 있는 민박집에 왔으니 하얀 쌀밥 생각이 간절할 뿐이다. 10여 일간의 멕시코여행 중 더위에 지치고, 배탈로 지치고, 멕시코 음식에 지치고....
마침 월마트를 찾아 들어가니 없는 게 없다. 우리는 양상추, 쌀, 멸치젓(anchoa), 맥주 등 간단한 먹거리를 사서 숙소로 돌아오자 간단한 쌀밥 파티를 연다. 반찬이 없으면 어떠리! 양상추 쌈에 흰쌀밥, 고추장에 엔초비, 그리고 맥주 한 잔, 진수성찬이 따로 없다. 우리는 오랜만의 진수성찬을 즐기느라 괌이 적극 권하던 대광장의 민속춤 축제는 다음 날 아침에야 겨우 생각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