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서양문명이 최고라고? -치첸잇사의 경이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by 남쪽나라


아침도 제대로 못 먹은 체 바나나 2개만 달랑 챙겨 넣고 새벽같이 숙소를 나선다. 6시 반 출발 ADO버스를 타고 치첸잇사(Chichen Itza)에 도착하니 8시 반, 딱 2시간 걸린다. 매표소는 벌써 줄이 길다. 다들 우리처럼 새벽 별 보고 나왔나? 꽤나 비싼 입장료를 내고 단체객들 무리에 섞여 광장으로 무심코 들어서는 순간, 더 넓은 광장 중앙에 아침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쿠쿨칸 사원(El Templo de Kukulcan)이 우뚝 서 있지 않는가? 중앙계단 입구에 떡하니 입을 벌린 깃털 달린 뱀 두 마리와 함께.


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쿠클란 사원
계단 입구의 두 마리의 뱀 형상

높이 25m, 55m 폭의 4 변형 피라미드는 마치 성채같이 생겼다 해서 일명 피라미드 성(Castillo Piramide)이라고도 한다. 크기와 규모 면에서는 다른 피라미드와 견줄 수 없지만 한 마디로 우아하고 아름답다. 천년의 세월을 실감할 수 없을 정도로 보존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사원 정상에서 벌어지곤 하던 인신공양이 지금이라도 재현될 것만 같다. 피라미드의 뒤쪽을 돌아보니 뜻밖에도 많이 훼손되어 있다. 그런데 훼손된 모양이 너무나 자연스러워 일부러 그런 것처럼 착각할 정도이다.


이 피라미드는 마야문명에 톨텍이 덧 입혀진 워낙 유명한 건축물이라 여러 가지 얽힌 이야기도 많다. 이 사원은 호사가들에 의하여 신 세계 7대 불가사의(New Seven Wonders of the World) 중 하나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Wonder'나 스페인어의' Maravillas'를 불가사의라 한 것은 좀 과장된 번역이 아닐까?


일 년에 두 번, 춘분과 추분 오후 시간에 중앙계단에 뱀이 기어 내려오는 듯한 형상의 햇살이 비치는 것은 '경이'로운 것이지만 불가사의한 정도는 아닌 것 같다. 이는 마야인들이 오랜 기간 터득한 천문학적, 수학적 지식을 건축물에 잘 적용한 뛰어난 건축술 때문일 수도 있고 우연의 결과일 수도 있다.


춘분과 추분 오후 햇살이 마치 뱀이 기어 내려오는 듯한 형상(사진출처:구글)

또 마야달력에 2012년 12월 21일까지만 기록되어 있다 해서 이 날이 지구 종말의 날이라고 한 때 소동을 일으킨 적도 있다. 그 외에 피라미드 4면의 계단 각 91개에 꼭대기 사원계단을 합치면 365개가 되어 일 년을 정확히 표시한다는 이야기 등은 너무 진부할 만큼 알려져 있다.


적군의 해골 부조
축구 경기장

카스티요 피라미드 주변에는 적군의 실제 해골들을 부조로 만들었다는 약간은 으스스한 해골 플랫폼도 있고, 한쪽으로는 거대한 축구 경기장도 보인다. 중앙에서 손뼉을 치면 양끝까지 울린다는 이런 축구 경기장이 한 때 멕시코 전역에 500개나 있었다니 믿거나 말거나!


치첸잇사 안내판

Chichen Itza(치첸 잇사)는 안내판에 적혀 있듯이 '물의 마법사 우물의 입구'(En la boca de pozo de los Itzaes)라는 뜻이란다. 기원후 525년 경 잇사(Itza)족에 의하여 처음 세워진 후 마야와 톨텍문명이 뒤섞여 기원후 800~1100년에 전성기를 이루다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치첸 잇사에 단지 볼거리가 카스티요 피라미드와 축구경기장뿐이어도 크게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광장 뒤편으로 들어 서니 '전사들의 신전' 주위에 세 그룹으로 나누인 천 개의 원주(Grupo de las mil columnas)의 행렬이 사람을 압도한다. 그리스나 로마시대 원주들을 꽤나 보았지만 이렇게 밀집해 있는 많은 원주는 처음이다. 천년을 거슬러 올라가 이 많은 원주 위에 얹힌 지붕과 주위의 건물들의 원 모습들이 쉽게 상상된다. 얼마나 위대하고 당당했을까?


전사들의 신전
1,000개의 원주

팔렌케나 치첸잇사 등 마야유적들을 맨 처음 본 유럽사람들은 그 위용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스 로마 문명만이 전부이자 유일한 문명으로 알고 있던 그들에게 이 엄청난 마야문명은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그래서 에스파냐 정복자들은 마야문명을 폄하하기 시작한다. 인신공양등 미신적이고 폭력적인 면만 부각하고 그들의 뛰어난 문명의 흔적을 파괴하고 지워버린다. 마야인들의 위대한 문화기록인 고문서까지 우상숭배라 해서 모조리 불살라 버린다.


심지어 어떤 학자는 마야문명이 그리스 로마의 영향을 받고 전수된 것이라고 억지 주장을 한다. 이 천 개의 열주들이 그리스 로마의 것이라고? 그리고 천문대(observatorio)의 돔도? 역사 왜곡은 우리 이웃 어느 나라의 이야기만은 아닌가 보다. 하긴 역사는 언제나 승자의 기록이었지!


마야의 천문대의 돔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는 것은 마야의 천문대(Observatorio). 어쩌면 지금의 천문대와 똑같은 모습일까? 이곳에서 정확히 해와 달을 관측하고 지금과 조금도 틀리지 않은 마야달력을 만들어 낸 건가? 그리고 달팽이처럼 계단이 나선형으로 생겼다고 El Caracol(달팽이)라고도 부른 저 돔을 마야사람들이 어떻게 만들었을까?


교회 건물

천문대를 지나 맨 끝 부문에 Las Iglesia(교회)라고 적혀 있는 건축물은 그 용도가 아직도 확실치 않다지만 정교한 조각과 부조는 매우 화려하고 아름답다. 거기에는 그들의 신앙과 사상과 일상이 천년의 세월을 이고 자랑스럽게 고스란히 형상화되어 있다.


한 참 후 다시 카스티요 피라미드 광장으로 나오니 해는 중천이고 낮의 열기는 더해가는데 그래도 단체 관광객들이 때거리로 계속 몰려든다. 우리는 더 이상 치첸 잇사의 뜨거운 햇살에 버틸 자신이 없어 돌아가기로 결정한다. 뜨거운 햇살아래 메리다행 버스를 찾아다니다가 한국인 젊은 부부를 만난다. 천문대 앞에서 본 얼굴들이다. 칸쿤에서 왔다는 부부는 고맙게도 우리가 버스를 찾아 탈 때까지 우리를 도와준다. 버스기사에게 영어로 메리다행 버스인지 확인까지 해주면서. 기사가 알아듣긴 했을까? 멕시코 여행 중 처음 만난 한국인이라서 그런지 반가웠다.


메리다로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 이런 생각을 나 혼자 해본다. 만일 치첸잇사가 지금의 위치에 있지 않았더라도 지금처럼 유명했을까? 사실 치첸잇사 못지않은, 아마 더 뛰어난 마야유적들도 있다. 팔렌케유적이나 욱스말 같은. 그런데 이 유적들은 칸쿤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는데 반해 치첸잇사는 칸쿤의 일일 관광권 안에 위치한 덕분에 지금처럼 유명해진 것이 아닐까? 세계 7대 불가사의 운운할 정도로...


Oriente사 2등 버스로 메리다에 도착하자 어제 찜해 두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 Oliva Enoteca를 찾아간다. 오랫 만에 제대로 된 식당에서 전채요리로 문어(Pulpo) 한 접시와 먹물파스타를 시키는데 그 맛이 일품이다.

이탈리아에서도 이렇게 맛있는 요리를 먹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식당 분위기는 얼마나 또 우아한가? 주위를 둘러보니 멕시코의 선남선녀들이 다 모였다. 배우 같은 외모와 날씬한 스타일에 날아갈 듯한 의상까지 우아함이 넘쳐 난다. 피부색은 당근 하얗다. 거리에서, 광장에서, 버스칸에서 여태 보던 멕시칸들과는 전혀 다른 사람들이다. 그동안 크리오요(스페인계 백인혈통)들은 다 어디 있나 궁금했는데 바로 이런 곳에만 있구나. 우리는 처음으로 멕시코에서 순수를 자랑하는 유럽인의 얼굴을 본다.


멕시칸들이 아무리 혁명을 노래하고 사회주의를 외쳐도 이 부티나는 크리오요들은 언제나 이런 곳엘 우아하게 드나들 것이고 자손 대대로 잘 먹고 잘 살겠지. 새까맣게 탄 얼굴에 땀에 절인 여행복을 입고 그들 옆에 앉아 있는 우리가 이 우아한 멕시칸 유럽인들의 식사에 불쾌감(?)을 주지 않기를 바라며 오지랖도 넓게 쓸데없이 남의 나라 걱정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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