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의 인구로 천만 명을 다스린 잉카제국
어젯밤은 일부러 샤워도 하지 않고 잤다. 커피도, 술도 입에 대지 않았다. 고산병 예방에 좋다는 코카 차만 난생처음 홀짝홀짝 마셨는데 새벽 3시쯤 잠시 눈을 뜨니 머리가 지근지근 두통이 보통이 아니다. 아! 고산병은 내게도 예외가 아니구나! 얼른 타이레놀을 한 알 먹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는데 다행히 8시까지 푹 자고 일어나니 몸도 마음도 한결 개운해진다..
어제 비가 온 탓인지 오늘 쿠스코의 아침은 유난히 맑고 상쾌하다. 아침을 먹고 나니 10시가 다됐다. 민박집 여주인 말로는 쿠스코의 요즈음 날씨는 대체로 오전엔 좋다가도 오후에는 비가 오는 경우가 많으니 우산을 챙겨 나가란다. 짐을 바삐 싸서 맡겨놓고 어제 갔던 길을 따라 다시 아르마스 광장으로 향한다.
그런데 어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오늘은 눈에 팍팍 들어온다. 화창한 날씨 때문인가? 한결 나아진 기분 때문인가? 다행스럽게도 타이레놀의 약발 때문인지 두통도 가신 것 같다. 작은 아치문을 지나니 오른쪽으로 오래된 교회 건물 하나가 넓은 잔디밭 위에 아침 햇살을 이고 선연히 서 있다.
잉카제국의 태양 신전, 코리칸차(Qorikancha)를 허물고 그 위에 지었다는 산토 도밍고(Santo domingo) 교회다. 교회 건물 아래 담도 없는 계단식 잔디밭이 보이길래 나도 모르게 들어갔더니 어디선가 경비원이 외치는 듯한 소리가 막 들려온다. 나가라는 소리 같다. 그럼 잔디밭에 있는 사람들은 뭐지? 하며 돌아 나와 시커멓게 변색한 태양의 신전 석축이 아직도 그대로 남아 있는 산토도밍고 교회 뒤편으로 가니 교회의 입구가 보이고 사람들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고 있다. 잔디밭은 입장료를 내고 교회 입구를 통해서 들어갈 수 있나 보다.
중남미의 교회들은 대부분 스페인 바로크의 아류로 비슷하게 지어져 나는 별다른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 교회 건물만은 잉카제국의 비극을 상기시키는 유명한 건축물이라 들어가 보고 싶긴 하지만 입장료(15 솔)도 비싸고 시간도 없어 교회 주위를 찬찬히 돌아보고 아르마스 광장으로 다시 향한다.
우중충하던 어제의 아르마스와는 달리 오늘 아침의 아르마스는 눈부실 만큼 아름답고 싱그럽다. 광장은 사람들로 붐비고 훨씬 더 활기차다. 광장의 인포메이션을 찾았더니 한 직원이 친절한 영어설명과 함께 쿠스코의 지도를 거저 준다.
쿠스코는 아르마스 광장을 중심으로 웬만한 곳은 다 걸어서 갈 수 있는 작은 도시이다. 한때 <세상의 배꼽>이라고 자랑할 정도로 광대한 영토를 자랑하던 잉카제국의 수도였다. 하지만 지금은 단지 마추픽추를 가기 위한 거점 도시일 뿐 겨우 남아 있는 몇 조각의 돌들만이 지난날 잉카제국의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잉카제국은 원래 쿠스코 계곡의 한 작은 부족으로 출발했다. 서기 1,200년에서 1,400년 사이 점차세력을 확대하고 인근 부족들을 점령하기 시작하여 불과 60년 사이에 콜롬비아 남부에서 칠레 중부까지 4,000km에 이르는 광대한 대제국으로 발전하였다. 잉카제국은 불과 10만 명의 인구로 700개의 언어를 가진 1,000만 명의 제국민을 거느린 황제 국가이기도 했는데 그 비결은 뛰어난 지배체제와 관리능력 때문이란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하는 잉카제국은 감추어진 도시 마추픽추와 1,532년 피사로의 오합지졸 군사 168명(기병 62명, 보병 106명)에 의하여 황제가 포로로 잡혀 죽고 8만 명의 군대가 어이없이 하루아침에 무너진 헛(?) 제국의 오명뿐이다.
쿠스코의 상징 12각 돌을 찾기는 어렵지 않았다. 지도를 보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가 관광객들이 갑자기 많아지는 지점, 줄지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 지점이다. 수레도 철제도구도 사용할 줄 몰랐던 잉카가 저 무거운 돌들은 어떻게 옮겼으며 어떻게 다듬어서 종이 한 장 들어갈 수 없게 아귀를 맞추었는지 몇 번을 보아도 신기하다.
광장 한 싸구려 패스트푸드점에서 간단히 점심을 때우는데 이곳저곳에서 심심찮게 한국말이 들려온다. 젊은 커플도 보이고 친구들끼리 몇 명씩 뭉쳐 다니는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최근 방송을 탄 후 쿠스코와 마추픽추가 한국인들의 핫 관광지가 된 것을 실감한다. 어제 들린 한국여행사 사장도 50명의 한국 단체 손님을 픽업하기 위하여 리마에 출장 중이라고 했었지.
점심을 해결하고 택시를 잡아 삭사이와만(Saqsaywaman)으로 향한다. 광장에서 불과 2km 정도 나지막한 언덕에 위치한 삭사이와만은 걸어서 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다. 하지만 민박집 여주인의 충고를 따라 고산병 때문에 올라갈 때는 택시를 타기로 했다. 삭사이와만 입구에 내리니 뜻밖에 너무나 조용하다. 여기가 잉카제국의 유명 유적지 맞아? 그런데 입장료가 무려 70 솔(23,000원)이다.
어제 여행사에서 들은 바로는 쿠스코는 주요 관광지를 몇 개 권역으로 묶어 패키지로 통합 입장료를 받는다고 한다. 패키지 코스 중 한 곳만 보든지 다 돌아보든지 입장료는 동일하다는 이야기이다. 쿠스코 관광은 대부분 한나절 또는 하루 일정으로 여행사 가이드를 따라 권역별 패키지 투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나는 시간도 넉넉지 않고 여행사 가이드 따라다니는 투어를 좋아하지 않아 삭사이와만 한 곳만 보기 위해 왔는데도 70 솔을 내야 한다. 전형적인 끼워 팔 기네.
비싼 입장료가 불만스러워 투덜거리며 들어섰지만, 입구를 들어서는 순간 나의 입은 벌어지기 시작한다. 생각보다 넓은 언덕바지에 100톤이 넘기도 하는 거대한 돌들 하나하나를 병풍처럼 맞추어 쌓은 석벽이 600년 풍상과 지진에도 끄떡없이 버텨오며 웅자를 자랑하고 있다.
쿠스코가 자랑하는 시내의 12각 돌은 이곳 석벽에 비하면 빙산의 일각인 것만 같다. 사실 삭사이와만은 요새인지 신전인지 또 다른 무슨 용도가 있었는지 지금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한다. 그러나 전쟁이 있을 때마다 삭사이와만은 천혜의 요새로 사용되곤 했다. 1,53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는 잉카제국을 침공하여 아타우알파 황제를 볼모로 잡아 엄청난 황금을 챙긴 다음 무참히 죽여버린다. 그 후 허수아비로 세운 젊은 황제 망코가 의외로 피사로에 반기를 들고 에스파냐 군대와 결사 항전을 벌였던 요새가 바로 이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잉카제국의 허망한 멸망과 스페인 군대의 일방적 승리는 단지 승자의 기록일 뿐이다. '잉카 최후의 날'이라는 책에서 킴 매쿼리(Kim Macquarrie)는 새로운 관점에서 잉카제국 멸망 당시의 상황을 실제에 근거하여 재조명하는데 피사로의 침공 이후에도 잉카 사람들은 호락호락하게 굴복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켜 에스파냐 군대를 궁지로 몰아넣기도 하고 밀림에서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무려 36년간을 결사 항전하였다고 말하고 있다.
어쨌든 잉카제국과 마야, 아즈텍 등 아메리카의 빛나는 문명들은 어느 날 갑자기 외계인처럼 나타난 서구의 총과 말, 철제 무기, 세균 앞에 속수무책으로 허무하게 사라져 버렸다. 신대륙 발견은 스페인에는 엄청난 부와 영광을 가져다주며 서구의 역사를 바꾼 대사건이지만, 아메리카 원주민에게는 폭력과 수탈과 야만으로 가득 찬 대재앙의 시작일 뿐이다.
인간에 대한 신의 무한한 사랑과 인권을 입버릇처럼 외치던 서구문명이 20세기 초까지 우생학에서 남미의 원주민과 메소 티쏘(원주민과 혼혈)를 동물학으로 분류하였다는 사실은 새삼스럽게 별로 놀랄 일도 아니다.
널따란 삭사이와만 석벽의 한쪽에는 축석들이 뽑혀 나간 흉물스러운 생채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에스파냐 군대가 아르마스 광장의 교회들을 짓느라고 돌을 빼간 자국이다. 가톨릭의 광신적 선교와 타 문화에 대한 무지와 배타성은 일신교가 갖는 피할 수 없는 현상이지만 유독 아메리카 대륙에서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 이슬람은 중세까지 힘과 세력이 서구와 맞먹을 정도로 강력했던 반면 아메리카는 너무 힘이 없었다. 그들의 문명을 마구 파괴하고 사람들을 짐승처럼 짓밟아도 대항할 힘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남미의 비극이다.
쓸데없는 상념으로 잠시 우울한 기분이 되어 석벽을 따라 천천히 위로 올라가니 널따란 전망대가 나오고 눈 아래로 쿠스코 시내가 한눈에 펼쳐진다. 아직 오전 시간이라 그런지 겨우 관광객 십수 명이 아래를 바라보며 사진을 찍고 있다. 옆 건너편 언덕에는 커다란 하얀 예수상(Cristo Blanco)이 역시 아래를 내려다보며 서 있다.
전망대를 내려와 맞은 편의 넓은 언덕을 오르는데 계단 오르는 발걸음이 무척이나 힘들고 무겁다. 그제야 이곳이 해발 3,600미터 높이의 고지대임을 실감한다. 남쪽 언덕 곳곳에는 넓은 광장과 집터, 알 수 없는 용도의 돌 유적들이 즐비한데 그중에서도 매끈매끈하게 닳은 자연석으로 만들어진 돌 미끄럼틀이 눈길을 끈다. 600년 전에도 잉카의 아이들이 즐겨 탔을 미끄럼틀에 관광객들이 환호하며 미끄럼을 타고 있다.
남쪽 언덕에서 내려다보는 삭사이와만 요새는 더욱더 장관이다. 이 넓은 요새에 인적은 드문드문. 청명한 오후의 햇살 아래 작은 바위 위에 잠시 앉아 쉬며 기다란 석축을 바라보며 잉카제국의 숨결과 비운의 순간을 느껴본다. 해마다 6월이면 이곳에서 화려한 잉카제국의 제전이 열린다고 한다. 삭사이와만이야말로 잉카제국의 자부심이자 제국 역사의 산증인이다.
내려오는 출구 쪽에 나이 든 인디오 여인네가 무엇인가를 팔고 있다. 이 길이 쿠스코로 내려가는 길이냐고 물으니 Si, Si 하면서 손을 들어 내려가란다. 내려가는 길은 약간의 경사가 있지만, 전혀 힘들지 않다. 좁은 길 양쪽으로 다닥다닥 붙은 작은 집들 사이로 고단한 서민들의 모습을 마주친다. 아르마스 광장까지는 걸어서 불과 15분.
숙소로 돌아와서 큰 짐은 두고 50리터짜리 백팩 하나만 매고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로 가는 콜렉티보(collectivo) 버스 정거장을 향해 걷기 시작한다. 난생처음 매어 보는 50리터짜리 백팩이 무겁기도 하고 어색하지만 다행히도 버스 정거장은 숙소에서 걸어서 10여 분 거리에 있다. 버스 정거장은 찾기도 어려울 만큼 작은데 고작 우리나라의 마을버스 크기의 버스가 두 대 정도 서 있다. 콜렉티보 버스는 시간을 정해놓고 다니는 버스가 아니고 사람이 차야 출발하는 승합 버스이다. 다행히 오래 기다리지 않았는데도 20여 명의 승객이 금방 찬다. 대부분은 현지인들 같고 외국인은 몇 안 돼 보인다. 요금은 10 솔.
버스는 쿠스코 시내를 빠져나가 황량하고 험준한 안데스 산길을 구불구불 돌아가는데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들이 심심치 않고 이색적이다. 나무 한 포기 없는 황량하고 주름진 산 너머로는 이름 모를 안데스의 높은 산들이 얼룩소처럼 잔설을 이고 있고, 산 아래 평지에는 초록의 식물들이 널따랗게 심겨 있다. 내 옆자리에 탄 서양 모녀 둘은 버스가 출발한 지 30분도 안 되어 고산병 때문인지 멀미 때문인지 토하고 난리다.
버스는 달리는 도중 작은 마을을 지날 무렵이면 조그만 보따리를 든 현지인을 내려주기도 하고 도중에서 손을 흔드는 현지인을 태워주기도 하는데 보는 풍경들이 별로 낯설지를 않다. 버스는 우루밤바(Urubamba) 계곡을 거쳐 2시간여 만에 어둠이 깔린 오얀타이탐보에 무사히 도착한다.
먼저 Peru Rail 사무소를 찾아 내일 탈 기차표를 픽업하고 숙소까지는 길가에 서 있는 모터 택시를 탄다. 말이 택시이지 작은 삼륜 오토바이를 개조한 것이다. 드디어 내일은 대망의 마추픽추를 만나러 가는 날이다. 숙소 앞 작은 계곡의 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들리는 설레고 기분 좋은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