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육아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00세 추천 도서' '초등학생 필독서' '사서 추천도서 ''교과서 수록도서' '교과연계도서' 요즘 아이들은 책을 안 읽어서 문해력이 떨어진다고 난리던데 이렇게 많은 책들은 대체 누가 읽는 건지 모르겠다. 무슨 책이 좋을지 몰라 추천글을 읽으면 그 책은 꼭 읽어야만 할 것 같고, 미리 보기로 본 책은 재미있어서 우리 아이가 잘 읽을 것만 같다. 나름 현명한 엄마가 되어보자고 열심히 리스트업 해서 동네 도서관에 가보지만, 한발 늦을 때가 다반사다. 또 '대여중', ‘예약 불가’다. 대여 도서의 부재는 그 책에 대한 집착으로 바꿔주는 힘이 있다. 이렇게 인기가 많은 책이면, 우리 아이도 잘 읽을 테고, 예약이 불가능할 정도로 대기가 많다면 이 책은 찐인 거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다. 가자, 서점으로.
서점을 가는 발걸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입꼬리는 슬그머니 올라간다. 집안 가득한 책장에 남편의 눈치를 받지 않고 또 새로운 책을 넣어둘 수 있는 핑계가 생겼다. 야호! 다 읽지도 못하면서 책 사는 게 왜 좋은지 나도 나를 모르겠다. 막상 서점에 가서 책을 사려고 보면 비싼 가격에 흠칫 놀라게 된다. 그래서 계산대 가기 전 1분 정도 잠시 생각에 잠기지만, 결국 과감하게 결제를 한다. 내 아이를 위한 것이지 않은가. 몸에 안 좋은 군것질거리도 아니고, 며칠 쓰고 버리는 장난감도 아니며 하다못해 옷이나 신발보다 더 오래 사용하는데... 그런 것 따지고 보면 싼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사다 놓으면 언젠간 읽을 테고, 안 읽으면 내가 읽고 나서 중고로 팔면 되니까 뭐. 아무도 뭐라 하지 않지만 혼자서 많은 합리화를 하며 또 책을 한가득 사들고 나온다.
출판사는 내 마음을 남편보다 더 잘 안다. 어쩜 필요한 책만 쏙쏙 골라 조합을 해서 전집 혹은 시리즈로 묶어 놨는지.. 술수인 거 알면서도 안 넘어갈 수 없다. 어차피 이 책도 구매하려 했었고, 저 책은 필요했던 거니까. 이렇게 5~6권 살 돈으로 10권을 시리즈로 사는 게 이득인건 수포자도 알거다. <지원이와 병관이 시리즈>를 시험 삼아 구입해 본다. 역시나 내 예상대로 재미있게 읽어주었다.
“좋았어, 내 계획대로야. 전집은 돈지랄이 아니었어.”
'무이자할부' '30% 할인가' 엄청난 특혜와 구입 시 주어지는 자체개발 희귀템 워크북. 거기다가 구매 후에는 책이 전시품이 되지 않도록 이끌어 줄 소모임까지!! 어느 하나 부족하지 않게 주기적으로 필요한 책을 알려주고 설명해 주고, 이끌어주는 유토피아를 찾았다. 판매자 아이들의 책을 읽고 있는 사진과 카페 스터디의 인증글은 나에게 간증과도 같았다. 이거다! 내가 책을 더 열심히 찾아본다고한들 이보다 더 좋은 걸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책을 사서 워크북을 하고, 글을 꾸준히 올리면 우리 아이도 저 아이처럼 똑똑해지겠지. 엄마표로 SKY대 보낸 엄마가 되어 인터뷰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어느새 나는, 카페에 가입을 하고는 뿌듯한 마음으로 인증샷을 올리고 있었다.
12개월 할부가 쌓이고 쌓여 매 달 도서비용만 몇십만 원이 나가기 시작했다. 책장에 쌓이다 못해 박스를 뜯지도 못한 책들은 베란다에서 애물단지가 되었다. 어미의 마음을 아는지 새 책이 오면 아이들이 1~2권 꺼내 읽어주기는 했지만, 그 날 뿐이었다. 워크북은 언제나 열어서 확인만 한 새것인 상태였고, 그렇게 오랫동안 묵혀 있다가 결국 중고나라행이 되는 건 이제 익숙한 레퍼토리였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숙성된 책을 팔 생각에 중고사이트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그동안 썼던 글 목록을 보았다.
“이 호구야, 정신 안 차려?”
208개의 글들이 나를 향해 외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공구를 끊었을 거라 생각하면 경기도 오산이다. 끊지 못했다기보다는 끊지 않았다. 바쁘게 자라는 아이에게 필요한 책은 넘쳐났고, 공구에서 추천하는 책들은 한눈에 봐도 안 읽으면 큰일 날 듯한 양서들로 보였다. 한번 발동 걸린 나의 책탑이 여전한 것도 문제였다. 공구는 계속되었지만, 호구는 중단했다. 내 나름의 구매 기준을 세워가기 시작한 것이다. 공구 바닥에 3년 넘게 몸담아보니 이제는 게시글만 훑어도 이번 공구의 패턴과 특징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공구를 잘 열어 판매하는 사람만 전문성이 쌓이는 게 아니었다. 거기에 갖다 바친 돈의 액수와 비례하여 공구 결제창을 쉼 없이 두드리던 나 같은 고객도 나름의 전문성이 쌓였다. 경지에 올랐달까. 고수가 된 호구는 이제 공구가 올라와도 바쁘지 않다. 빨리, 꼭 사야 한다는 조바심에서 자유로워졌다.
호구, 넌 이제 자유다!
+) 꿀팁공유!
1. 공구라고 무조건 싼 게 아니다. (네이버스토어, g마켓, 쿠팡 등 비교필수!!)
2. 같은 제품을 여러 인플루언서가 공구한다. (추가 자료, 선물 주는 곳 공략하자)
3. 사고 싶은 물건은 다음 공구 때 구입해라. (공구는 주기적으로 반복된다. 시간을 벌어 충동구매 줄이기)
4. 중고 판매글이 찐 후기다 (중고판매글에는 왜 파는지 이유가 있다. 안 써서 파는 건지, 충분히 쓰고 시기가 지나서 파는 건지.. 진정한 내돈내산 후기를 이용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