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나무의 여신, 히가시노 게이고>
몇 년이 흘러도, 아무리 미래로 나아가도 인간은
언제나 길을 찾아 헤매는 것이니라.
곧 다가올 앞날에 대한 불안이 사라져 없어지는 날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이니라.
어머, 이거 나한테 하는 얘기네. 소설 속 여신이 소년에게 하는 말이 뼈를 때리기 시작한다. 소설이 이렇게 독자에게 메시지를 강력하게 줘도 되는 건가? 그러면 철학서나 자기 계발서는 어떻게 까지 써야 하는지, 이건 엄연한 침범이 아닌가 할 정도로 대사 한 글자 한 글자를 곱씹으며 마음에 새긴다.
곧 다가올 글쓰기의 첨삭이 다가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앞날에 대한 불안을 매일 안고 사는 나는, 6월 첫 주가 오는 날을 기대하기도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앞으로 다가올 나의 험난한 길이 상상만으로도 걱정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선이입니다."라는 말을 하는 내 표정을 보고는 "알죠~ 잘 쓰셨는데요, 왜 그래요~"라고 속마음을 어루만져주던 선생님의 말이 예의상 하시는 위로라고 느낄 정도로 내 글과 내 미래에 자신이 없었는데 뜬금없는 소설 속에서 위안을 받는다.
어제일 따위 돌아보지 말라.
그때 그렇게 했더라면,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후회하는 것에 아무 의미도 없다. 그것은 모두 지나간 일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내일의 일을 염려할 필요도 없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어떻게 해야 할지 염려해도 아무 의미가 없다.
그러한 것은 아직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머, 이 여신님 용한 분이시네. 소년뿐 아니라 이 말을 들은 관객이 눈물을 훔쳤다더니 관객뿐 아니라 소설을 읽는 독자도 F( 감정형)였으면 요 대목에서 큰 위로를 받아 눈물 꽤나 흘렸겠다. 그래 이미 쓴 글이고, 제출까지 해서 피드백만 기다리는 것뿐 할 게 없다. 다시 시간을 돌려 글을 쓴다 한들 얼마나 나아질 것이며, 피드백받고 다시 탈고할 시간이 너무나 많거늘 후회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는 부질없는 짓이다. 알면서도 다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다 여신님의 말에 "믿습니다." 소리가 절로 나오며 고개를 끄덕인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선생님의 첨언을 듣고 나서 생각하자.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에서 아무리 굴려보아도 결국엔 쓰레기글일 테니 날씨까지 완벽한 주말에 혼자 어두운 먹구름을 끌어안고 있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다.
소중한 것은 바로 지금이니라.
지금 건전한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그로써 행복한 것이니라.
아멘이 절로 나온다. 이래서 종교를 갖고 그렇게 수천번 몸을 숙이나 보다. 지금 나는 행복한가? 일단 우리 가족부터 무탈하고, 저 멀리 사촌들까지 별일 없는지 무소식인 것부터 행복이다. 지금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누울 공간과 손을 내밀어 한없이 집어먹을 수 있는 주전부리가 있고 창밖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이 적당하니 이 또한 감사할 일이다. 걱정, 염려 따윈 개나 줘버리고 맛있게 커피나 한잔 타서 베란다에 앉아 흔들리는 나뭇잎 사이로 지나가는 뭉게구름과 파란 하늘을 보며 이 순간을 만끽하자.
생각해 보면 지금이 제일 행복한 시간이다.
주말 오후, 아이들이 특강을 나간 조용한 집에서 나 홀로 독서 후 글쓰기를 하며 고찰의 시간을 갖다니...!
얼마 만에 느끼는 호사인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노는 것도 아니라 수업 중이라 이 커피가 더 맛있게 느껴지고, 옆에서 그러거나 말거나 대자로 누워 드르렁 코를 고는 남편이 늙은 사자처럼 애처로워 보이는 건 난 오늘 솔직 건전한 마음으로 이 행복을 누리기 때문이겠지.
누리자.
소중한 이 시간을.
이제 30분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