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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Nov 12. 2023

계획적인 드라마작가의 어느 평범한 금요일

2028년 11월 10일 금요일,  날씨를 느낄새도 없이 바쁨

'500+'

아침부터 작가회의 , 드라마 회의 연달아 했더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지고있다. 몇 시인지 확인도 할 겸 핸드폰을 열어보니 카톡 아이콘 상단에 읽지 않은 카톡이 500개가 넘었다는 표시가 눈에 띈. 평소에도 잠깐 일을 하다 핸드폰을 들여다보면 100개는 훌쩍 넘어있으니 오늘 같은 날 500개는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럼 그렇지, 역시나 500개의 대화는 한 곳의 대화창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물론 다른 카톡도 있지만, 이곳이 압도적이다.)  '슬초브런치 2기 모임'. 여긴 5년이 지나도 매일 시끄럽다. 어느 날은 아이의 고민상담으로 함께 울고, 어느 날은 우연히 들은 불륜 이야기에 열을 올리다가 누군가의 출간 소식으로 갑자기 온라인 축하 파티가 열리기도 한다. 그 시끌벅적한 모임이 오늘 오프라인으로 직접 만나는 날이다. 브런치 작가가 되던 2023년 11월부터 매 년 모임을 갖는데, 몇 번 만나지 않았지만 몇 십 년 동안 만난 친구처럼 매 번 만날 때마다 반갑고 편해서 이 모임만은 절대 빠지지 않고 참가를 하려고 한다. 7기 후배 작가님과의 만남이자 동기 및 선후배 작가들의 출간 축하 자리라 다들 한 껏 꾸미고 올 생각에 며칠 전부터 대화창이 난리더니 만나기 직전까지도 끊임없이 카톡이 울린다.

"저 이제 공항 도착했어요. 얼른 갈게요."

"이번 모임 신라호텔 맞나요? 저 혼자 다른 데 가고 있는 거 아니죠?"

"아, 이번 모임 진짜 가고 싶었는데.. 너무 아쉽네요. 하와이에서 제 영혼을 보내니, 빈자리에 앉혀주세요"

"저는 오늘 방송 녹화가 있어서 늦을 것 같아요. 뒤풀이 장소 변경되면 알려주세요."

"저도 강연 끝나자마자 바로 출발할게요. 오늘은 질문 3개만 받아야겠어요 ㅎㅎ"

'전설의 2 기' 답게 동기들은 다들 다양한 분야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 카톡 내용을 보니 오늘도 모두 얼굴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다들 70대 노인이 되어 기력이 없어져야 전원 모일 수 있으려나.




"작가님, 다 되었습니다."

대화창 벽 타기를 다 하지도 못했는데 어느새 헤어와 메이크업이 끝났다.

"무슨 작가님이 연예인보다 더 바빠요, 작가 메이크업하느라 대기하는 연예인이라니.. 제 체면이 안서잖아요."

"야, 나 옆에서 1시간째 대기하고 있는 거 안 보여?20년만에 헤어 대기해본다."

"죄송해요, 오늘 제가 진짜 중요한 모임이 있거든요. 한 번만 봐줘요."

"에이~ 농담이에요, 저희 오늘 엄청 한가해요. 작가님 옷은 고르셨어요? 제 스타일리스트가 여배우들도 같이 하는 앤데,  불러올까요?"

"아, 괜찮아요. 저 옷 준비해 왔거든요. 이 옷인데, 어때요? 배우님들이 보시기에 괜찮아보여요?"

"오~~ 역시 스타작가라 클래스가 다르네요. 에르메스 풀장착이라니! 작가님이랑 너무 잘 어울려요."

"아~ 난 순간 우리 드라마 여주인줄 알았잖아."

립서비스인걸 알면서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이동욱 배우님과 공유 배우님은 진짜 귀신인지 '도깨비' 때의 그 얼굴과 그 능청스러운 유머가 변함이 없다. 그게 좋아서 내가 이번 드라마에 캐스팅하기도 했지만.




5시. 모임까지 조금 여유가 있을 것 같아 집에 들러서 차를 가지고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한남 더 힐이요"

방송국이나 영화 관계자들 만나기에 편하려고 한남동으로 이사했더니, 시간과 상관없이 차가 너무 막혀서 안 그래도 싫었던 운전이 더 싫어졌다. 남편이 또 택시 탄 걸 알면, 차는 장식용이냐고 S클래스나 7시리즈 중에 하나는 팔라고 또 잔소리할 테니 집에 들르지 말고 주차장으로 바로 가서 차만 가져올 생각이다. 신사동 사무실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되는데 1시간씩 걸릴게 뭐람. 이번 참에 그냥 이 집을 전세 주고, 신사동 사무실 꼭대기로 이사해 버릴까 하는 생각에 태블릿을 켜서 신사동 10층 전월세계약서를 살펴본다.

'아직 6개월이나 남았네. 여기가 나는 편한데, 애들은 학교 다니기에 쫌 그러려나? 아무래도 거기보단 대치 팰리스가 낫겠지? 거긴 전세가 언제까지였더라..?'

전월세 계약서 여러 개를 찾아보다 결국 대치동 아파트는 못 찾고 집 앞에서 내렸다. 제목을 건물이름, 호수로 바꿔놓는다는 게 바쁘다고 미뤄놨더니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정리 안 돼있는 건 딱 질색이라 차 안에서 바꾸고 출발할까 했지만 브런치모임 알림 소리에 우선 태블릿을 덮는다. 내일은 평소보다 30분만 더 일찍 일어나서 신원호 PD팀과의 조찬모임 가기 전에 바꿔야겠다. 차에 시동을 걸자마자, '신라호텔'로 자율주행을 걸고는 익숙하게 시계에 대고 소리친다. "시리야, 내일 일정 알려줘."


사진: Unsplash의Martin Kat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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