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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Nov 25. 2023

함께라서 햄볶아요.

슬초브런치 오프라인 모임에 다녀오다.

'엄마, 나 다쳤어'

'놀다가 2호랑 부딪혔어'

'피나. (사진)'


나의 롤모델인 이은경 선생님의 강의를 직접 만나서 듣는 영광스러운 시간에도, 동기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친목을 다지는 중요한 시간에도 계속 눈치 없이 울리는 핸드폰이 거슬려 슬쩍 들여다본다. 1호가 인중 옆에 밴드를 붙이고는 사진을 찍어 보낸 에 순간 너무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대충 봐도 밴드가 빨간 것이 피가 꽤 나는 것 같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은 퉁퉁 부어서는 엄마에게 보여주겠다고 안 운 척하며 혼자서 입꼬리 억지로 올려 셀카를 찍었다.

'아이고~ 아들아,  엄마가 반나절만 나갔다 올 테니 아빠랑 찜질방 가서 재밌게 놀다오라 했지, 다쳐오라고는 안 했잖니.'

'아니, 이 사람은 애들을 어떻게 봤길래 저렇게 다칠 정도로 방치를 했대.'

아이의 사고로 인한 걱정과 속상함이 남편의 원망으로 바뀌어 가며 머릿속이 시끄러운데 눈앞에 있는 나의 롤모델 선생님 부부는 불필요한 스킨십(당사자의 표현입니다. 오해없으시길 ㅎ)기습 감사인사(라고 쓰고 애정 표현이라고 읽는다.)로 분위기를 흐뭇하게 바꾸어 놓으신다. 이래서 롤모델인가? 따라가고 싶지만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또 이렇게 멀어져 가는구나 하며 동기 작가님들에게로 관심을 돌려본다.

작가님들과의 첫 만남이었고, 기대하던 자리였다. 사람 많고, 낯선 환경을 벌레만큼이나 싫어하지만, 그럼에도 가고 싶었던 모임이기에 큰 용기 내어 왔건만 이건 또 무슨 상황인지 어안이 벙벙하다. 어차피 지금 나서서 가봤자 2시간이 넘게 걸리니 크게 도움이 안 될 거라는 판단이 선다. 우선 정확한 상황을 확인차 메시지를 보내려 카톡을 보니 이미 남편에게서 여러 개가 와있었다.

'1호 다쳤어. ㅠ.ㅠ'

'2호랑 물속에서 부딪히면서 이에 찍혔는데 찢어진 건지 벌어진 건지 모르겠어.'

'지금 지혈하고 나와서 병원 가는 중'

'어디로 가야 해? 성형외과? 피부과?'

'바쁜가 보네. 그냥 대학병원 간다.'

남편의 당황함이 카톡으로 느껴진다. 본인도 많이 놀랬으리라. 그래도 와이프가 오랜만에 화장하고 코트 입고는 저 멀리 서울까지 가서 뭘 좀 배워온다는 게 마음이 쓰였는지 전화 한 통 없이 카톡만 보낸 것을 보니 원망 가득했던 마음이 미안함으로 바뀐다.

친절한 그의 설명을 보며 심하진 않다는걸 눈치챘다.

'얼굴이니 성형외과를 가야지. 근처에 지금 문 연 병원이 있는지 검색해 보고, 바로 꿰맬 수 있는지 물어봐. 진료 가능 한 곳 없으면 그냥 대학병원 응급실로 가서 성형외과랑 피부과 협진 부탁하자.'

'나는 지금 가도 어차피 2시간은 넘게 걸리니 여기 마무리하고 바로 갈게.'

'1호 주민등록번호는......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바로 전화해.'

 열심히 메시지를 남겨놓고는 현재 내가 있는 곳에 다시 집중해 보려 애를 써 본다. 불안해서일까, 평소답지 않게 더 하이텐션으로 대화를 하게 된다. 애써 덤덤한 척하려 했을 뿐인데 나도 모르게 잠깐의 어색한 침묵이 생기면 시답지 않은 소리를 해대며 이미 끝난 말을 계속 이어 가 본다. (이 자리를 빌려 저의 정신없는 행동과 의미 없이 떠드는 말로 불편하셨을 동기님들, 죄송합니다 ㅠ.ㅠ)


 알고 보니 매니저로 숨어서 활약해 주신 이성종 선생님의 마무리 인사와 박수로 드디어 모든 순서가 끝이 났다. 그 순간 빛의 속도로 널브러진 코트, 가방, 쇼핑백과 텀블러까지 모두 챙기고 부리나케 나선다. 몇 발짝 안 떼었는데 갑자기 우당탕탕 소리가 났다. 하루 종일 들고 다녔던 종이 쇼핑백이 찢어져 걸레처럼 너덜거린다. 급한 마음에 선생님의 사인이 담긴 책과 선물 받은 책을 넣어두었는데, 뛰면서 책 모서리에 종이가 찢긴 모양이다. 토요일 오후, 서울역 지하차도에 오고 가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쭈그려 앉아 바닥에 흩뿌려진 짐들을 하나 둘 집는 내 모습이 처량하다. 그래도 아줌마라서인지 창피하진않아서 다행이다 싶었다. 어깨에, 가방에, 손에 척척 둘러메고는 한숨을 푹 쉬며 기차를 타러 가며 그간 묵혀두었던 자책모드가 시작되었다.

 '왜 이렇게 짐을 바리바리 들고 왔니. 이럴 거면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보부상 가방이나 들고 올 것이지. 멋 부린다고 왜 작은 가방 메고 와서는... 사서 고생한다, 진짜.... 어쩐지 오버하더라.'

 '그러게 그냥 평소처럼 살지. 온라인에서만 열심히 활동했어야 했어. 안 하던 거 하려니 이렇게 어설프고 일이 꼬이잖아. 작가님들이 나 분리불안 있는 줄 알고 이상한 사람으로 생각했을 거야. 계속 이리저리 움직여대서.'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데 사람들이 곁눈질로 쳐다보며 이야기하는 게 느껴진다. 평소 같았으면 그 시선이 민망해 자리를 옮겼을 텐데 오늘은 그러거나 말거나 신경 끄기로 했다. 나 자신에게 화가 나고 속상해서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패딩과 목도리로 추위와 맞서 싸우는 사람들 속에 혼자 파란 셔츠 하나 달랑 입고는 손이 모자라 어설프게 많은 옷가지와 짐을 이고 있는 내 모습이 눈에 안 띄면 그게 이상하겠다 싶다. 낮술 한 아줌마로 생각되었을까? 어쩌면 열받아 죽을 것 같아 보이는 내가 무서워 보였을 수도 있겠다.

 기차에 타고나니 집에 간다는 게 실감이 나서인지 진정이 되기 시작한다. 가지고 있던 짐들을 의자와 테이블에 올려놓고는, 들고 다니기 쉽게 차근차근 정리를 했다. 그리고나서야 자리에 앉아 물을 한 모금 마시며 1인 좌석을 예매하길 잘했다며 스스로에게 칭찬을 건넨다. 핸드폰을 꺼내어 남편이 실시간으로 전달해 준 아이들의 상황을 살피고는 준비해 둔 저녁을 먹으며 쉬고 있으라고, 기차를 탔으니 금방 갈 거라며 그들을 안심시킨다. 이제서야 내가 나처럼 느껴진다. 다행이다. 이만해서 다행이고, 해결되어서 다행이다.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 기분이다. 모든 게 정리가 되자, 1시간 전쯤 바람처럼 빠르게 나오면서 스치듯 봤던 장면들이 떠오른다. 헤어짐이 아쉬워 이은경 선생님을 붙잡고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찍던 모습, 잠깐이라도 얘기를 더 나누자며 인원을 모으는 동기들, 뒤풀이 이야기를 하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던 1기 선배님들의 표정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클로즈업되고 슬로 모션이 걸린 채로 한 명 한 명 스친다.

'맞아, 내가 이 모습이 실제로 보고 싶었던 거였어. 나도 이 모습이었거든.'

서로 다른 모습이지만 표정은 모두 똑같았다.

반갑고, 즐겁고, 좋았다.

처음 보는 사람인데 보고 싶었다.



 

 짧아서 아쉬웠던 만남을 회고하다 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아이들도 엄마의 모임이 궁금했는지 만나자마자 이것저것 묻기 바쁘다.

"거기 가서 인상 깊었던 일이 있었어?"

"그럼~ 엄청 많았지."

"그럼 그중에서 뭐가 가장 인상 깊었어?"

"음..... 아! 선생님이 우셨어. 엄마도 선생님 우시는 거 보니까 눈물이 나더라."

"또 우셨어? 이번에도 너무 웃겨서? 대체 엄마들은 왜 자꾸 웃다가 울어?"

"그러게. 너무 좋으면 눈물이 나더라."

아이들의 말에 미소가 지어지며 문득 행복을 느낀다. 선생님이 마무리로 말씀하신 '가족이 옆에서 무탈하게, 함께 해주어 고마운 마음'이 이런 거구나 하고 깨달음도 온다. 배운 것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알려주신 그대로 바로 실행으로 옮겨야겠다.

"다들 고마워. 덕분에 오늘도 많이 배우고 왔어."

함께라서 햄볶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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