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다. 어제는 그렇게 비가 하루 온종일 내리더니 오늘은 약 올리는 것처럼 화창한 날씨에 선선한 바람까지 불어준다. 이런 건 이별공식에서나 통하는 건가, 우울공식이 따로 없다면 이번참에 만들어야겠다. 오후 11시~1시. 말 그대로 대낮에 길거리를 혼자서 걸어 다니며 소리 없이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혹여나 아는 사람을 만나면 동정심을 유발하며 목놓아 울어볼 준비를 드릉드릉 하지만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고 매번 울리던 핸드폰도 조용하다는 것이 우울공식의 포인트.
평소 잘 대해주던 남편이 오늘 오랜만에 친구와 타 지역으로 여행을 떠났는데 왜 하필 그게 오늘이었고, 왜 하필 즉흥적인 여행이어서 나의 핑곗거리가 되었는지 집에 도착하자마자 앉은 소파에서 울 핑계는 남편에게로 향했다. 내가 병원을 1년 넘게 다니는데 한 번을 같이 안 가주고, 가도 어땠는지 물어봐 주지도 않고 병원 가는 날인 거 뻔히 알면서 놀러나 가고...!! 공감능력이라곤 제로인 사람인 걸 알고 결혼해서 기대하지도 않고 살았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그 점이 너무 큰 단점으로 느껴져 서운하고 서럽다.
오늘의 우울 포인트는 정신과 진료였다. 한 주간 어떻게 지냈냐는 말씀에 내가 느낀 것들을 얘기했더니 선생님께서 다짜고짜 "어떤 분은 의사를 못 믿고 약에 대해 공부해 와서는 이걸로 바꿔라, 이건 부작용이 있지 않냐 하며 항의하듯 얘기하더라. 선이 님은 약에 대한 생각이 어떠냐"라고 물어보셨다. 그래서 "약에 의존하는 것 같다"라고 했더니 갑자기 단호하게 심리상담을 병행하자고 말씀하신다. 이 대화 이전에 혹은 사이에 무언가 내 태도나 말에 오해가 있으셨나 싶기도 했는데 한 두 번 제안하신 게 아니라 알겠다고 했다. 그 순간 눈물이 또르르 떨어지며 손발이 떨리기 시작했다.
"왜 울어요?"
"무서워서요."
선생님의 단호한 태도도. 내 속마음을 드러내는 것도, 모르는 사람과 또다시 만나는 것도 모두 무섭고 두려웠다. 그리고 나의 이런 마음을 제대로 알아주지 못하는 의사 선생님에게 내심 서운했다.
이런 날, 나의 우울 동지들도 연락이 안 닿고, 동네 지인 들고 금요일이라서인지, 샌드위치 데이라서 인지 다들 카톡을 읽지 않는다. 같이 울어줄 언니는 금요일이니 수업이 없어 놀러 갈 테고, 나를 아끼고 사랑해 주는 언니는 극 T라서 내 걱정만 하다 끝날테고, 어렸을 적 친구들은 다들 직장에 있을 시간이니.. 어디 편하게 전화를 걸어 대정통곡할 곳이 없다는 것조차 세상을 잘못 살았나 싶어 진다. 정작 며칠 전만 해도 전화로 문자로 대면으로 함께 울어주고, 걱정해 주고, 응원해 주던 사람들의 마음은 가을바람에 날려 보냈는지 매번 이렇게 천벌 받을 짓만 한다.
"저 지금 너무 속상하고, 자괴감이 든다고요!!"
"저 좀 봐주세요"
"저 그렇게 쓸모없는 년인가요?"
"이거 우울증 아니에요? 심각한 거 아니냐고요!!!!!!"
어디다 크게 외치고 싶다. 어디다 외쳐야 하는지도 모르면서.
아무리 좋고 똑똑한 의사도 나의 마음속깊이 알지 못하겠지.
내 마음은 나만 알고 있는 걸 거야.
결국 혼자임을 인정하자.
그러니 알아서 잘살자.
이 사실을 모티브로 잘 참으며 살고 있었으면서 왜 갑자기 무엇에 홀린 듯 정신과를 갔으며, 또 대학병원으로 옮겨서 심리상담까지 받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이 모든 게 내가 어리석어서 이용당하는 기분이다.
오늘 진료시간에 나왔던 나를 알아보는 시간이 이런 거였을까?
나의 못난 부분을 인정하는 것? 그리고 보듬어주는 것?
이제 슬슬 지겹다. 하기 싫고, 의욕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