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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Oct 15. 2024

초등 남자 셋이서?

친구들과 음료한잔 ep.2

오후 4시 반.

누가 봐도 초등학생인 남학생 세 명이 쪼르르 들어온다.

한 명은 시무룩, 한 명은 화가 난 듯 씩씩 거리며 , 나머지 한 명은 무표정인채로 키오스크 앞에선다.


"야, 너 뭐 먹을 거야. 먼저 주문해. 나 엄마한테 전화 좀 하고."

"엄마? 나 학원 끝났는데 애들이랑 얘기 좀 하다가 갈게."


키를 보아하니 많아봤자 5학년? 은 되었을 것 같은데, 말하는 것은 어른과 다를 바 없다.

이 시간에 흔하지 않은 손님들이도 하고, 나도 그만한 아이를 키우고 있는지라 자연스럽게 관심이 가게 된다. 손에 하나씩 용돈카드를 쥐고 자연스럽게 주문을 하는 모습은 봐도 봐도 낯설다.


초코라테, 멜론주스, 아이스티를 하나씩 들고 세명의 아이들은 내 옆자리에 앉았다.


"야, 그래서 삐친 건 확실해?"

"아니 그건 아닌데... 내가 한 말을 오해했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물어보면 되잖아. 연락해 봐."

"자꾸 연락하면 날 더 싫어할 것 같아서 그래."

"그럼 내가 연락해?"

"아니. 그건 하지 마."

"하아.. 답답해. 000 그런 애 아냐. 내가 걔 좀 아는데 걔 성격 쿨해. 괜찮아."

"000 성격 좋은 건 나도 알지. 그러니까 내가 좋아하는 거잖아..."


본의 아니게 아이들의 큰 목소리덕에 대화 내용을 듣다가 마시고 있던 자몽티를 코로 뿜을 뻔했다. 

연애 상담이라니! 초등학생의 연애가 이렇게 진지하고 어른스러웠던가. 대화가 너무 흥미진진해서 더 듣고 싶어 진다. 이야기를 대충 들어보니 이미 사랑에 빠진 A는 고백을 했다가 거절당한 모양이었고, 그 후로 관심을 주기도 하고, 표현하기도 하며 다음 기회를 엿보는 것 같았다. 그래서 매 순간 그녀 앞에서의 본인의 행동과 말투를 리마인드 하고는 후회하고 반성하게 되고 그것이 고민이 되어 친한 친구들과 상담에 이른 것이다.


초등학생이나 어른이나 연애는 언제나 똑같은 것 같다.

아이들의 대화를 계속 듣고 있으려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초등학생들의 연애 상담이라니, 귀엽고도 흥미진진했다. 손에는 여전히 초코라테와 멜론주스를 쥔 채 고민을 거듭하는 A를 보며 저 나이에 저런 진지한 연애 상담을 한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했다.

잠시 후, 화가 난 듯 씩씩거리던 B가 나름의 해결책을 내놓았다.

“야, 그러면 그냥 친구로 남으면 되잖아. 나중에 다시 기회가 올 수도 있지.”

“아니야, 그러기엔 너무... 그래, 그냥 친구로 남기엔 너무 신경 쓰여,” A가 대답했다.

그러자 무표정하던 C가 무심하게 말했다.
“그럼 진짜 좋아하는 건가 보네. 친구로 남는 건 그리워지기만 할 거야. 아, 나도 누가 좀 날 그렇게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A는 머리를 긁적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 조언이 조금은 위로가 되었는지, 표정이 살짝 밝아졌다. 그 사이 아이스티를 홀짝거리던 B가 잠시 생각하더니 작전을 짜듯 말했다.

“그럼 다음번엔 그냥 자연스럽게 친구들끼리 다 같이 놀러 가자고 해봐. 그럼 네가 부담스러울 일도 없고, 그 친구도 조금씩 다시 편해질 수 있을 거야.”

아이들은 그 제안을 흥미롭게 받아들였고, 이내 주말에 어디로 놀러 갈지 구체적으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서로 장난치며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마치 작은 어른들 같기도 하고, 다정한 친구들 같기도 했다. 어느새 심각했던 연애 상담은 유쾌한 토론이 되었고, 아이들은 미소를 띠며 미래의 계획을 세워갔다.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나도 과거의 순수하고 설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초등학생이라고 해서 감정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는 걸, 아이들 간에도 진지한 고민과 진심이 존재한다는 걸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세 명의 친구가 서로의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모습을 보며, 문득 나도 작은 설렘이 느껴졌다.

이렇게 평범한 오후에 나 또한 아이들 덕분에 잊고 있던 풋풋한 감정을 떠올리며 잠시 미소 지을 수 있었다. 어쩌면 이 작은 상담이 A에게는 훗날 추억으로 남겠지. 첫사랑에 대한 풋풋한 기억, 그리고 좋은 친구들과 함께 나눈 진솔한 대화—이 시간이 아이들의 마음에 작은 행복으로 오래 남기를 바라며 자몽티 한 모금을 마셨다.

어른이나 아이나, 누군가를 좋아하고 그 마음을 나누는 순간의 설렘은 언제나 같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보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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