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상태를 묻는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대답하곤 한다.
"번아웃이 온 것 같아요." 혹은 "우울증 같아요."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 둘은 사전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어딘가 연결되어 있는 듯하다.
번아웃은 어떤 활동이 끝난 후 심신이 지친 상태를 뜻한다. 과도한 노력과 결과에 대한 실망감이 쌓여 스트레스가 폭발하고, 결국 몸과 마음이 탈진해 버린다.
우울증은 기분이 가라앉고 의욕을 잃은 상태다. 허무감, 무기력, 비관 같은 감정들이 얽혀 쉽게 헤어 나오기 힘든 어둠 속으로 빠져든다.
두 단어의 정의는 다르지만, 내 삶에선 이 둘이 자주 겹쳐진다. 번아웃 때문에 지쳐 무기력해지면 우울증으로 이어지고, 우울한 감정이 번아웃을 부추긴다. 그래서일까, 누군가 내 상태를 묻는다면 그날의 기분에 따라 번아웃이라 답하거나, 우울증이라고 말한다.
흥미로운 건, 내 대답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다.
“아, 내가 너 그럴 줄 알았어.”
“그래, 이번 기회에 좀 쉬어.”
그 말을 들으면 어딘가 씁쓸하다. 나는 남들보다 열심히 산 적도 없는데, 오히려 느긋하게 살아온 편인데 말이다. 쉽게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는 내가, 어떻게 번아웃이 올 거라고 예상했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치열하게 살아왔다기보다 평범함 속에서 나름의 안정을 추구하며 살았다.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튀지 않고 남들이 하는 대로 하던 내 주장을 굳이 하려고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온 내가 왜 이런 상태에 빠졌는지, 그리고 사람들이 어떻게 그걸 예상했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들은 묻는다.
“이 모든 게 언제부터 시작됐나요?”
하지만 딱히 이때라고 말할 순간이 떠오르지 않는다.
약을 1년 동안 복용했지만, 기대했던 활력이나 즐거움 대신 늘어난 건 잠과 몸무게뿐이었다. 그래서 심리 상담을 시작했다. 상담에서는 억눌렸던 내 감정을 하나씩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억울했던 순간들, 속상했던 일들, 스스로를 자책했던 일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상담사가 가끔 던지는 질문이 마음에 콕 박혔다.
“그때 왜 그렇게 하셨어요?”
“안 그래도 됐던 거 아니에요?”
그러게, 왜 그랬을까.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했어도 되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땐 배려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를 스스로 옥죄던 사슬일 뿐이었다. 효도와 예의라는 이름 아래, 내 마음의 소리를 무시하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번아웃일까, 우울증일까? 아니면 둘 다일까? 이젠 그런 이름들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중요한 건 내가 내 마음의 소리를 듣고,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삶은 누구에게나 고유한 속도가 있다. 남들이 생각하는 “열심히”가 아니라, 내가 편안하게 걸을 수 있는 나만의 걸음으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번아웃이든 우울증이든, 나를 괴롭히는 이름에 매달리기보다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건 어떨까?
"오늘 나는, 나답게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