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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Nov 29. 2024

멈춤 뒤에 찾아온 것

모든 것을 멈췄다. 글을 읽고 쓰던 일도 놓아버렸다.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깨어서는 핸드폰만 바라보는 나날이 이어졌다. 그렇게 이주일 정도가 흘렀다.


‘이제 좀 쉬었으니 움직여볼까?’


어느 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엇부터 해야 할까? 엉망이 되어버린 집안이 떠올랐다. 하나씩 정리해 나가야겠다고 다짐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어깨에 무거운 숙제가 얹히는 기분이었다. 쉬는 동안 나태해진 자신을 정리해야 한다는 압박감,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찾아야 한다는 막연한 부담이 내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때 스스로에게 말했다.
‘이러려고 다 내려놓았던 게 아니잖아.’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작은 것부터 하나씩 해보자는 생각으로 나를 다독였다. 그리고 침대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혼자 있는 집에서 주어진 자유 시간. 마치 처음 만난 낯선 사람처럼 어색했다. 성인이 된 이후로 계획 없는 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으니, 갑자기 찾아온 여유가 어떻게 흘러가야 할지 몰랐다.

우선 남들처럼 음악을 틀고 반신욕을 해봤다. 따뜻한 물속에서 몸을 녹이며 생각했다. ‘이다음엔 뭘 해볼까?’
문득, 오랜만에 드라마를 정주행 해보자는 결심이 들었다.

출산 이후 TV는 아이들 교육용 콘텐츠로만 활용되었고, 나 자신을 위해 드라마 한 편을 온전히 본 기억은 까마득했다. 최근에는 체력이 떨어져 아이들과 함께 잠들기 바빴으니, 이 시간은 나를 위한 특별한 도전처럼 느껴졌다.


시작은 쉬웠지만, 곧 깨달았다. 나이 탓인지 성격 탓인지 정주행은 생각보다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를 요구하는 일이었다. 결국, 최근 드라마를 포기하고 과거에 이미 본 드라마로 돌아갔다. 내용을 알고 있으니 마음이 한결 편했다. 알콩달콩 로맨스 장면만 골라 스킵하며 보니 부담도 덜했다.

그런데 스킵을 하면서도 드라마 한 편을 끝내는 데 하루가 훌쩍 지나갔다. 드라마가 끝난 후 느낀 건 묘한 해방감과 동시에 드는 질문이었다.
‘나는 지금 잘 쉬고 있는 걸까?’


사실 그 질문의 답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침대에서 벗어나 작은 움직임이라도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괜찮아 보였다.

쉼은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 때로는 단순히 잠시 멈추고, 생각나는 대로,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보내는 것도 충분하다. 쉼은 우리가 다시 걸음을 내딛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니까.

그리고 스스로에게 약속한다. 오늘은 드라마, 내일은 또 다른 작은 즐거움으로 나만의 리듬을 만들어가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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