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학부모 총회를 다녀오다.
교문 앞에서 멈춰 섰다.
30년 전, 내 키보다 높게 느껴졌던 철제 교문은 여전히 같은 자리에 있었다.
기억 속의 풍경이, 시간 속에선 어쩐지 조금 작아져 있었다.
그때 그렇게 넓고 거대하게만 느껴졌던 운동장이 오늘은 꼭 미니어처처럼 다가왔다.
아이 손을 잡고 오던 초등학교와는 분명히 다르다.
이번엔 나 혼자, 내 발걸음으로 다시 중학교 교정을 밟는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낯설지가 않았다.
교실 창문에 부딪힌 봄 햇살도, 벽면에 붙은 학년별 시간표도 어릴 적 내 기억 속에 있던 그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익숙함이 마음을 따뜻하게 감쌌다.
중학교 학부모 설명회.
솔직히 말하자면 ‘지루하겠지’ 하는 마음이 앞섰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처음부터 뒤엎은 건 교무부장 선생님의 첫 한마디였다.
"저는 중학생 아들 둘을 둔 아빠입니다. 죽겠어요, 아주."
딱딱할 것 같던 분위기는 유머 한 스푼으로 순식간에 부드러워졌고, 각양각색 선생님들의 자기소개는 마치 무대 위 짧은 토크쇼 같았다. 누군가는 본인의 수업 스타일을 재미있게 설명했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아이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나누며 마치 우리 아이를 벌써부터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그 모든 설명이 끝나고, 각 반으로 이동해 담임선생님을 만나는 시간.
나는 우리 아이의 이름표가 붙은 자리에 조심스럽게 앉아봤다.
책상 너머 선생님을 바라보는데, 이상하게 심장이 조금 두근거린다.
아이를 위한 자리지만, 그 순간 나는 어느새 내 어린 시절의 나와 마주 앉아 있었다.
내가 앉았던 책상, 내가 들었던 수업, 내가 떨렸던 첫날.
그 모든 기억이 선생님의 말 속에 겹쳐졌다. 나는 아마도 눈에 띄는 학부모였을 것이다.
첫아이고, 게다가 아들이라서 그런지 물어볼 것도, 걱정할 것도 많았다.
그런 나를 선생님은 조용히, 그러나 단단하게 받아주셨다.
“쉬는 시간엔 장난을 참 잘 쳐요.
수업 중엔 질문도 많고, 선생님에게 농담도 곧잘 던지더라고요. 작지만 참 톡톡 튀는 아이지요.”
미소지으시시며 말씀하시는 선생님의 말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그 짧은 말들 속에 우리 아이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미 상점도, 벌점도 여러 번 받았다고 하셨는데 그 활발함이 내심 반가우면서도 속으로는 ‘아이고야…’ 싶은 마음도 들었다.선생님의 말투엔 꾸중보다는 관찰이, 판단보다는 애정이 담겨 있었다.
그게 얼마나 감사한지, 면담이 끝난 후에도 한참 동안 생각이 맴돌았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그 아이의 시간만을 함께 걷는 게 아니라, 내 시간도 다시 걸어가는 일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아이의 자리에서 마주한 선생님의 얼굴 속에서 나는 예전의 나를 떠올렸고, 아이의 장난기 가득한 모습 속에서 언젠가의 내 모습을 보았다.
아이가 자라고 있지만, 나도 자라고 있다.
이제 나는 부모로서 배워야 할 것이 많고, 그걸 아이 덕분에 하나씩 다시 배우고 있다.
그 시절의 나를 보듬듯, 지금의 아이를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서툴고, 엉뚱하고, 때로는 버겁지만
그래도 서로의 시작이 되어주는 지금 이 시간들이 나중엔 가장 깊은 위로가 되어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