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드라마 정주행을 끝낸 날, 이번에는 다른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쉬는 동안 하나씩 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으니, 다음엔 또 다른 작은 즐거움을 찾아볼 차례였다.
침대에서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끓였다. 평소라면 대충 마셨겠지만, 오늘은 조금 느긋하게 즐겨보기로 했다. 잔을 손에 들고 창가에 섰다. 창밖을 바라보며 느꼈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멈춰 서는 법을 잊고 살았는지를.
갑작스럽게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나, 걷기라도 해 볼까?'
집 앞 공원으로 나가 산책을 했다. 바람 냄새, 낙엽이 바스락거리는 소리, 아이들이 뛰어노는 웃음소리 같은 것들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내가 늘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쳤던 것들, 그리고 들리지 않았던 소리들이 다시 내게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아 있었다. 곁눈질로 옆 사람들을 보니, 다들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책을 읽는 사람,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 이어폰을 끼고 무언가를 듣는 사람들. 그들 속에서 나는 나만의 여유를 찾고 있었다.
"이게 바로 쉰다는 걸까?"
작은 질문이 머릿속을 스쳤다.
집으로 돌아오니, 몸은 조금 피곤했지만 마음은 꽤 가벼웠다. 문득 정리하지 못한 책장이 떠올랐다. 산책 후의 여운을 품은 채 오래전 사두고 읽지 않은 책 한 권을 꺼냈다. 먼지를 털고 책장을 넘기며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이렇게 아무 계획 없이 무언가를 하는 게 얼마 만이던가.’
책을 읽는 동안 또 다른 생각이 이어졌다. 앞으로 이런 시간들을 꾸준히 쌓아가고 싶었다.
하루에 한 번이라도 무작정 걷기.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글을 적기.
멈췄던 취미를 다시 찾아보기.
거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지금의 나에겐 이런 작은 행동들이 충분히 큰 변화였다.
그리고 깨달았다. 쉼이란 그저 멈추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쉼은 내가 진짜 원하는 걸 찾는 시간이며, 나 자신에게 "괜찮다"라고 말해주는 과정이었다. 번아웃이든 우울증이든, 이름이 무엇이든 간에 결국 나를 위해 천천히 걸음을 조정해 나가는 일이 중요했다.
다음 날 아침엔 어떤 기분일지, 어떤 일을 하고 싶을지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나는 이제 내가 원하는 속도로, 내가 좋아하는 방향으로 나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작게 시작하고, 그 시작을 즐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