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수업인 줄 알았는데, 정신 수양반이었네

by 선이

출판 프로젝트 마지막에 다다르는 중이었다.

그날은 어김없이 숙제인 내가 쓴 글을 보여드리고, 구성이나 방향에 대한 피드백을 받는 그런 시간이었다.

별 다른 생각없이 나름 퇴고하여 자신 있는 글을 골라 선생님께 메일로 보냈다.
아이와 있었던 웃기고도 찔리는 에피소드, 거기에 나만의 교육 팁을 덧붙인 구성.
브런치에서도 반응 좋았고, 읽는 사람이 “우리 집 얘기 같다”고 말해줬던, 그런 글들이었기 때문이다.

메일 말미엔 정중하게 부탁까지 덧붙였다.


최대한 많이 지적해 주세요.
진짜 괜찮습니다. 다 엎을 각오 되어 있어요.


…그랬는데, 정말 그럴 마음이었는데....

하룻강아지 범무서운줄 모르고 감히 건방을 떨었던 것임을 뒤늦게 알았다.

답장 코멘트를 보는 순간, 진짜 다 엎을 뻔했디.
내 원고를? 아니, 내 멘탈을.




그날 밤, 선생님에게서 회신 메일이 도착했다.
첨부파일을 열어보는 순간은 매번 떨리면서도 설렌다.
'설마 문장을 다 형광펜으로 칠하진 않으셨겠지'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파일을 열었다.

많은 코멘트가 있었지만 그 중 딱, 그 한 줄.
하이라이트까지 곱게 칠해진 채 내 눈에 꽂혔다.

“문장력이 부족하네요.”

선생님, 그렇게 직진하시면 저 너무 찔려서 도망가고 싶거든요...
라고 속으로는 그렇게 해놓고, 스스로 위안을 삼기위해 “그래도 괜찮다”는 식의 글을 찾기 시작했다.
“요건 재밌었어요~” 같은 부연도 붙여주시겠지…
있었다. 그리고 많았다.

그런데 하나도 와닿지 않았다.

그 한 줄이 내 뇌에 강타하자 순식간에 내부 대사들이 폭주하기 시작했다.

“그래요! 저 사실 책 많이 안 읽었어요!”
“읽긴 읽었는데 맨날 소설만 봤고요!”
“글은 이번 브런치 할 때 처음 써봤고요, 물론 초등때 일기 말고요!”
“근데 왜 저 뽑으셨어요! 선생님!”


그 순간 선생님과 소주 한 잔 하며 따지고 싶었다.
“저도 사실 제가 쿨한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알고보니 저 유리멘탈이였네요.”
콩나물국밥에 깍두기 한 조각 올려서
“너무하시네요 정말…”
하고 울먹일 준비까지 돼 있었다.

돌이켜 보면, 그때 내가 받은 건 단순한 문장 지적이 아니었다.
‘당신의 글이 책이 되긴 어렵다’는 메시지처럼 들렸다.

그 글들에는 내가 나름 애정을 담았었다.
내 일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장 많이 부딪혔고, 그래서 가장 진심이 담긴 이야기였는데.

그런 이야기조차, ‘문장력 부족’이라는 이유로 출판 문턱에서 탈락할 수도 있다니.
잠깐, 그럼 난 글을 왜 쓰고 있는 거지...?

그날 이후 며칠간은 워드 커서만 멍하니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글이 쓰이질 않았다.
이야기는 많았지만,
‘그걸 어떻게 잘 써야 하는가’는 하나도 모르겠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이 계속 맴돌았다.

문장력이 부족하네요.

‘그럼 나는, 뭘로 이겨야 하지?’
‘나한테 강점이 있다면 그건 뭘까?’

내가 가진 건, 누군가 내 글을 읽고 “진짜 우리 얘기 같다”고 말해주는 그 순간.
그 공감의 울림이었다.

글을 잘 쓰지 못하더라도, 누군가가 “나도 이랬어”라고 말할 수 있게, 그 감정을 정확하게 붙잡고 옮겨보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자, 어쩌면 내가 가진 유일한 재능일지도 모른다고 조금은 인정하게 됐다.

그래서 나는 에피소드를 ‘그냥 쓰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글이 되도록’ 쓰려고 안간힘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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