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원고를 다 썼다.
아이와의 대화, 현타, 후회, 열받음, 약간의 감동,
그 모든 걸 문장으로 꾹꾹 눌러 담았다.
파일을 저장하고 나니 이상하게 어깨에 뽕이 차오른다.
“이거 진짜 괜찮은데? 나 이제 작가인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것도 괜히 좀 달라 보였다.
작가는 원래 이렇게 멍하게 먼 산 보면서 아이디어 떠올리는 거잖아?
그리고 시작됐다.
대투고 작전.
출판사 100군데를 뽑고, 하나하나 메일 주소를 붙여넣고,
“잘 부탁드립니다”라는 문장을 진짜 부탁드리는 마음으로 타이핑했다.
손은 키보드를 쳤지만, 내 마음은 고개를 숙였다.
월요일 아침 9시.
전화가 왔다.
“어, 여기 ○○출판사인데요~
작가님 글이 ‘아들’이라는 키워드가 특이해서 눈에 띄더라고요.
그래서 계약을 할까 해서요~”
...?
계약...?
“잠깐만요, 나 하루 만에 계약 들어온 거임?”
입꼬리는 실룩이고, 심장은 덜컥이고, 나는 이미 머릿속에서 북투어 계획 중이었다.
“이러다 한번에 베스트셀러 되면 어떡하지?
계약서에 사인할 펜부터 바꿔야 하나?
이런 건 혹시, 사인펜?”
그런데 말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고, 세상에 조건 없는 계약도 없는게 현실이었다.
“근데요, 계약 조건이 있어요~
하나는 펀딩 100% 달성 시 출간이고,
하나는 작가님이 200부 이상 판매하시는 방식인데…
작가님은 인맥이 넓으셔서 가능하실 것 같아요. 그쵸?”
어… 누구세요?
갑자기 왜 반말 존댓말이 섞였죠?
“지방 계시죠? 제가 직접 내려갈게요~”
??
직접 온다고요?
계약하러 오는 거예요, 설득하러 오는 거예요?
부랴부랴 전화를 끊고, 브런치 작가 단톡방에 후다닥 상황을 공유했다.
그리고 바로 올라온 메시지들.
“아~ 저도 그 전화 받았어요.”
“저도요.”
“전 사이비인 줄 알았어요 ㅋㅋㅋㅋ”
…전도당할 뻔했네?
출간이 아니라 신앙 고백이 될 뻔.
급히 그 출판사 홈페이지를 들어가 봤다.
표지는 바래 있고, 저자는 처음 듣는 이름 투성이,
분야는 문어발. 헌책방 냄새가 났다.아니, 헌책방보다 더 나은 듯 했다.
한 곳은 그렇게 정리됐다.
“그래, 그럴 줄 알았지” 하며 다시 메일을 보냈다.
또 100군데.
마음을 다잡고, 조용히, 묵묵히.
출간이라는 게 이쯤 되면 그냥 수행이다.
며칠 후, 메일 한 통이 도착했다.
○○○○ 출판사.
처음 보는 이름이었지만, 메일은 좀 달랐다.
내 글 일부를 다듬은 파일,
장점과 아쉬운 점이 정리된 피드백.
게다가 친절하게도 계약 제안까지.
“저희는 작가님과 함께 글을 다듬어 책을 만듭니다.
다만, 계약 조건이 3가지 있는데요…”
네.
또 나왔습니다.
조건, 선택, 투자.
옵션 1: 몇 부 사전 판매.
옵션 2: 작가 자비 출판.
옵션 3: 돈을 더 내면 더 많이 고쳐드림.
하…
나 지금 글을 투고한 건지 출판사 창업 컨설팅을 받은 건지 모르겠다.
이럴 거면 내가 출판사를 차리지…
진짜 인쇄소 알아보는 게 더 싸게 먹히겠다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익숙한 이름의 출판사에서 메일이 왔다.
‘초등 수학’ 관련 책을 낸 그곳.
나는 그 책을 보며 아이 수업을 준비했고, 솔직히 좀 팬이었다.
그래서 떨리는 마음으로,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조심히 열어봤다.
역시나… 반려.
그런데 그 메일은 뭔가 달랐다.
붙여넣기 냄새가 안 났다.
정성스럽게 내 글을 읽은 흔적이 있었고, 관심을 갖고 봤다는 진심이 느껴졌다.
심지어 “아들 공부법, 산만한 아이 집공부”라는 주제에 자신도 관심이 많다고 써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거절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진짜 큰맘 먹고 메일을 다시 썼다.
내가 왜 이 글을 쓰게 됐는지, 그 출판사의 책이 내게 어떤 영향을 줬는지,
그리고 혹시, 정말 혹시라도… 한 줄만 조언을 주실 수 있을지.
물론 기대는 안 했다.
하지만 보내야만 했다.
그 한 통을 안 보내면 내가 계속 후회할 것 같았다.
그리고 일주일쯤 지났을까.
그곳에서 정말로, 다시 답장이 왔다.
다음화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