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은 타이밍, 실수도 운명

by 선이

그날, 메일을 읽고 정말 뛸 듯이 기뻤다.
비록 “계약합시다!”는 아니었지만, 그보다 더 귀한 진심 어린 피드백이 담긴 메일이었다.

단순한 반려 통보가 아니었다.
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어떤 점이 좋았고, 어디서 아쉬움이 느껴졌는지,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를 출판사의 관점으로 조목조목 짚어주는 감동 그 자체의 피드백이었다.

그분의 마지막 문장이 특히 마음을 때렸다.


“첫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되면
다음 책부터는 시작하는 글이 조금 달라지고,
점점 자신의 색깔을 찾아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아, 이건 나에게 주어진 기회구나.

나는 바로 원고를 다시 열고는 그동안 쓴 글들을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목차를 재정비하고, 팁을 강조하고, 정보와 에피소드의 비율을 다시 맞췄다.
독자 관점에서 꼭 필요한 흐름인가, 내가 말하고 싶은 얘기를 덜어내고 그들이 궁금해할 이야기를 넣는 작업.

대대적인 리모델링이었다.


그리고 2주 뒤, 다시 메일을 썼다.

손끝이 약간 떨릴 만큼 긴장하면서 그날 받은 조언에 대한 감사 인사,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쳤는지에 대한 설명, 그리고 퇴고한 원고 파일까지.
말 그대로 정성 120% 장착된 메일이었다.

“내용에 녹여 넣듯 반영해 보았습니다. 관심있게 출판사의 색과 맞는지 한 번 더 확인 부탁드립니다.
혹시라도 부족하거나 잘못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기꺼이 수정하겠습니다.
말씀 하나하나가 저에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000 담당자님, 감사합니다.”

나는 마지막 줄을 쓰며 진심으로 좋은 소식이 오길 바랐다.




여기서 아주 큰 착각을 하나 했다.
그 메일, 내가 정성 껏 보낸 줄 알았던 그 메일…

그게, 딴 데로 갔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건 피드백을 주신 000 담당자님께 간 게 아니라, 며칠 전 새로 연락이 왔던 완전히 다른 출판사 에디터님께 보낸 거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엔 뭐가 있었느냐고?

“000 담당자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
“조언 주신 덕분에 글을 퇴고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수정해 보았는데 어떠신가요?”


풀옵션. 감동 풀장착.
대상은 완전 오답.

발송 5분 뒤.
휴대폰에 메일 읽음 알림이 뜨고 나는 그제서야 이 사실을 인지했다.

“보낸 사람: 선이
받는 사람: …다른 출판사 에디터”

그날 밤, 나는 이불도 차지 못하고 노트북을 덮지도 못한 채 멍하게 화면만 바라봤다.

손발이 차가워지고, 식은땀이 나고, 호흡이 살짝 이상해지는 그 느낌.
진심으로 시간을 돌리고 싶었다. 제발...간절히...


그런데 여기서… 반전이 생겼다.

기적이란, 간혹 민망한 옷을 입고 찾아온다.



그날 내가 ‘망했다’고 단정지은 그 메일이,

사실은 두 군데 모두 잘 도착했던 것이다.

제목은 틀렸고,
이름도 틀렸고,
타깃도 틀렸지만…
내용만큼은 진심이었다.


그리고 며칠 후,
그 잘못 보낸 출판사에서
이런 메일이 도착했다.

“보내주신 수정 원고는 잘 읽었습니다.
이번에 보내주신 부분은 근거나 뒷받침이 많이 들어가면서 저희가 생각한 방향과 잘 맞았습니다.
짧은 시간 안에 잘 반영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그리고 이어지는 한 줄.


“선생님만 괜찮으시다면 저희는 계약을 진행하고 싶습니다!”



그 메일을 읽고 나는 노트북 앞에서 소리도 없이 울었다.

그날 밤,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래서 실수도 진심으로 해야 하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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