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출판사에서는 더 이상 소식이 없었다.
처음으로 정성 가득한 피드백을 보내주었던 곳.
한참을 기다렸지만, 아무 연락도 오지 않았고, 나는 뒤늦게 연락 온 출판사와 인연을 맺기로 했다.
참 이상한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실수로 메일을 잘못 보냈던 그 출판사가 결국 내 책의 집이 되었다.
그 출판사는 전자계약 방식이었다.
메일로 온 가이드 파일에는 계약 조건과 서명 절차가 자세히 안내되어 있었다.
전자계약이라니.
계약이라니.
생소하면서도 설레는 단어였다.
아직 계약서도 보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머릿속으로 출간 기념 북토크를 하고 있었고, 이름 석 자 아래 ‘작가’라는 타이틀을 슬쩍 붙여보기도 했다.
이 감정을 혼자 간직할 수는 없었다.
가장 먼저 함께 프로젝트를 준비했던 동료 작가 단톡방에 조심스럽게 소식을 전했다.
“여러분… 저 계약하게 됐어요.
아직도 믿기지 않지만 여러분들 덕분이에요. 정말 감사해요.”
혹시 누군가 상처받진 않을까, 조심스럽게 적었지만, 되려 모두가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대형 출판사랑 첫 계약이라니… 정말 대단하세요!”
“작가님 진짜 축하드려요. 눈물 나요ㅠㅠ”
작가님들의 반응에 당황했다.
사실 나는, 그 출판사가 그렇게 대단한 곳인지 몰랐다.
책은 그동안 꽤 읽었지만, 어떤 출판사에서 나왔는지는 늘 넘겨 읽었던 사람이라서 출판사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다 비슷할 거라는 막연한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던 게다.
이게 정말 큰일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 건 그다음이었다.
출간 프로젝트를 이끌어주신 이은경 선생님께 아침 9시, 문자를 드렸다.
“선생님, 좋은 소식 전하고 싶어서 이른 아침부터 연락드려요.
제 문자로 오늘 하루 기분 좋게 시작하시라고요.
저 ○○출판사랑 계약하게 됐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수화기 너머,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목소리.
선생님과의 첫 통화였다.
“어머, 작가님~ 이게 무슨일이예요~~~
저 문자 보자마자 너무 기뻐서 바로 전화드렸어요.
처음인데 출판사를 너무 잘 만났네요! 정말 축하드려요!!”
그제야 알았다.
'아, 내가 진짜 좋은 기회를 잡았구나.
이건 운이 아니라, 기회였구나.'
계약서는 생각보다 조용히 도착했다.
익숙한 파일 형식이었지만, 막상 열어보니 전혀 다른 형식이었다.
PDF 파일은 'sign 모드'로 열렸다.
첫 페이지엔 “서명을 요청드립니다”라는 문구.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장단들이 전자탭에 펜으로 사인하는 장면처럼,
나도 그 탭을 열어 하나하나 조항을 읽었다.
어렵고 낯선 단어들이었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을 내 나름대로 곱씹었다.
그리고 빈칸에 이름을 넣고, 계좌번호를 적고, 살짝 떨리는 손끝으로 마지막 페이지까지 스크롤을 내려 사인을 했다.
그리고 큰 호흡을 한 후, 조심스럽게 ‘보내기’를 눌렀다.
내 마음은 아직 준비가 덜 된 것 같았는데, 화면은 단 0.1초 만에 바뀌었다.
“전송되었습니다.”
그 순간, 정말 이상하게도 세상이 아주 약간, 다르게 보였다.
단순한 파일 하나에 사인을 했을 뿐인데 글을 쓴다는 일이 조금 더 무겁게 느껴졌다.
이젠 그냥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 글로 책임을 지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날 아침, 탭 커버를 덮으며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진짜네. 나, 이제 작가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