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이 도착했다.
메일을 여는 순간, 순간적으로 숨을 멈췄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 순간.
언제쯤 이 책에 이름이 생길까, 어떤 이름일까, 궁금하고 설레던 마음을 오래 품고 있었기에 궁금함도 기대감도 몇 배로 커져있었다.
조심스레 파일을 열었다.
제목후보 여러개가 가지런히 줄서서는 나를 골라달라며 나에게 잘 보이려 기교를 부린다.
그런데…
이게 다야? 딱 오는 게 없었다.
누가 봐도 정성 들여 고민한 제목들이었지만,
그 제목들 사이에서 ‘내 책’이라는 감정이 솟아나지 않았다.
실망이라고 하긴 애매하고,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는 게 더 정확한 말일지도.
메일엔 친절한 설명이 가득했다.
이 제목은 재밌게, 저 제목은 명확하게, 또 다른 제목은 단호하게...
목적도 톤도 설계도 다 알겠는데, 정작 나에게 다가오는 건 없었다.
‘내가 원했던 제목이 뭔지도 모르겠는데, 아닌 건 이렇게 확실하네…’
나는 그렇게 혼자 웃으며 제목들을 몇 번이고 읽어보았다.
결국 몇 가지 후보를 조합해 보고, 단어도 살짝 바꿔 보며 조심스럽게 의견을 전했다.
“저는 5번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다만 ‘아지트’라는 단어가 요즘은 잘 쓰이지 않아 조금 고민이 됩니다.
‘센터’나 ‘작전’ 같은 표현은 어떨까요…?”
에디터님은 늘 그렇듯 정중하고 따뜻했다.
“5, 6번 방향이 가장 좋으시군요!
제안 주신 표현도 고려해서 내부 논의해보겠습니다 :)”
그 말은 곧‘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음’이라는 뜻이기도 하다는 걸 나는 알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내 의견은 그리 반영되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정중하게, 출판사의 제목이 결정됐다.
그 즈음, 표지 시안도 도착했다. 솔직히 말하면, 또 그냥 ‘알려주는’ 정도로 오는 줄 알았다. 정해놓고 물어보는 것처럼 느껴지던 제목 건이 마음에 남아 표지를 보는 마음이 약간은 무뎌져 있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진지하게 들여다봤다.
왜냐면, 표지는 얼굴이니까.
두 가지 시안.
하나는 큼직한 글자와 진지한 톤, 다른 하나는 일러스트 중심의 밝은 분위기.
주변 엄마들에게도 묻고, 서점 책들 사이에 시안을 끼워 넣어 비교해보고, 진짜 독자라면 어떤 걸 손에 집을까 상상도 해봤다. 그리고 다시, 의견을 조심스럽게 전달했다.
“주변 초등 자녀 엄마들에게 물어봤더니 1번 시안이 압도적이었습니다.”
이번엔 달랐다.
“내부 논의 결과, 1번 시안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다만 색상이 조금 연해서 조정해보겠습니다 :)”
그 순간,
내 의견이 반영됐다는 사실보다 내 목소리가 전달됐다는 사실이 더 기뻤다.
슬쩍 욕심이 생겼다.
표지를 조정하신다니…
그럼, 혹시…
“턱선과 어깨 선이 조금 어색한 것 같아서요.
손가락이 책을 잡는 부분도 조금 이상하게 보여서요.
그리고 ‘이은경 선생님 추천’ 문구도 앞표지에 넣을 수 있을까요…?”
보내기 전, 몇 번이나 지우고 다시 쓴 메일이었다.
소심한 나, 그러나 나의 책.
그래도 말해보기로 했다.
그리고 돌아온 답장은 이랬다.
“방금 책 마감했습니다!
주신 의견 모두 반영해서 띠지에 ‘이은경 선생님 추천’ 넣었고,
저자 소개 아래에 인스타와 블로그 주소도 들어갔어요 :)
마지막까지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그 순간,
에디터님은 나에게 ‘우리 엄마’ 같았다.
내가 밤새 고민하던 걸 툭툭, 아무렇지 않게 해결해주는 슈퍼히어로 같은 엄마.
제목이 생기고, 표지가 생기고, 띠지와 대지까지 모두 완성됐다.
이름 없는 글이, 이제는 얼굴 있는 책이 되었다.
그 모든 순간이
내가 혼자 만든 게 아니라는 걸 알기에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제, 정말 책이 나온다.
세상에 없던 내 이야기가, 드디어 종이 위로 걸어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