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일이 또 밀린다고요?

by 선이

“선생님~ 책 예쁘게 잘 나오고 있습니다ㅎㅎ”

그날도 별 기대 없이 문자 메시지를 열었는데,
인쇄소 사진과 짧은 동영상이 첨부된 메시지가 도착했다.

인쇄기계 위에 가지런히 놓인 종이.
그 위에 활자로 박힌, 나의 문장들.

정말로 책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직 따뜻하지도 않고, 냄새도 없고, 내 손에 닿지도 않았지만, 그 영상 안의 책 더미는 그저 뿌듯하고… 너무 예뻤다.

이게 바로 내 새끼구나.

초음파로 처음 본 태아처럼,
아직은 막연한 존재였던 글이 이제 비로소 ‘형태’를 가지기 시작했다.

심장이 철렁하면서도 벅찬 감정이 밀려왔다.

내 책이 나온다.

진짜, 나온다.




며칠 뒤, 다시 메시지가 도착했다.

“오늘 책이 회사에 도착했습니다ㅎㅎ
생각보다 빨리 나왔네요.
다만, 출간일은 5월 중순으로 논의 중입니다.
올해 초부터 책이 너무 쉼 없이 나와서 이번엔 마케팅 측에서 간격을 두자고 하더라고요.”

.

.

.

하아…
사실 이쯤 되니,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
올까 말까 하던 출간일은 자꾸만 미끄러졌고,
그 기다림 속에서 나는 점점 ‘기대’라는 감정을 덜어내는 연습을 하고 있었다.

‘네… 그러시죠.
보내주시는 저자 증정본 받아서
저 혼자 읽고, 혼자 북토크나 해보겠습니다…’
속으로 그렇게 투덜거리며 혼자 일기 쓰듯 마음을 달랬다.


그리고 마침내,
박스 하나가 내게 도착했다.

실물 책.
내 책.
내 이름이 박힌, 내가 쓴 책.

박스를 열고, 처음 책을 꺼낸 순간.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표지를 쓰다듬고, 이름을 조심스럽게 읽어보고, 냄새를 맡고, 바스락거리는 종이 소리를 듣고, 앞표지에서 뒷표지까지 다시 닫았다 열었다를 반복했다.

마치 막 출산한 산모가 아이 얼굴을 처음 보는 순간처럼.

그건 단순한 종이 덩어리가 아니었다.
내 시간, 내 감정, 내 삶의 조각이 온전히 녹아 있는 작은 우주였다.

가장 먼저, 남편에게 보여줬다.

그는 책을 만지며 한마디 했다.

“우와… 진짜 책이네.”

그 말이 왜 그렇게 웃겼는지.
가짜 책은 또 뭐야, 싶으면서도 뿌듯했다.
아이들도 엄마를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엄마 책 나온 거야?”
“서점에서 파는 거야, 진짜로?”

그 순간만큼은, 글 쓰는 사람이 아니라 ‘책 낸 사람’으로 처음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지인들에게도 책을 건넸다.

표정을 살피며 내밀 때마다 괜히 민망하고 쑥스러웠다.
‘이거… 너무 허세처럼 보이진 않을까?’
‘진짜로 읽어줄까?’
작고 복잡한 마음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반응은 내 예상보다 훨씬 따뜻했고, 진심이었다.

“술술 읽힌다.”
“내용이 진짜 알차다.”
“언니 육아시절이 다 담겨 있어서 마음이 찡했어.”
“내가 봐왔던 모습이 다 들어 있어서 너무 신기해.”
“그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도움이 되는 책이야.”

그 말들이, 한 문장 한 문장, 가슴에 박혔다.

누군가는 책의 한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 보내며 “이 부분… 나 울었어.”라고 했고,
누군가는 “이거 우리 남편한테도 꼭 보여줘야겠다”며 웃었다.

이제야 알겠다.

출간은 책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이 아니라,
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속으로 들어가는 순간이라는 걸.

그 말을 들은 지금에서야 출간일이 진짜 기다려진다.
조금은 자신 있고, 조금은 설렌다.

그런 내 속을 알았던 걸까.
며칠 뒤 다시 도착한 메시지.

“출간일이 5월 14일 수요일로 확정되었습니다!
마케팅 회의는 이달 말쯤 예정이고, 정리되면 다시 안내드릴게요 :)”


이번엔, 진짜 확정이라는 단어였다.

5월 14일. 수요일.
그날은… 정말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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