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하는 의무

무기력함과 책임감 사이

by 선이

"선이님 정신 차리세요!!"


5평 남짓한 진료실이 떠나가라 의사는 소리쳤다. 분명 대기실에 앉아 있는 열댓 명의 환자들과 데스크에 있는 간호사들까지 다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의사는 아랑곳하지 않고 책상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정신 차리세요!!"

마치 나를 똑바로 보라는 듯 책상을 두드린다. 그럼에도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책상 끄트머리만 바라보며 내 얘기만 했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걸. 그런데도 말은 멈추지 않았다.

"내가 낫게 해 준다니까요. 다들 나으려고 서울에서도, 일본에서도 저 보러 온다니까요?"

"저는 낫고 싶은 게 아니라고요."

"그럼 여기 왜 왔어요?"

"버티려고요. 저, 5년만... 애들 학교 다닐 때까지만요."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밥 차려주고 옆에만 있어주면 엄마예요? 그걸 애들이 원할 것 같아요??"

사실 모르겠다. 아닌 건 안다. 하지만 그게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이라고 생각했다. 의사가 말한, 밥 차려주고 빨래해 주고 청소해 주는 엄마조차도 요즘은 못 한다.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뿐. 아니, 그냥 집이라는 공간에 존재하는 것뿐이다.

매일 침대에 누워 있거나, 핸드폰을 바라보는 무기력한 엄마. 아이들에게 비치는, 기억에 남을 엄마가 이런 사람이고 싶지 않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것뿐이다.

그래서 자꾸 눈물이 난다. 그래서 자꾸 가슴 한켠이 아리다. 그래서... 그래서... 차라리... 이럴 바엔...

잠깐, 나 왜 이러지? 또 이런다. 나도 이런 내가 낯설다. 울음이 자꾸 멈추지 않아 구토가 난다. 가슴과 머리가 너무 아프다. 숨이 쉬어지질 않는다.



그렇게 의사와의 팽팽한 기싸움을 끝내고 진료실을 나서는 길. 머릿속에서 “애들이 원하는 엄마”라는 말이 떠나질 않았다.

한창 예민한 초5, 중1. 엄마의 관심이 절실한 시기. 이 시기의 감정과 애착이 평생 부모와의 관계를 좌우한다는 걸 안다. 그걸 뼛속 깊이 알고 살아왔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든든한 나무가 되어주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었다.

하아... 나무라. 의지하고 기대는 나무... 는 개뿔. 즈려밟은 잔디조차 되어주지 못한 개똥 같은 엄마다. 진짜 이러려고 그런 건 아닌데, 이러고 싶진 않았는데,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그저 눈물만 난다.

대학병원이 좋은 건, 이렇게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와도 복도 어딘가에 앉아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보지 않는다는 거다. 할머니도 아닌데, 나는 그렇게 몇 걸음 걷다 주저앉고를 반복하며 대학병원 복도의 의자들을 다 앉아보았다.

정문 앞 벤치에 앉자 저 멀리 우리 집이 보였다. 언제였더라, 저 집으로 이사한 게. 첫째가 다섯 살쯤 되었을 무렵이었지 아마. 아이는 할머니와 가까워서 좋다고 했고, 남편은 주차장이 엘리베이터와 연결되어 편하다고 했다. 나도 아이들 방을 꾸며줄 생각에 들떴다. 여름에는 거실에 에어컨 켜고 다 같이 이불 깔고 자는 게 좋았고, 겨울에는 작은방에서 전기장판 켜고 옹기종기 모여 자는 게 좋았지.

그래, 그땐 참 많이 웃었네. 다들 웃고 있었네. 웃을 일도 많았네. 행복했네, 우리.

행복... 한가, 우리... 지금도?

어쩌면 내가 그 행복을 무너뜨리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바라보는 저 아파트가 갑자기 우르르 무너질 것만 같아 무서워졌다. 얼른 가서 무너지지 않게, 내가 받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벌떡 일어나 무작정 걸어 나갔다.

너무 급하게 움직였나? 숨이 가쁘다. 잠시 숨을 고르며 아파트를 바라본다. 마음속에서 무너지고 있던 것들이 조용히 가라앉는 것 같다.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다시 발을 내딛는다.

가자. 집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