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건강검진 대상자입니다."
문자로 안내를 받는 순간, 그냥 한숨부터 나왔다.
예전 같았으면 ‘연례행사구나’ 하고 병원에 들렀겠지만, 요즘은 마음이 영 다르다.
앞자리가 ‘4’로 바뀌고 나서부터는 병원이 어쩐지 무서워졌다.
검진 접수대 앞에서 문득 몇 해 전, 마흔을 맞던 날이 떠올랐다.
그해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엉엉 울며 며칠을 앓았다.
생일 케이크 앞에서 촛불도 못 끄고 주저앉아 울었다.
“다들 앞자리 바뀔 때 한 번씩은 그런다”며 위로해준 친구들의 말이 고맙고 서글펐다.
그래도 그날의 기억을 꺼내며 담담하게 접수를 했다.
마흔이 넘었다고 이제 유방암 검사도 포함된단다.
솔직히 좀 낯설고 창피했다. 내가 그런 검사를 받을 나이라니.
어쨌든 피검사, 내시경, 자궁경부암 검사까지 전부 마치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며칠 뒤, 결과지가 도착했다.
사실 제일 걱정했던 건 몸무게 급증으로 인한 콜레스테롤이었다.
하지만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빨간 글씨 두 번.
그 강조된 문구는 콜레스테롤이 아니라, 간 수치에 붙어 있었다.
‘매우 위험.’
그리고 그 옆, 큼지막하게 ‘폭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정말 어이가 없었다.
나는 20년 가까이 술을 입에도 대지 않았다.
아버지가 시한부 판정을 받으신 이후, 혹여나 내 삶이 무너질까봐
나는 모든 유혹을 끊고 조심조심 살아왔다.
그렇게 쌓아올린 20년이, 병원 프린터 한 장에 무너졌다.
너무 억울해서 병원으로 달려가 따졌다.
“저... 이건 잘못된 거 아닌가요?”
의사는 웃지 않았다.
“정밀검사 해보시죠.”
그리고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간수치, 매우 나쁨’. 여전히.
가족들은 킥킥거리며 놀려댔다.
“몰래 술 마시고 잔 거 아냐?”
“운전 조심해~ 면허정지 된다~”
나는 웃지도 못하고, 억울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웃음 속에서도 마음 한구석이 싸늘했다.
내가 모르는 내 몸이, 어딘가 망가지고 있다는 것.
그게 나를 가장 불안하게 만들었다.
1년쯤 지나 약을 바꾸게 되었고,
다시 피검사를 하게 됐다.
문제는 검사 전날이었다.
족발에 막걸리 한 잔.
참 고소하고 좋았는데... 다음 날 병원에서 채혈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어제... 술 마셨는데?”
이미 늦었다.
검사 결과가 나올 날만 기다릴 수 밖에...
가족들은 “이번엔 진짜 술 마셨으니 재밌겠다”며 들떠 있었고,
나는 마음을 비우고 진료실에 들어갔다.
“피검사 결과부터 볼까요? 음...”
그 짧은 정적이 그렇게 길게 느껴질 줄이야.
사실대로 말할까? 말지 말까?
입을 뗄 틈도 없이 의사는 말했다.
“저번보다 수치가 내려갔네요. 약 바꿔도 될 것 같아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진짜요?
저 막걸리 마셨는데요...?
그날 집에 돌아와 앉자마자, 가족들의 웃음 폭격이 시작됐다.
“엄마는 막걸리 처방받아야겠네~”
“물이 엄마랑 안 맞나봐, 술이 체질이야~”
우리는 또 깔깔 웃었지만, 나 혼자 조용히 생각에 잠겼다.
내 몸은, 조용히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거다.
나는 단지, 그걸 오래 무시해온 것뿐이었다.
마흔이란 나이는 참 묘하다.
몸은 말을 걸기 시작하고, 마음은 그 말을 알아듣기 시작한다.
아마 이게, 간이 내게 보내온 첫 번째 편지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