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거? 나만의 취미? 스트레스 해소법?”
한동안은 그런 질문을 받으면 할 말이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그런 건 내 삶에 없었다. 기억도 가물가물했다.
위의 말들은 늘 다른 사람의 것처럼 느껴졌고, 나는 그저 할 일에 밀려 하루를 버티듯 살아갔다.
그런데 얼마 전, 오랜 친구가 전화를 해 왔다.
“야, 요즘도 욕조에 입욕제 풀고 청승맞게 물놀이하냐? 유치원생도 아니고~”
장난 섞인 말투였지만, 그 말이 묘하게 마음을 콕 찔렀다.
그 녀석, 내 예전 습관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던 거다.
맞다.
정말 그랬다.
퇴근하고 너무 힘들거나, 마음이 복잡하고 잠이 안 오던 날이면
혼자 욕실 불을 낮추고, 입욕제 하나를 욕조에 던졌다.
보글보글 피어오르는 거품을 멍하니 바라보다 보면, 마음속 잡념도 잠시 멈췄다.
그건 나만의 작은 의식이었고, 나를 달래는 방식이었다.
‘다시 해보자. 이번엔 나를 위해.’
그렇게 곧장 라벤더향 입욕제를 검색해 로켓배송으로 주문했다.
다음 날, 라벤더향 보랏빛 알갱이가 담긴 입욕제를 욕조에 풀고 조용히 들어갔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가라앉았다.
뭔가 아주 오래전 나와 다시 연결되는 기분.
예전의 나, 그걸 기억하는 친구,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의 나까지… 조용히 한 선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있다가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데, 현관 앞에 낯선 택배 상자가 하나 도착해 있었다.
내가 주문한 게 아닌데? 잘못 온 걸까 하고 택배기사님께 연락하려던 찰나, 친구에게 톡이 도착했다.
“모르는 택배 하나 갈 거야. 샤워필터기인데, 향기도 라벤더래. 너한테 딱이야.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생각하고, 전화 금지, 답장 금지!”
이 친구… 진짜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날 욕조에서도, 샤워기에서도, 내 삶에 라벤더가 피어났다.
온몸이 라벤더 향으로 감싸였다.
몸이 먼저 풀리니까 마음도 따라 풀어졌다.
아무것도 거창하지 않았지만,
그날은 정말, 나를 향한 선물 같은 하루였다.
오늘 하루의 주인공은, 누구도 아닌 나였다.
그리고 오늘의 향은, 라벤더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