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한 잔이면 충분하지.

by 선이

늘 나에게 선물 같은 사람이 몇 명 있다.
그중에서도 이 언니는, 묵묵히 그 자리에 서 있는 나무 같은 사람이다.


내가 바쁘고, 지치고, 엉망진창이어도
기다린다. 다그치지 않는다.
기운이 좋아 보일 때면 조심스레, 살짝 다가온다.
“아침에 커피 마실 시간 돼?”


이번에도, 딱 두 달 만에 톡이 왔다.
어김없이 타이밍은 절묘했고,
나는 그 메시지를 핑계 삼아 다시 사람을 만났다.


오랜만에 얼굴을 마주한 그녀는
"잘 지냈어?" 같은 뻔한 안부조차 생략한다.
마치 어제도 만난 사람처럼,
아이 얘기, 학원 얘기, 방학 계획 얘기부터 툭툭 꺼내며
나도 모르게 스르륵 대화에 녹아들게 만든다.


그게 이 언니의 다정한 방식이다.
무거운 얘기를 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상태인지 알고,
말을 꺼낼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준다.
그러다 커피가 반쯤 남았을 때쯤,
슬쩍 내 안부를 묻는다.
“표정이 많이 밝아 보여서 좋네”


그 한마디가 참 깊었다.
커피 향처럼 스며들어, 말할 준비가 된 마음을 건드렸다.
나도 모르게 요즘 힘들었던 일,
아이들 때문에 헷갈렸던 일,
나 자신을 놓아버리고 싶었던 마음까지
툭툭 꺼내게 되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우리는 아이 이야기, 공부 이야기,
그리고 아주 조심스럽게 우리들의 ‘미래’을 이야기했다.
지금은 엄마로 살고 있지만
조금은 나로서 살고 싶은 마음도 함께 나눴다.


아이들 등교시키자마자 만났는데,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
“우리 밥 먹으며 더 얘기하자.”라는 말에
커피숍을 나와 점심 식당으로 자리를 옮기며,
나는 이미 마음이 반쯤 회복된 상태였다.


결국 오늘도
나를 다시 숨 쉬게 한 건
하루라는 시간도, 커피 한 잔도 아니다.
나를 기다려주는 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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