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나는, 눕는다

by 선이

의사가 말했다.
남들이 사는 아주 평범한 일상을, 너도 좀 살아보라고.


“삼시 세 끼 제때 챙겨 먹고요.
배부르면 산책도 좀 하시고,
그러다 졸리면 한숨 자고,
몸이 뻐근하면 요가도 좋고요.
가끔은 동네 친구들하고 수다도 좀 떨고요.
몸도, 마음도 긴장을 풀어보세요.”


그 이야기를 듣는데, 나도 모르게 헛웃음이 났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았다.
소설 속 회장님 댁 사모님이 누릴 법한

한가롭고 유유한 일상.
그걸, 지금 나더러 하라고?


“선생님, 저는요.
제 삶이 그냥 일과 스트레스예요.
그걸 떼놓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르겠어요.”


의사는 왜 자꾸만, 나아질만하면
내 삶에 다시 짊어지고 오는 스트레스와 일거리부터 걷어내려 하냐고 물었지만
그건 마치…
물고기에게 “물에서 좀 나와 보라”는 말처럼 들렸다.


그래도 또 해본다.
일처럼, 숙제처럼, 어떻게든 힘을 빼보는 연습.


오늘은 뭘 해볼까.
그래, 잠.
내가 제일 힘들어하는 그 ‘잠’을, 오늘은 내 맘대로 자보기로 한다.


느지막한 새벽까지 드라마 정주행을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나선 다시 침대로.
이건 아침잠인가, 늦잠인가.
분류는 중요치 않다. 그냥, 내 맘대로 자는 거다.


처음엔 쉽지 않았다.
하품만 났고, 머릿속엔
‘지금 자야 하나, 말아야 하나’
생산적인지 아닌지 셈부터 시작하는 나쁜 습관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침대에 그냥 누워 있으니,
조금씩 숨이 길어지고
하품이 연거푸 나오고
몸이 이불속에 스르르 녹아들기 시작했다.


핸드폰을 들지 않았던 것이, 오늘의 신의 한 수였다.
알림도, 유혹도, 누구의 소식도
오늘만큼은 나를 흔들지 않았다.


어쩌면, 오늘 내가 잠을 잔 건
단순히 피곤해서가 아니라,
조금은 나를 믿기로 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쓸모 없어졌다고 느꼈던 시간에서,
그래도 다시 살아보겠다고
하루를 망치더라도,
그래도 내 방식대로 숨을 쉬어보겠다고,
내려놓고 눕는 걸 허락한 거다.


그리고 그런 나를,
오늘은 내가 토닥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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