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가 이렇게 예고 없이 찾아올 줄은 몰랐다.
어제까지는 웃으며 장난치던 아이가, 오늘은 벽을 세운다.
그날도 별다를 것 없는 저녁, 여느 집처럼 평범한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엄마, 공부하기 싫어요. 영어 단어 외울 게 너무 많아요.”
그 한마디는 투정처럼 들렸지만, 어쩌면 그건 도움을 구하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하기 싫은 공부보다, 자기 마음을 몰라주는 게 더 답답했을 테니까.
“집 나가서 살 테니 절대 찾을 생각 하지 말아요.”
“너 누가 그런 말 함부로 하래! 뱉으면 다 말인 줄 알아?”
처음은 늘 그렇듯 사소했다.
“공부하기 싫어요”에서 시작된 말은 꼬리를 물고 점점 커져갔다.
“엄마는 항상 그런 식이잖아요.”
“내 맘대로 하고 싶다고요!”
“나도 이번만큼은 양보 안 할 거예요!”
고집을 부린다기보다,
자기 마음을 지키려는 몸부림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하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내가 밀리는 기분이 들 것 같아 애써 외면했다.
“네. 죄송합니다.”
이 말을 한 번도 쉽게 하지 않는 고집불통 녀석.
이번에도 역시나였다.
“약속을 안 지킨 건 엄마가 아니라 너잖아.”
“아니에요. 엄마예요.”
“영어뿐만 아니라 독서도 봐봐. 1시간 독서 때 무슨 책 읽기로 했니?”
“영어책도 줄글이잖아요. 같은 문학인데 무슨 상관이에요. 엄마가 안 된다는 소리도 한 적 없잖아요.”
틀린 말은 아니다.
아니, 오히려 맞는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이상하게 한 발 물러서기가 싫었다.
지금 이 상황이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면서,
괜히 더 심기가 불편해진다.
“아~ 그래서 줄글책이라면서 과학동아 가져다가 만화 부분만 읽었어?”
말이 거칠어지는 걸 느끼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만화책 다 들고 와.”
“왜…요?”
순간, 손에 잡히는 책들을 한꺼번에 쓸어 담으며 말했다.
“왜긴 왜야. 다 버리게!”
이기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나도 이해받고 싶었던 걸까.
흥.
이것까진 생각 못 했겠지.
유치하기 짝이 없는 애미는 이렇게라도 이겨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문을 쾅 닫고 들어간 아이 방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조금 전까지 쏟아냈던 말들이, 되돌릴 수 없는 돌처럼 가슴에 걸린다.
‘집 나간다’는 말은,
정말 떠나겠다는 뜻이 아니라
여기서 벗어나고 싶다는 신호였을지도 모른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왜 더 세게 밀어붙였을까.
잠시 후, 방문 너머로 들려오는 인기척에 괜히 더 조용해진다.
나도, 아이도… 아직은 서툰 사이인 것 같다.
결국 이 싸움은,
누가 옳은지가 아니라
누가 먼저 내려놓느냐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오늘도 결국,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꺼내지 못한 채
저녁 밥상에 숟가락만 놓는다.
그리고 문득 생각한다.
그 아이도, 나도… 아직은 사과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