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점하기 싫은 날

엄마표 집공부의 단점

by 선이

"엄마도 채점하기 싫어. 그냥 학원 다녀~!!"


2호의 수학 공부를 봐주려다 고집을 꺾지 않고 자기 말만 맞다고 우겨대는 모습에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하기 싫은 공부를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을 몰라주는 엄마가 미운 초3 아이와 말대답을 따박따박하는 모습에 화가 나서 윽박지르게 되는 엄마. 그 언쟁을 통해 둘 다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이제 10살인 아이에게 내가 뭐가 그리 욕심이 나서 이랬는지,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아이를 보니 심한 말로 상처를 준 것이 아닌가 싶어 한편으론 미안해진다. 하아아..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하며 마음을 가다듬어 본다. 나는 엄마니까. 나는 어른이니까.

"2호야, 엄마랑 같이 다시 해볼까? 네 말이 무조건 맞다고만 하지 말고, 왜 틀렸는지 같이 생각해 보자."

역시나 아이는 훌쩍이기만 할 뿐 내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눈치다. 더 이상 이렇게 화를 받아 줄 수는 없기에 결국 집공부 포기 선언을 외쳤다. 이제 겨우 울음이 멈추어 가는데 갑작스러운 엄마의 엄포에 서러움이 복받쳐 2호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정말이지 교육이고 뭐고 다 그만두고 싶다. 책상 위에 가득한 교재와 공책들 그리고 선택을 기다리며 줄지어 있는 색연필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빨래만큼이나 쳐다보기 싫어지는 순간이다. 너희도 공부하기 싫은 날이 있지만(매일 그렇지만) 엄마도 코칭하기 싫은 날이 있다는 걸 모르는 것이 억울해진다. 너네들 만만치 않게 엄마도 놀이터에서 동네 엄마들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 떨며 놀고 싶고, TV로 잘생긴 아이돌들 보며 힐링하고 싶은데 그거 참느라 나도 힘들다고 아이처럼 꺼이꺼이 울면서 말하고 싶다. 날씨가 좋아서, 날씨가 흐려서. 사실 엄마도 가르치는 거 싫다고. 너보다 더 많은 핑계를 댈 수도 있다고 하소연하고 싶은 그런 날이다.

애증의 채점 색연필

한 번씩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부정적인 마음을 잠재우려 잠시 집 밖을 산책해 본다. 그동안의 집공부 단점들이 하나 둘 떠오르며 이제 엄마표를 그만두고 다른 집처럼 마음 편하게 학원을 보내라고 유혹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이유들을 가만히 듣고 있으면 틀린 말은 아니니 오늘 같은 날은 심각하게 고민을 해 보게 된다. 내가 느낀 집공부의 단점은 다음과 같다.


1. 아이와 갈등이 잦다

집공부는 내 아이를 내가 누구보다 아이맞춤으로 잘 가르치기 위함이다. 그러나 문제는 잘 안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교사가 엄마이다 보니 아이는 투덜거리고 칭얼거리는 것부터 시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부모는 내 자식이기에 하나라도 더 가르치려고 욕심을 내고 그러다 보니 시작하기도 전에 갈등이 시작되곤 한다. 어디 그뿐이랴. 엄마인 내가 아이의 부족한 부분을 알고 있단 이유로 그 부족한 부분을 강조하며, 자신감을 떨어트린다는 것도 관계를 나빠지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장점이 10개고 단점이 1개라도 그 단점만 도드라보이는 게 엄마인지라, 칭찬보다는 지적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아이는 그 과정에서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하고 어렵다고 느껴지게 될 수밖에 없다. 거기다 혼나기까지 하니 하기 싫어지는 과목이 또 하나 추가된다.


2. 집이 더 이상 쉴 곳이 아닐 수도 있다.

학교에 가면 공부를 하고, 학원에 가면 공부를 또 하니 집이라도 편안하게 쉬는 공간이 되어야 할 텐데 집공부 인테리어는 휴식과는 거리멀다. 현관을 들어서면 보이는 거실에는 커다란 책상과 의자가 어서 앉으라고 인사를 하고, 방으로 들어가면 벽면 한가득 책들이 있다. 이런 분위기의 집은 가족이 함께 활동을 할 수 있게 하고, 수시로 책을 읽게 분위기를 조성하기는 하지만 이것이 집의 안락함을 빼앗아 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어디서든 책을 보고, 끄적이길 바라는 마음에 배치를 했었는데 글을 쓰며 생각해 보니 나 조차도 누워서 멍하니 쉴 공간이 없다.


3. 학습분량과 시간이 들쭉날쭉하다.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으니 여기까지만 하자.' '미용실 다녀오느라 시간이 부족하니 오늘은 수학만 하자.' 학습 분량을 아이와 체계적으로 짜고, 꼭 지키기로 다짐까지 했건만 아이가 힘들어하거나, 여러 일들도 계획대로 공부하는 날은 손꼽는다. 시간이 많아도 엄마가 억지로 시키기 쉽지 않다. 집중력과 의욕이 떨어진 아이와 실랑이하기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학교나 학원처럼 시간표대로 집에서 시간을 정해서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




2호는 엄마 말을 안 듣고 고집 피워서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는 훌쩍이며 잠이 들었다.

아이를 재우고 집안을 정리하면서 이미 화는 다 사그라들었지만, 이번 일로 그동안 생각해 왔던 집공부의 문제점을 차분히 짚어보게 되었다. 수정해야 할 부분은 다시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고 해결방법을 찾아볼 참이다. 협의점을 찾지 못한다면, 잠시 공부를 쉬어야 하거나, 학원을 보내야 할지도 모르지만 괜찮다. 공부보다는 아이의 행복, 부모 자식 간의 관계가 더 중요하니까 말이다.


키스해 주는 어머니도 있고 꾸중하는 어머니도 있지만 사랑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펄 벅
Some are kissing mothers and some are scolding mothers, but it is love just the same. -Pearl S B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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