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또! 가족회의

엄마표 집공부의 장점

by 선이

"엄마, 저녁 다 먹고 우리 회의 좀 해요."


얼마 전 보았던 영어테스트 결과가 나왔다. 결과 내용을 쭉 훑어보더니 내심 만족했는지 공부계획을 수정하자는 제안을 해온다. 작전 성공! 이럴 줄 알고 레벨을 본 단계보다 한 단계 낮춰서 신청했다. 고득점을 확인하면 자신감이 up 되어 영어 하기 싫다는 소리가 한동안은 나오지 않는걸 수년간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수로 틀린 1 ~2문제에 대한 오답도 기분 좋게 쓱쓱 써 내려간다.

"얘들아, 큰일 났어. 성적이 너무 잘 나와서 부족한 부분이 파악이 안 되니 잘한 친구들만 재시험을 봐야 한대."

"괜찮아. 한 번 더 보지 뭐. 언제 보는데?"

그럴듯한 핑계로 자기 수준의 시험을 방학 중에 한 번 더 보려는 작전도 수월하게 통과했다. 아이들 앞에서 그럼 재시험 신청해 놓겠다며 시크하게 돌아선 내 얼굴엔 오랜만에 음흉하고 흐뭇한 미소가 퍼지기 시작한다.

내가 원한 아이의 테스트의 용도는 딱 여기까지다. 가족회의에서 아이가 요일 변경, 원서 읽는 시간 10분 추가 정도의 변화를 제안하면 좋은 생각이라고, 그런데 힘들지 않겠냐는 주연급 연기력을 뽐내며 아이의 사기를 올려주기만 하면 오늘의 할 일은 모두 끝마치게 된다. 그거면 충분하다.



아이들과 공부에 대해 의논하고 이야기 나누는 시간은 남편과 연애할 때만큼이나 좋다.(어쩌면 더 좋을지도) 회의 결과대로 지켜지는 건 거의 없기에 자주 회의가 열리지만 그 또한 재미있고 행복한 시간이다.

"난 영어가 제일 싫어."

"왜?"

"단어 외우는 거 힘들어."

"그렇지? 엄마도 그게 제일 싫더라. 엄마 선생님은 그거 매일 한 단어 10번씩 A4종이 앞뒤로 빽빽하게 써오는 숙제도 있었어."

"헐, 대박. 손 많이 아팠겠다."

"응. 진짜 아팠지.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기억에 남긴 하더라.

그런데 얼마 전에 TV 보니까 요즘은 그렇게 외우기 안 하더라?"

"그럼? 어떻게 하면 잘 외워지는데??"

공부보다 자세부터 쫌~!!!

엄마표로 아이를 키운다고 하면 영어나 국어, 수학 하다못해 과학이라도 전공한 전문가라고 생각한다. 그 조건에 부합하는 나로서는 사람들의 섣부른 판단에 부담이 되기도, 자신감이 떨어질 때도 부지기수다. 학창 시절 공부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던 반 평균만큼 했던지라 아이에게 사실 가르쳐줄 수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집공부를 하게 된 이유는 아이와의 공감 때문이었다. 본인이 무엇이 부족한지, 어떻게 공부를 하는 게 효과적인지 함께 알아보고, 시행착오를 겪어보는 경험은 어느 학원에서도 해 주지 않으니까. 이 것이 진정한 엄마표의 장점이다.

지난 <집공부의 단점> 글에 댓글이 올라왔다. 이제 초1이 되는 예비초등맘이 집공부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내 글을 읽고 적잖이 겁이 생긴 모양이다. 그분이 이 글을 읽게 된다면, 이야기해 주고 싶다. 엄마표 집공부가 단점만큼 장점이 많지는 않지만, 몇 가지 안 되는 장점이 귀하고도 중요해서 꼭! 추천하고 싶다고. 사실이다. 10년째 해온 집공부의 장점을 꼽으라면 난 3가지를 이야기해 주고 싶다.


1. 무시할 수 없는 학원비 절약.

학원으로 가면 당연히 전문적인 시스템의 효과로 실력이 급 점프 될 것이라 생각이 들겠지만, 주변 아이 친구들을 보니 꼭 그렇지도 않았다. 어디에서든 공부도 할 아이는 열심히 하더라. 좋은 선생님과 완벽한 시스템이 그런 아이들에게는 부스터가 될 수 있겠지만, 아이 개별마다 필요한 부분을 정확하게 채워 주지 못하는 학원특성상 전기세만 내주는 아이도 많다는 걸 고학년 엄마가 되니 보인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학원을 보내도 숙제든, 타 과목이든 집에서 공부는 계속 봐줘야 한다.


2. 공부 습관 잡기 & 내 아이 장, 단점 파악

초등 학습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공부하는 그릿. 즉, 매일 조금씩 꾸준히 쌓아나가는 공부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집공부로 진행하게 되면 이 부분을 수월하게 자리 잡을 수 있다. 학원을 오가며 배우는 시간과 숙제를 하는 시간은 학습 자체가 수동적일 수밖에 없지만, 엄마표는 스스로 계획하고 해 보고 수정하는 것의 반복이기에 자신에게 맞는 습관을 만드는데 용이하다. 또한 아이의 학습하는 상황을 수시로 관찰하기 때문에 내 아이의 실력, 공부 습관을 확실히 파악할 수 있어 부족한 부분을 하나씩 채워나갈 수 있게 도와줄 수 있다.


3. 아이와의 교감

난 3번째 장점이 집공부의 꽃이라고 본다. 지난 <채점하기 싫은 날>을 읽은 독자라면, 아이랑 툭하면 언쟁하며 화낼 땐 언제고 이제 와서 아이랑 사이좋은 척하냐고 비웃을 수 있지만, 진심이다. 물론 가르치다 보면 '친자 확인'(내 자식을 가르칠 때만 단전에서 솟구쳐 나오는 화)을 하고 싶지 않아도 수시로 하게 되지만, 그 순간을 지내면 아이와 다시 이야기 나누고 화해를 하게 된다. 힘들다고 하면 공감해 주고, 어렵다고 하면 도와주고, 잘하면 칭찬해 주고, 혼내고 나서 안아주고. 초등 6학년 남자아이와 매일 이야기 나누고 하루에도 열댓 번씩 안아주는 이 순간은 누구에게나 주어지지 않는다. 함께 하기에 가능하고,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집공부를 하다보면 감정이 오르락 내리락의 연속이다

이제 집공부만을 중심으로 끌어안고 가는 게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이 든다. 사교육의 도움을 받더라도 내 아이의 상황에 대해 정확하게 알고 대처하고 채워 줄 수 있는 나만의 노하우가 생겨 흔들리지 않을 자신이 있다. 이것이 엄마표가 시간이 흐를수록 어렵고, 힘들고, 지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자식 키우기란 자녀에게 삶의 기술을 가르치는 것이다. -일레인 헤프너
The art of mothering is to teach the art of living to children. -Elain Heffn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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