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돌아봐.

<서울의 봄> 후기

by 선이

"12.12사태를 영화로 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구나!"

영화 개봉 소식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이다.

12.12사태.
-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가 일으킨 군사반란. (출처 : 두산백과)

근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민주화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그 누구도 당당하게 이야기하기 어려운 주제였고, 여러 시선이 염려되어 차라리 침묵이 안전했던 지난 이야기. 그런 역사적 배경을 모티브 삼아 <서울의 봄>이 개봉되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다 아는 결말이라 강 건너 불구경하듯 관람하고 싶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를 참느라 애를 쓰며 보았다.


실패하면 반역, 성공하면 혁명

전두광(황정민 역)의 말 그대로 반역에 적극 가담했던 전두광 측근들이 이후 보란 듯이 정부 요직을 다 차지했던 오욕의 역사가 영화를 통해 재조명된다. 황정민의 분장과 미친 연기력 때문에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한 마음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보통은 결말은 권선징악으로 끝나야 하는데, 이번 결말이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있기 때문이다. 이태신(정우성 역)은 옳고 그름을 구분하려는 마음을 지닌,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소신이 있는, 시대가 희망하는 인물이었다. 정치로부터 자유롭고,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는가 보다 스스로 어떤 사람인가 답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기에 그의 고민은 나의 고민으로 다가왔고, 그의 아픔이 우리의 아픔으로 이어졌다.

주인공 두 사람을 제외하고도 주변 인물들 또한 한 명 한 명이 모두 인상적이다.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인간의 본성이 나온다더니 정말 그런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기회가 날 때마다 도망가려는 놈, 자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에서 자꾸 벗어날 궁리하는 놈, 자신의 주관조차 없는 놈. 이리저리 권력에 붙으려 눈치 보는 놈, 정의로운 놈, 이기적인 놈, 적당히 착한 놈 등등. 두려움을 느낄 때 각자의 방식으로 대응하는 행동들을 보면서 나는 저기서 어떤 놈일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 본다. 과연 나는 이태신처럼 옳고 그름을 구분하고, 정의를 위해 희생할 용기가 있을까? 그 질문에 단호하게 바로 대답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보았다.

"넌 대한민국 군인으로도 인간으로도 자격이 없어." - 이태신 대사 中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의 결말은 다른 영화와 다르게 악역이 벌을 받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오히려 12.12 군사반란의 주동자들 전부 주요 보직들을 꿰차는 모습을 사진과 자막으로 증명하듯 보여준다. 마지막 한 장면으로 씁쓸한 현실을 떠올리며 전두환이란 사람을 다시 생각해 보며 영화관을 나왔다. 반역을 혁명으로 바꿀 수 있는 리더로 그를 인정하고, 내 목숨을 걸어가며 그를 믿고 따르는 힘은 과연 어디서 나왔을까? 많은 사람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죽일 수 있을 정도로 무서운 사람이어서일까?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하나회를 만들고, 이끌고, 끝까지 자신의 편으로 만든 데에는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 이유가 그가 혼자 독식하지않고 하나회 다같이 나눈 의리(?)라고 생각한다.

내 본성이 이 중에 한 명이진 않을까 두렵다.


콩고물 입에 미어터지게 넣어줄게.

전대광의 대사엔 이처럼 내 편을 챙기려는 의지가 담긴 말들이 종종 나온다. 그는 흑과 백, 내편과 적을 정확하게 나누고 내 편에게서는 더 이상의 반란이 나오지 않게 적당히, 서운치 않게 챙겨준다. 어떻게보면 인간적인 이 방법이 그의 전략이자 리더십이 아닐까싶다. 내가 그 시절 2 공수부대의 상급자라면, 나는 동지애가 넘치는 그가 내민 손을 과감히 거절했을까?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각을 하다보니 무조건 그 시절 반역자들을 욕하고 손가락질하기 전에 나는 욕할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정의롭고, 스스로에게 떳떳한 희생자들에게 진심으로 존경을 표하게 되었다.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텐데 벌써 영화 <서울의 봄>이 손익분기점을 넘겼다고 한다. 정확한 이유를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실화를 바탕으로 창작적인 요소가 가미되었다고 하지만, 알아야 할 역사이고, 기억해야 할 장면들을 잘 표현해 주었기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영화가 지루할 틈 없이 빠르게 진행되면서 다소 긴 141분의 러닝타임동안 거북목이 될 정도로 푹 빠져서 보았다. 덕분에 매우 굵직한 사건을, 매우 편안한 자리에 앉아, 매우 불안한 시선으로 관람할 수 있게 해 준 모든 배우들과 스텝 그리고 이 시대를 만들어준 그 분들께 감사하다.

모두가 한 번씩은 꼭! 보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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