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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Dec 22. 2023

크리스마스에 집에 있을 건데요.

무기력과 번아웃 그 어딘가

"크리스마스에 뭐 할 거야?"

요즈음 인사만큼이나 자주 듣는 질문이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다. 아이가 있는 집. 종교적 의식을 받고 당당히 신자로서 이름을 올린 사람. 그 종교가 하느님을 믿고 따르는 천주교인 여자. 크리스마스를 설날만큼이나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야 할 조건으로 충분하지만, 그러기에 오히려 나는 조용히 넘어가기를 소망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붐비는 인파 속에 기다리고 먹고, 사진 찍다가 차 안에서 녹다운되는 그런 일상이 상상만 해도 힘들고 지친다는 핑계로 가족들에게 "칩거"를 선언했다. 매 번 외출을 할 때마다 계획하고 준비하는 유일한 담당자의 이유 있는 반항이다.

 기회가 되면 전국 방방곡곡을 다닐 정도로 역마살을 유전적으로 간직하고 있어 누구보다 가족들과 여행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래서 교대근무를 하는 남편이 어쩌다 휴일에 쉬는 날에는 무조건 나갔고, 가족 행사로 타지를 가게 되는 날이면 앞뒤로 무조건 휴가를 붙여서 더 지내다 왔다. 남편이 도저히 시간이 안 되는 날에는 아이 둘을 태우고 고속도로를 집 앞 골목 다니듯 자유롭게 지나다니는 용감한 엄마가 바로 나였다.

패밀리카 용도인데 5년만에 15만을 찍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 귀찮다. 추운 날씨를 핑계로 '집 밖은 위험해'를 시연하며 안 하던 식재료 배달까지 시키고 있다. 설거지는 하루치가 쌓여야 겨우 하기 시작했고, 세탁기는 얼 수 있다는 핑계로 더 이상 입을 옷이 없을 때 하는 수 없이 돌린다. 이런 나에게 이번 크리스마스는 그냥 집에서 뒹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 뿐이다. 이번 겨울엔 오랜만에 '나 홀로 집에'나 '해리포터'를 정주행 하며 배달음식이나 시켜 먹을까 하고 있는데 자꾸 주변에서 뭘 할 건지, 어디 갈 건지 이야기를 하며 집에 있으면 안 될 것처럼 분위기를 만든다.


 "어쭈~ 요것 봐라~ 이렇게까지 멍석을 깔아 놨는데, 밖으로 안 나올 테냐?"

하다 하다 하늘에서 나를 유혹하려는 듯 날짜며 날씨까지 세팅해 놓기로 작정을 했다. 이번 성탄절은 또 하필 월요일인 데다가 크리스마스이브저녁에는 눈예보까지 있다. 40 평생 살면서 이런 특별한 연휴가 몇 번이나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완벽하다. 그럼에도 나는 집. 에. 서. 아. 무. 것. 도. 안. 하. 고. 싶다.

무기력 혹은 번아웃

 무기력인가? 번아웃인가? 나도 이런 내가 어색하고 이상하다. 최근 들어 무언가에 빠져 열정적으로 했던 적이 언제였던가... 무얼 했어야 번아웃도 오고 무기력도 오는 게 맞지 않나 의구심을 품으며 무기력과 번아웃에 대해 검색을 해 본다.

무기력 (無氣力)  - (명사)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음.

번아웃 (burnout)  - (명사) 어떠한 활동이 끝난 후 심신이 지친 상태. 과도한 훈련에 의하거나
                          경기가 원하는 대로 풀리지 않아 쌓인 스트레스를 해결하지 못하여 심리적ㆍ생리
                          적으로 지친 상태이다


무기력과 번아웃 서로 연관성이 매우 깊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번아웃'이 오면 무기력이 동반되니까 말이다. 지금 내 상태는 연말이라는 1년의 활동이 끝난 후 심신이 지친 상태라 어떠한 일을 감당할 수 있는 기운과 힘이 없다. 그럼에도 마냥 누워서 뒹굴거리는 팔자는 못되기에 스트레스와 번아웃을 극복하려 몸을 억지로 움직여 본다.


 박상미 한양대 일반대학원 협동과정 교수이자, 심리상담센터 더 공감 학장은 번아웃을 극복하기 위한 3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필자처럼 격. 하. 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지만, 그럼에도 할 일을 해야 하는 안타까운 중생들은 참고해 보시길.


 첫째, 긍정적인 멘토를 만나자.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하지 않고 충분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가 가고 싶은 길에 이르는 지도를 함께 그려줄 멘토를 찾아보는 게 우선이다. 성공한 경험이 많은 사람만이 좋은 멘토가 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실패한 경험이 많지만, 그 경험을 토대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매진하고 있는 멘토에게서 오히려 더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둘째, 운동하자. 뇌는 세 가지를 할 때 큰 행복을 느낀다. 여행, 산책, 운동. 이 세 가지 중 운동이 가장 효과적이다. 뇌과학의 권위자인 존 메디나 박사는 “몸을 움직여야 뇌를 움직여서 뇌 기능을 발달시킬 수 있다”라고 했다. 운동은 조금씩 자주 하는 게 좋다. 뇌과학자들은 주 2회 20∼30분 만으로 뇌를 단련하고 건강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운동을 하면 혈액 흐름이 좋아지고 새로운 혈관이 만들어지고 우리 몸속 조직에 영양분이 더 많이 공급되면서 노폐물과 독소가 제거되기 때문에 육체 기능이 향상된다. 운동은 취미 생활이 아니라 생존전략이다.

 셋째, 친구와 함께 하자. 작심삼일로 끝나지 않으려면 친구와 함께 하면 좋다. 같은 목표를 추구하며 서로를 응원하는 친구를 만들면 꾸준히 계속할 힘이 생긴다. 내년 스트레스는 줄이고, 번아웃에서는 탈출하는 한 해가 되길 바라본다.


뻔하지만 핵심이기도 하다. 무엇이든 알면서 안 하는 게 문제니까. 가장 안 지켜지는 두 번째 방법부터 실행으로 옮기며 눈꺼풀만큼 무거운 몸뚱이에게 활기를 넣어 볼 참이다. 남은 2023년은 충분히 쉬며 운동으로 에너지를 충전을 해놓고 다가오는 2024년에 그 에너지로 의미있는 시간을 만들어 나가야 하니 말이다. 곧 있을 방학에 아이들과 하기로 한 줄넘기가 좋을 것 같다. 겨울이라 해가 일찍 지기도 하고, 나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끌어올리고자 몹시도 화려한 <LED줄넘기>를 구매했다. 혹시 모른다. 줄넘기 몇 번 해보자 갑자기 활기가 돋아 크리스마스에 트리 사진 찍으러 이 동네 저 동네 활보하며 다니게 될지도.


아, 이제 이불속에서 판타지 영화 그만 봐야겠다.

활기를 불어 넣는 중. 나 말고 너희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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