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크리스마스 때 레고를 선물 받았다. 고학년이다 보니 크기도 크고, 조립 난이도도 높은 걸 사다 보니 가격대가 꽤 있었다. 아이들은 본인들이 만들고 싶었던 것을 골라 마음에 들어 했지만, 그 순간뿐이었다. 사실 그들의 속마음엔 크리스마스 선물로 받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이 진심으로 갖고 싶은 그것은 바로 '아이폰15'이다.
키즈폰에서 보급폰 그리고 부모들이 쓰던 최신폰 단계를 지나 이제 그들의 세계는 '아이폰시대'이다. 생일이나 핸드폰이 고장 난 날, 기회만 생기면 아이는 아이폰을 쓰는 친구들의 이름을 줄줄 읊으며 아이폰을 사달라고 조른다.
"대체 왜 아이폰이 좋은 건데?"
"친구들 다 아이폰 쓴단 말이야~"
논리 있는 대답이 나올 거라 기대하진 않았지만 단지 친구가 다 쓴다는 이유라니 말문이 막힌다. 또래 집단 영향을 많이 받는 시기라서 친한 친구가 아이폰을 쓰면 따라서 쓰는 경향이 강한 건 알지만, 100만 원이 훌쩍 넘는 것을 친구랑 같은 걸 쓰고 싶다는 이유로 구입을 하자니 부모는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사실 친구가 사용한다는 핑계의 뒷면에는 명품의 대중화, 연예인 효과 등도 청소년들의 아이폰 선호 현상으로 그들을 따라 하려는 유행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잘 알기에 더 망설여지기도 한다. 지난해 기존 갤럭시 모델이던 아이돌 블랙핑크가 일제히 아이폰으로 휴대폰을 바꿔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선망하는 연예인의 애플 로고가 선명하게 찍히는 '거울 셀카' 등을 보고 모방심리가 작용해서 많은 청소년들이 아이폰을 구매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었다. 아이돌 1세대 팬클럽이었던 나도 나의 아이돌이 마신 음료수부터 패션, 액세서리, 핸드폰 등 그들의 이름이 새겨지거나 그들이 사용한 모든 것들을 공유하고 싶었던 적이 있었기에 친구들과 동일시되고 싶은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는' 한다.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잘 나온대"
" 아이폰 안 쓰면 왕따"
라는 믿고 싶지 않은 아이의 얘기에 속상하기도 이런 현실이 안타깝기도 한다. 세련된 애플의 디자인과 아이폰 특유의 사진 효과, 아이메시지, 에어드롭까지 그들'끼리'만 누릴 수 있는 집단 문화의 특징에 딱 맞아떨어졌기에 윗 집, 아랫집 모두 아이폰 타령이겠지만 마음으로는 이해하면서도 머리로는 받아들이기가 힘들다.
난 사실 아이폰보다 아이팟과 아이패드가 더 탐난다 ㅎㅎ
“아직도 롱패딩을 입고 있는 사람이 있냐”
외식을 하고 집으로 걸어가는 우리 가족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당황했다. 추위로 인해 롱패딩을 입고 가던 나에게 고등학생 두 명이 뒤에서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역시 패딩은 숏패딩이 이쁘다고 우리 가족 뒤에서 속닥거리는 걸 듣고는 아들은 괜히 옷매무새를 살피며 발걸음을 빠르게 걸었다.
숏패딩이 꾸준한 인기를 보이는 가운데 롱패딩을 입는 이들을 두고 ‘패딩 거지’라고 한다더니 그 순간 나는 그들에게 '거지'가 된 것이다.
나의 롱패딩은 3년 전쯤 한창 롱패딩이 유행할 때 구입했다. '단일민족'이라는 우리나라만의 특유한 인식 때문인지 그 당시 패딩은 어디 가나 롱패딩뿐이었다. 숏패딩이 있어도 추위를 많이 타는 나는 롱패딩을 구입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어김없이 한파가 오는 날 너무나 잘 입고 있다.
불과 1~2년 전 유행이 지나간 이후라 해도 따지고 보면 유행이 2번의 겨울을 보냈을 뿐인데 내 겨울 최애템 롱패딩은 거지의 복장으로 취급을 받고 있다. 분명 대부분 청소년들도 올 겨울을 지낼만한 롱패딩이 있을 테지만 학부모들은 유행에 민감한 청소년들에게 숏패딩을 다시 사줘야 하는 부담감에 가정 경제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는 숏패딩 길이가 짧아졌어도 짧아진 길이만큼 가격이 내려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지역 맘카페에서도 자녀에게 시대 흐름에 맞는 숏패딩을 사줘야 할지 추위를 생각해 따뜻한 롱패딩을 구매해야 하는지에 대한 글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심지어 “며칠 전에 아이들에게 롱패딩을 사줬는데 아이들 패션 트렌드를 좀 알아보고 숏패딩을 사줄 걸 후회한다”며 “아이들이 유행에 민감하기도 하고 혹시나 우리 아이들이 의도하지 않게 놀림·조롱거리가 될까 걱정된다” 보세 패딩을 구매해 학교에 입고 갔다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걱정이 되어 다시 브랜드 패딩을 사줘야 하나 하는 고민 글도 보았다.
옷이 예쁜걸까, 모델이 예쁜걸까?
흔히들 유행에 뒤처지거나 최신 트렌드에 둔감한 사람을 두고 ‘옛날 사람’이라며 타박을 주는 경우가 많다. 이는 한국 사회 특유의 ‘냄비’ 성질과도 맞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무언가 유행이 시작되면 자신이 이 흐름에 따라가지 못할 때 조급함을 느끼게 되고, 이내 뒤처지지 않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펼치게 되는 것이다. 혹자는 부정할 수도 있지만 이처럼 금방 끓고 금방 식는 한국인만의 유행에 대처하는 자세는 앞서 이야기 한 바와 같이 여러 가지 현상들을 불러오기도 한다. 무작정 유행을 따라가면 궁극적으로는 아무도 돋보이지 못하는 결과가 나타난다는 건 사춘기가 지나면 알게 될까? 맹목적으로 유행만 추구하다 보면 본인만의 개성이 사라진다는 걸. 요즘 대세는 “개인주의"고 "개성"이니 새로운 해가 떠오르는 이 시점에서 유행의 테두리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가꾸기 위한 노력을 해보라며 꼰대의 잔소리로 아이의 "나도 사 줘" 타령을 막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