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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Feb 29. 2024

우리 집엔 오베가 산다.

<오베라는 남자> 포드릭 배크만

"이런 일로 자는 사람 꼭 깨워야겠어요? 

아직 14시간 안되었잖아요!!"

남편의 큰 소리에 나를 비롯한 가족 모두가 숨을 죽이고 긴장을 했다. 예민한 1호와 불안증은 가지고 있는 나로 인해 가족 앞에서는 친구들이랑 통화할 때나 본성이 나온다는 운전을 할 때에도 화를 내기는커녕 욕조차 쓰지 않는 사람인데 이번에는 꽤나 화가 난 모양이다. 사실 오늘 일로만 화가 난 건 아니다. 그동안 전기차 충전과 주차 문제로 여러 번 갈등이 생겨 건의와 민원을 넣고 있었다. 각자의 상황이 있으니 중재하기 쉽지 않을걸 알기에 현명하게 해결해 주기만을 기다렸는데, 알고 보니 고분고분하게 기다리는 남편의 의견은 전혀 반영하지 않은 상태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무작정 우기고 보는 다른 주민들의 고충을 우선적으로 처리해 주고 있어 심기가 불편한 상태였다. 그래서 '뭐 하나 걸려봐라' 하고 벼르고 있던 와중에 충전 중인 차가 아직 주차시간을 초과하지 않았는데 충전이 다 되었으니 차를 빼달라는 전화를 한 것이다.

"왜 차를 빼달라는 거예요? 그리고 왜 그걸 관리소에서 전화를 하는 건데요?"

"전기차 충전 주차시간이 몇 시간인 줄은 아세요?"

"아니~ 그러니까 제가 뭘 잘못했냐고요. 대체 왜 제가 차를 빼야 하는 거예요?!"

교대근무를 하는 사람이라 밤을 새우고 온 날에는 잠을 자기가 쉽지 않아 야간 근무를 하고 온 날은 여자들의 월경일 만큼 예민하다. 하필 이런 날에 전화를 한 아파트 관리소 직원은 다른 주민의 의사 전달만 하려고 했을 뿐인데, 피곤해서 생긴 짜증과 그동안의 불만을 모두 받아내야만 했다. 역시 인생은 타이밍이다. 전화로 실랑이를 하던 남편은 결국 씩씩 거리며 주차장으로 향했다.

남편은 비상 깜빡이를 켜고 기다리고 있던 트럭 운전사에게 다가가 차 문을 두드리고 잠시 내려서 얘기 좀 하자며 말을 걸었다. 그리고는 지금은 낮이라 전기차 충전구역 빈 곳이 많은데 왜 굳이 전화를 해서 차를 빼라고 하냐며, 전기차 충전구역에서 제대로 주차시켜놓고 주차시간 준수하고 있는 거라고 큰소리를 쳤다. 트럭 운전사는 본인 집 출입구 가까운 곳에 충전을 하려 얌체짓을 하려다 지나다니는 동네사람들 앞에서 체면을 구기며 사과를 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이웃에 관해 들려오는 소식들이 주로 층간 소음, 주차문제 등 이웃갈등과 관련된 불화를 다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무서운 일들이 생기기도 하고, 갑질 등의 이기적이고 매정한 사람들 얘기에 이웃사촌이란 단어가 사라진 지 오래다. 나조차도 앞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이사를 가서도 동네 주민들한테 웃으며 떡을 돌리는 미덕은 해본 적이 없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파트의 콘크리트만큼이나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지닌 사람들이 되어 가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뉴스를 접할 때마다 <응답하라 1988>의 쌍문동 골목처럼 인정 많던 나의 어릴 적이 그리워진다.

 <오베라는 남자>는 이러한 이웃 간의 모습을 생각해 보기 좋은 소설이다. (영화로는 '오토라는 남자'로 각색되어 나왔다.) 소설 속 주인공인 오베는, 자신에게 거슬리는 일은 못 참고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을 가진 남자다. 죽은 아내가 그리워 죽으려고 행동을 실행하는 중간에도 친절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을 돕는 이른바 '츤데레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웃음을 자아낸다. 오베가 삶을 포기하려는 순간 반찬통에 이란의 전통음식을 담아서 찾아온 이웃 아이들의 벨 소리, '죽기 전에 나부터 책임져라'는 듯 오베 앞에 나타난 길고양이. 과체중 알레르기 환자, 동성애자 등 오베가 불편하게 여기던 사람들이 도리어 오베의 삶을 잇도록 하는 동력이 된다. 비록 웃는 낯으로 도와주지는 않지만, 새 이웃인 이란 출신의 파르바네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사람들을 향해 기꺼이 손을 뻗는 오베는 쓴소리를 해가면서도 이웃의 차량 정비를 돕고 운전도 가르쳐주는 모습에서 그의 고집과 외로움이 남 이야기 같지 않고 그가 마치 남편의 미래인 것처럼 느껴져 더 재미있게 이 책을 읽었는지도 모른다. (자살하려는 것만 빼고-)

 소설의 엔딩에서 오베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 역시 이웃들인데, 오베의 장례식에서도 슬퍼하기보다는 오베를 추억하며 웃는 이들의 모습에서 이 소설이 주는 따스함을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다.


영화 <오토라는 남자 > 中

 내가 살고 있는 이 동네도 오베가 사는 마을과 많이 닮았다. 봄에는 아파트 산책로에 활짝 핀 벚꽃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고, 여름에는 정문 앞 편의점이 저녁 산책을 하던 이웃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는 아지트가 된다. 단풍이 물든 놀이터는 아침마다 아이를 보낸 엄마들의 카페가 되고, 추운 겨울엔 또래가 사는 집들끼리 서로 품앗이하며 놀이방이 되어주는 이곳에서 난 많은 인연을 만났고, 여전히 그들과 서로 도우며 정을 주고받고 있다.

뭐든 나누는 이웃사촌들

 큰소리로 전기차 충전을 가지고 이야기하던 남편과 트럭기사도 결국은 서로의 상황을 알고는 웃으며 마무리를 지었고, 각자 사용하던 전기차 충전 어플에 관해 정보를 공유하는 사이가 되었다. 괜한 불똥을 받은 직원과 관리사무소장님과는 커피 한 잔을 하며 화해를 했고, 며칠 전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설치해야 하는 전기차 충전기의 위치에 관해 상의하자는 말에 남편은 "알아서들 하면 되지, 사람을 오라가라야." 하며 툴툴대며 나가서는 주민들이 최대한 피해 없이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도록 충전기의 전선 길이까지 재어 위치를 선정해 주고 왔다.

 옛말에 '집값이 100냥이면 이웃값이 90냥'이라는 말이 있다. 이사를 가게 된다면 가장 아쉬운 점은 아마 좋은 이웃을 두고 떠나는 것일 듯하다.    


"좋은 이웃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다." - 중국 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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