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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Feb 27. 2024

돌잔치? 그게 뭣이 중헌디

<솔직함의 적정선> 백두리

잠자리에 누워 도란도란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또래 친구들에 비해 월등히 말이 많은 두 형제는 오늘도 서로의 이야기를 하느라 시끄럽다. 1호는 엄마와 이렇게 나란히 누워 대화하는 시간이 하루 중에서 가장 행복하다며 매번 이불을 깔고 나를 부른다. 그리고는 학교이야기, 책이나 TV에서 본 이야기, 상상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이야기를 꺼낸다. 혼자서 이야기하다 빵 터져서 웃기도 하고, 속상했던 이야기를 꺼내며 그때의 감정에 이입되어 화를 내거나 울기도 한다. 화자는 너무나 신나고 재미있는 시간이지만, 청자는 빠르고 쉼 없는 이야기의 진행에 종종 피로를 느껴 자는 척할 때가 많다.



 오늘은 뜬금없는 돌잔치 이야기가 나왔다. 이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요즘 대학과 진로에 관해 관심이 많아 그와 관련한 이야기를 하다가 돌잡이 이야기가 나왔고, 현재 1호의 장래희망과 돌잡이로 잡은 물건이 관련이 있다며 마치 꿈을 이룬 양, 좋아하며 이야기가 시작되었던 것 같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결혼식 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은 고난의 행사 '돌잔치'를 끝내고서는 '돌끝맘' (돌잔치 끝난 엄마)을 외치며 뒤도 안 돌아보고 돌잔치장에서 집으로 와서 뻗었던 그날에 대한 기억은 거의 없다.

하고 싶지 않다는 게 정확할지도 모르겠다. 가끔 <몇 년 전 오늘>로 사진이 뜰 때 보았던 나의 젊었을 적 모습과 아가아가한 1호의 모습만 기억에 박혀 있을 뿐. 그런데 오늘따라 이 녀석이 자꾸 돌잔치에 대해 묻는다. 그래도 본인의 첫 번째 생일인데, "엄마는 그날을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너무 힘들었던 기억밖에 없어서 다시 떠올리긴 싫어"라고 말할 수는 없으니 대략 난감해지기 시작한다.

이천만장 중 하나 건진 돌사진

다행히 본인 돌잔치에 대한 질문은 돌잡이에 한 걸로 간단명료하게 넘어갔고, 이제 좀 자려나 는데 뜬금없이 질문의 주인공이 1호 본인에게서 나에게로 화살이 향했다.

"엄마는 돌잡이 때 뭐 잡았어?"

"엄마? 돌잡이 안 했을걸? 할머니가 기억 안 난다고 하던데?"

"엄마는 기억 안 나?"

"당연히 안 나지. 1살 때 기억은 너도 안 나지 않아? 엄마는 40년이 훌쩍 넘었는데 그걸 어떻게 기억해."

"돌잔치는 했어?"

"안 한 거 같아. 그때 엄마가 좀 사정이 있었거든."

"왜 안 했는데?"

"그건 약간 비하인드 스토리인데, 지금 이야기해도 1호는 이해가 안 갈 거야. 좀 더 크면 얘기해 줄게."

"......"

"이제 자자."

"엄마... 혹시 축하해 주러 올 사람이 한 명도 없어서 그런 거야?"

"응? 올 사람?? 그러고 보니 손님으로 부를 사람도 없었을걸..?"

"......"




1호는 갑자기 조용해졌다. 그새 잠이 들었나 하고 조심히 몸을 뒤척이는데 옆에서 아이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린다.

"1호야, 울어? 왜?"

"흐흐흑. 흐흐흑"

"너 갑자기 왜 울어? 아파?"

"엄마. 왜 아무도 안 왔어?"

"으응??"

"엄마 돌잔치인데 왜 아무도 축하 안 해줘? 그럼 너무 불쌍하잖아"

"아니~ 그게....."

"엄마 너무 불쌍해. 으아아아아아앙"

뭐지? 이 당황스러운 전개는? 첫째인 나는 양가의 부모에게 허락받지 못해서 힘들고, 어렵게 사는 신혼부부의 아이였다. 그래서 내가 걷고 나서야 결혼 허락을 받으셨기에 돌잔치는 못했을 거라 짐작한 건데 이게 그렇게 불쌍할 일인가? 그렇지. 불쌍하다면 불쌍한 일이지.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까지 나를 위해, 조금 있으면 지천명인 나의 첫 번째 생일을 이제 와서 안타까워하고, 속상해할 필요가 있을까?

'아들아, 엄마를 사랑하는 너의 마음은 너무나 기특하고 고맙지만, 이번엔 좀 선을 넘은 것 같지 않니?'

머릿속에선 이 말이 하고 싶어서 맴돌고 있지만, 꺽꺽 숨이 넘어갈 듯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녀석에게 해서는 안될 것 같다.

이럴 땐, 아이에게 엄마는 괜찮다고 엄마의 편(?)을 들어주어 고맙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함께 그때의 서러움을 저~어기 기억의 끝자락에서 뒤져서 찾아와 함께 속상해하면 울어야 하나? 감정이 메마른 곧 갱년기 엄마는 감정이 풍부해진 곧 사춘기 아들 앞에서 몸 둘 바를 몰랐다.

금방이면 그칠 줄 알았던 아이는 5분이 넘어도 계속 서럽게 울고 있다. 등을 돌려 울다가 좀 잠잠해져서 "괜찮아?"라고 물으면 내 목소리에 또다시 울고, 울다가 혹시나 엄마가 다른 데로 갔을까 싶어서 뒤돌다 눈이 마주치면 또다시 울기 시작했다.

남편이 내가 울 때마다 어쩔 줄 모르고 휴지만 가져다 옆에 두고는 가만히 앉아 기다렸을 때, 이런 기분이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돌잔치를 안 했는지 이야기를 해주면 더 불쌍하다고 울 것 같은데, 이제 와서 했다고 할 수도 없고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봐도 1호의 울음을 그칠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괜한 아이의 감정만 건드려 울다 지쳐 잠들게 하고 싶지 않아 고민을 하다 결국 친정엄마에게 SOS를 요청했다.

뭣이 중헌디...


평소에 하지도 않는 연락을 밤 9시에 뜬금없이  "엄마, 자?" 하며 무섭게 다가오는 딸의 톡에 엄마는 놀래서 바로 전화를 걸어왔다.

"왜? 이 밤중에 무슨 일이야?"

"아니 그게..."

엄마는 자초지종을 듣고는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푸셨다. 본인이 설명할 테니 1호를 바꿔보라 하셨지만, 우는 모습이 창피해진 녀석은 전화를 거부했다. 그래서 영상통화로 변경해 아이를 비추며 입모양으로 "어떻게 해"라고 하니까 엄마는 해결할 수 있다는 눈빛을 나에게 보내며, 더 큰 목소리로 천천히 이야기를 한다.

"1호야, 엄마가 잘 못 기억한 거야. 너도 돌잔치 기억 안 나지? 너무 아기 때라서 엄마가 기억 못 하나 봐.

엄마 돌잔치 했어. 1호 왕할머니 알지? 왕할머니도 오시고 왕 할아버지도 오시고 다 오셔서 집에서 돌잔치했어. 그때는 돌잔치하는 식당이 없어서 다들 집에서 했거든. 그래서 엄마도 집에서 다 했어."

그러자 베개 밑에 머리를 숨기고 있던 1호가 울음을 그치고 되묻는다.

"그럼 엄마는 돌잡이 때 뭐 잡았는데?"

"돌잡이? 그거까진 기억 안 나지. 할머니가 그걸 어떻게 기억하니? 너 할머니 깜빡깜빡하는 거 몰라?"

오~! 자연스러웠어. 나는 아이가 아직 이불속에 숨어 잔울음을 정리하는 걸 확인하고는 핸드폰 화면을 향해 엄지를 치켜세우곤 큰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엄마는 언제나 나의 해결사였어.'

1호는 그제야 울음을 멈췄다. 그리곤 또 방향을 틀어 이번에는 아빠의 돌잡이를 물었다.

"아~ 이제 그만하고 자자. 충분히 얘기했잖아. 아빠 돌잡이는 다음에 할아버지 생신 때 가서 직접 여쭤봐.

아마 할머니도 기억 못 하실 거야."

"응, 알겠어."



아슬아슬한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엄마가 늘 생각 좀 하고 말하라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또 세 치 혀를 함부로 놀려서 다 큰 애를 울렸다. 앞으로는 진짜 진짜 머릿속으로 필터링을 좀 해야겠다. 너무 솔직한 것도 좋은 건 아닌 것 같으니까.


백두리 작가가  <솔직함의 적정선>에서 이런 말을 했다.

  듣는 이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거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심코 던지는 말이 있다.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잘 모르고 한 말이어도, 또는 상대를 위해서 한 말이라고 해도 두둔해 줄 수는 없다. 보이지 않는 상황은 조심해서 다루는 게 나이를 먹은 사람의 자세다.


상대방의 입장과 상황을 배려하지 않고 솔직함과 무례함의 경계를 넘나들고는 솔직함으로 포장한 무례함으로 다가서는 의견을 향한 일침이 와닿아서 밑줄을 긋고 명심하자고 했건만 책을 읽고도, 나이를 먹어도, 변하지 않으니 큰일이다.


인간관계는, 엄마와 아들사이도 어렵다.

<솔직함의 적정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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