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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Apr 11. 2024

한창 예쁠 나이.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 >


몸이 이상해졌다. 갑자기 추워지는 기분이 들더니 정확히 몸을 반으로 나누어 오른쪽에 전기가 흐르는 기분이 든다. 초등학교 (정확하게는 국민학교) 시절, 친구들이 손목을 부여잡고 손바닥을 원 없이 때리며 선사해 준 그 전기가 이제 반응을 보이나 보다. 전기의 찌릿함은 피부를 닭처럼 변신시키고는 정전기를 보여주려는 듯 온몸의 털이 쭈뼛쭈뼛 선다. 정확히 오른쪽만 그러더니 다음날은 왼쪽에서 같은 반응이 온다.

갑작스러운 추위에 온몸을 움츠리고 있다 보면 이번엔 더위가 찾아온다. 감기몸살도 아닌데 등에선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고, 더위는 창고 속 선풍기를 꺼내올 정도였지만, 막상 선풍기 바람을 쐬면 바람이 차갑게 느껴진다. 추위와 더위가 몸의 겉 부분이 아닌 속에서 일어나고 있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답답하고 짜증 나고 힘들다.




 그날 밤도, 그다음 날도 잠이 오지 않았다. 걱정이 되어서 잠이 안 오는 건지, 몸이 안 좋아서 잠이 안 오는 건지 모르겠는 밤. 매일 밤마다 먹는 우울증 약 중에는 수면 유도제도 함께 있어서 약을 먹은 후 1시간 이내에는 잠이 들었고, 그 상태로 오전까지 잘 자곤 했는데.. 이번 주는 2시간마다 깨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12시. 2시 반. 3시 반... 결국 4시에 몸을 일으켜 양치를 하고 물을 마시며 길어진 하루를 시작해 본다. 그렇게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니 피곤함이 밀려오는 건 당연지사. 하품은 기침처럼 계속 나오고 눈꺼풀이 무겁다. 잠깐 눈이라도 붙이려 누우면 정작 잠은 안 와서 답답하다 못해 화가 난다. 이런 게 싫어서 병원을 그렇게 문이 닳도록 다닌 건데 왜 약을 먹는데 이러는지 의사에게 따져야겠다는 생각에 진료 예약일도 아닌데 침대에서 일어나 무작정 병원을 향했다.

 "왜 이러는 거죠? 약 부작용인가요?"

 "지금 말씀하신 증상은 호르몬에 관한 것이라 추측되는데, 정신과에서 쓰이는 약들도 호르몬제 이긴 하지만 다른 호르몬을 만들거나 자극을 주는 약들입니다. "

 그럼 뭣이 문제란 말인가. 그 길로 정신과 이전에 두통으로 한창 다니던 신경과에 가서 머리와 뒤쪽을 초음파를 보았지만 여기도 정상이란다. 병원에서 공통적으로 얘기한 것이 아무래도 답인가 보다.


"여성 호르몬의 문제 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월경하면서 이상했다. 양이 현저히 줄었고, 날수도 줄었다. 설마.. 혹시... 아닐 거야...라는 마음으로 산부인과로 향했다. 왜 산부인과에 갈 땐, 늘 불안한 생각이 엄습해 오는 걸까. 그리고 치과보다 더 가기 싫은 건 여자들만 아는 그 까닭 때문일테지. 하는 수 없이 마지막 치트키였던 산부인과를 향한다. '오늘 꼭! 이 원인을 찾아 내리라' 하는 굳은 의지가 두려움을 이기는 순간이었다.




"무슨 일로 내원하셨나요?"

" (그동안 겪은 증상을 설명하며) 호르몬 검사를 해야 하나 싶어서요.."

"왜 호르몬 때문이라고 생각하셨어요?"

"월경의 양과 하는 일수가 확연히 줄었거든요.

그리고 제가 신경과랑 정신과, 내과까지 다 다녀왔는데 정상 이래서요."

"아하하하!! 그래서 폐경일까 봐요?"

"(왜 웃으시지?) 네...."

"아직 41세밖에 안되셨잖아요. 아닐 거예요."

"그럼 제 증상이 폐경기 증상과는 다른가요?"

"아니요, 증상은 맞아요. 그런데 일단 너무 젊으세요. 마흔 하나면 한창 좋을 때잖아요."

"네? 마흔하나 가요? 아이가 내년에 중학생인데요?"

"그럼요~ 지금이 제일 좋을 때 아니에요? 애들도 다 컸고, 자리도 잡았고, 제일 예쁠 때고."

"..."

"그래도 불안해하실 것 같으니 여성호르몬 검사는 하고 가시는 게 낫겠죠?"

납득이 전혀 되지 않는 의사의 말에 고개를 갸우뚱하며 피를 뽑고 귀가를 했다.


"오빠, 나 한창 좋을 나이래."

"그렇지. (영혼이 전혀 없음)"

"오빠랑 나랑 동갑인데? 오빠 지금이 좋을 때야?"

"나는 신체나이가 80대잖아."

"나는 신체나이가 60대인데?"

"봐봐. 20이나 젊네. 좋을 때네."

그럼 그렇지, 괜한 말을 시켰다. 이 남자에게 무슨 위로와 공감을 바라고 내가 이야기했을꼬...


그렇게 걱정과 불안의 기나긴 이틀이 지나고 드디어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호르몬 수치가 조~금 낮은데 이 정도면 정상이에요.

환자분이 말씀하신 증상들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 스트레스가 원인일 테니 며칠 푹 쉬세요."

정상이라 다행이긴 한데, 화장실에서 큰일을 보고 휴지를 쓰지 않고 나온 것 같은 찜찜함이 남는다.

병이 생겼길 바랐던 건 아니지만 (솔직하게 2~3일 정도 정밀검사를 핑계로 입원했으면 하는 생각은 했다),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말은 나로선 "원인을 모르겠어요."라는 말과 일맥상통하기에 더욱 그랬다. 원인이라도 알았으면 했는데, 오히려 '한창 예쁠 나이'라는 말에 마음이 복잡해진다.




 지난주부터 읽고 있는 <마흔에 읽는 쇼펜하우어>에서도 그랬다. 마흔 즉, 40대부터는 타인의 객관적인 평가보다 나의 주관적인 만족감이 중요하다며 나를 위해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서 소박한 행복을 하루하루를 채워나가라 하던데... 정말 40대가 가장 좋을 나이긴 한 걸까? 이 또한 지나가봐야 알게 되는 것이려나...? 의사 선생님의 말씀이 와닿진 않았지만 틀린 말씀은 아니었다. 지금까지의 삶을 돌이켜 봤을 때, 가장 안정적이고 사소한 행복들이 많이 느껴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럼에도 내가 쇼펜하우어와 의사 선생님의 말씀에 크게 동의하지 못하는 건 예쁘고 좋을 시기는 에너지 넘치고, 세수도 하지 않은 민낯에 트레이닝복 입고 슬리퍼를 신고 밖을 나가도 되는 말 그대로 존재만으로도 예쁘기만 한 이제 막 성인이 된 20대라고 그게 마치 답인 듯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 문장에 하고 싶은 말이 많으나 좋은 말은 아니니 패스!!)

 참, 책에는 그런 말도 있었다. 40대는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그래서 40대의 얼굴은 어때야 하는지 궁금해서 검색창에 <40대 여자>를 쳐봤더니, 김태희를 비롯한 많은 여배우들이 창을 가득 메꾼다.


'아, 이런 거구나. 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게...'

배움과 깨달음을 통해 용기와 앞으로의 의지를 다지려 했건만 오히려 자신감만 하락한다.

"아까 단톡방에서 '무슨 환'이 효과가 좋댔는데... 3kg을 빼준다고 했던가? 3kg이면 티도 안 날 것 같은데..."

한창 예쁘고 주관적인 만족감이 최고조라는 40대 입성한 필자는 다이어트를 하고나서부터 40대를 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므로 조건미달로 어쩔 수없이 윤석열 나이인 39세를 해야겠다. 이 말인즉슨, 나는 30대라는 것. 이렇게 생각을 바꾸고 언니들의 사진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이런 게 쇼펜하우어가 말하는 '나의 주관적인 만족감'이고 '소소한 행복'이지 뭐~ 인생 별거 있나? 내 맘대로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게 인생이지!


그러므로,
난 조건 미달이니
아직 30대인 걸로~!


속을 시원하게 해 주고 슬픔을 덜어주는 것 세 가지 물과 꽃 그리고 미인 -산스크리트-
(아름다운 것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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