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클레이 놀이하듯 수제비를 뜯으며 시시덕거리던 찰나 스치듯 지나가는 단어가 있었다.
"도파민 덕분인가?"
이렇게 함께 웃으며 무언가를 해보는 게 얼마만일까? 아이들에게 짜증 내지 않고, 화내지 않고 하루를 보내 본 적이 있었긴 했었나? 이 모든 게 우울증이 문제였다면, 진작 병원에 갈걸 그랬다.
"아! 맞다 병원!!!"
끓고 있는 수제비의 불을 급하게 끄고 시계를 본다. 6시 10분. 30분까지 진료 접수이니 빨리 가면 아슬아슬하게 접수가 될 것 같다.
"오빠, 빨리!! 나 병원 가야 해. 차로 좀 데려다줘."
남편은 내가 갑작스러운 증상에 병원을 외치는 줄 알고 119를 불러야 되는 것 아니냐며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핸드폰을 들었다.
"아니야, 나 오늘 진료인데 깜빡했어. 빨리 가야 해. 30분까지 접수야."
남편은 안도의 한숨을 쉬지도 못하고 나의 등 떠미는 손에 이끌려 신발을 신었다. 학원과 병원 그리고 다이소까지 있어 주차장이 난장판인 곳이라 매번 걸어만 갔었기에 차마 내 손으로 운전을 하고 갈 수가 없었다. 시아버지의 차까지 긁어본 간 큰 운전자라 정말 피할 수 없을 때만 운전을 하기에 다행히 퇴근해 있는 남편의 도움을 받는다.
6시 20분 도착. 환자가 3명이 대기 중이었지만, 다행히 접수를 받아주셨다. 그리고 의사 선생님을 만났다.
"안녕하세요, 일주일 만에 뵙습니다. 어떤 힘드신 일이 있으셨나요?"
"네?"
"아직 약속된 진료 시간이 남아 있는데 오셨길래요. 약 먹고 어떤 점이 불편하셨어요?"
"아... 오늘이 진료일이 아니군요."
"네, 다음 주 목요일이.. 아, 날짜를 착각하셨군요. 혹시 약을 다 드셨나요?"
"아닐 거예요. 약이.... 남아있는데... 저는... 왜... 약이 남은 걸 봤는데도 오늘 진료라고 착각했을까요?"
"바쁜 일상을 보내시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럼 오신 김에 약이 잘 맞으시면 더 처방해 드릴게요. 이 약으로 정착해 보는 걸로 하고요."
그렇게 급하게 갔던 진료는 당황스러운 전개로 마무리를 지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생각을 했다. 왜 오늘 병원을 와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매번 2~3주 간격으로 갔었는데, 왜 일주일 만에 진료를 생각했을까. 알림도 안 울렸고, 병원에서 예약문자도 안 왔는데... 왜....
'또다시 불안감이 엄습해 오는 걸까?'
'약이 줄어든 것 보고 걱정이 되었나?'
'이러다 약에 중독되는 건 아닐까?'
최근에 <도파민네이션>이라는 책을 읽어서 '중독', '도파민'이란 단어에 더 꽂혀있는지도 모르겠다. 도파민네이션(dopamine nation)이란, 과학자들은 중독 가능성을 측정하는 보편적인 척도로서 도파민을 사용한다. 뇌의 보상 경로에 도파민이 많을수록 중독성은 더 커지는데, 과거에는 도파민을 자극하는 대상을 구하기 힘들었지만 인간이 세상을 결핍의 공간에서 풍요가 넘치는 공간으로 바꾸면서 중독의 법칙이 바뀌었다. 중독성 물질, 음식, 뉴스, 도박, 쇼핑, 게임, 채팅, 음란 문자,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트위터… 오늘날 큰 보상을 약속하는 자극들은 양, 종류, 효능 등 모든 측면에서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가했기에 디지털 세상의 등장은 이런 자극들에 날개를 달아주었다. 스마트폰은 컴퓨터 세대에게 쉴 새 없이 디지털 도파민을 전달하는 현대판 피하주사침이 됐다. 우리는 도파민, 자본주의, 디지털이 결합된 탐닉의 사회, 도파민네이션에 살고 있어서 이제 누구도 중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내용의 책이었다. 약물의 중독, 인스타그램을 비롯한 스마트폰 중독에 대한 내용에 뜨끔해하며 걱정을 한 움큼 집어왔었는데, 때마침 지난 진료 때 의사가 무기력함이 나아지지 않자 도파민을 처방해 주어 나도 모르게 긴장하고 불안해 병원을 다시 찾아갔는지도 모르겠다.
신의 장난일까, 단순한 우연일까. 오늘 단체 채팅방에서 본인의 무기력을 이야기하며 도파민을 처방받았다는 이야기를 꺼내며 우울증과 도파민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약을 먹다가 안 먹으니 무기력 상태로 다시 돌아와 오전시간이 다 날아가는 게 싫어서 어쩔 수 없이 또 처방을 받아왔다며 의지로 이겨내지 못하는 자신에게 너무 속상하다는 이야기가 시작이었다. 다들 날씨와 운동, 음식, 웃음 등 도파민이 생성되는 방법을 하나씩 내놓으며 그녀가 잘 이겨내기를 응원했지만, 나는 안다. 그런 것들이 원인이 될 수는 있지만, 우울증 환자에겐 해결책이 되지 않는다는 걸. 아니, 해결책이 되지만 하지 않게 된다는 것을. 그나마 약만이 우리를 움직이게 한다는 걸 말이다.
우울과 도파민 이야기를 하게 된 건 운명일까?
나도 그녀와 같은 현타에 이 상황을 이겨내보고자 도움을 얻기위해 읽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애나 렘케 박사의 저서 <도파민네이션>에서는 도파민에 대한 설명과 중독에 대한 해결책을 다음과 같이 내놓았다.
도파민은 중추신경계에 존재하는 신경전달물질의 일종으로 의욕, 행복, 기억, 인지, 운동조절 등 뇌에 다방면으로 관여하는데, 뇌에서 분비된 도파민은 뉴런과 합성된 후 세포 속에 충전되어 활동 전위를 자극한 뒤 다시 방출되었다가 분해되어 재흡수된다. 그럼 나는 왜 부족할까? 애초에 만들어지기를 소량만 생성해 내는 걸까, 흡수를 하지 못하는 걸까?우울이 그 원인인지 결과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음 진료 때에는 이걸 여쭈어 봐야겠다.) 앞서 나의 경험으로 이야기했듯이, 뇌에 도파민이 너무 과도하거나 부족하면 ADHD, 조현병, 치매, 우울장애 증상을 유발한다. 나와 단체방의 그녀는 우울증을, 그리고 그녀의 아이들을 ADHD 증상을 겪어 도파민제를 먹기 시작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도파민은 흑질의 도파민을 생성하는 세포가 특이적으로 파괴되어 운동 능력이 점차 떨어지는 질환이 파킨슨병의 원인이기도 하다. 그 이유로 도파민은 파킨슨병 치료에 사용된다 하니 도파민은 실로 많은 역할을 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무섭기도 하다.)
도파민이 분비되면 성취감과 보상감, 쾌락의 감정을 느끼며, 인체를 흥분시켜 살아갈 의욕과 흥미를 느끼게 한다. 두뇌 활동이 증가하며 학습 속도, 정확도, 인내, 끈기, 작업 속도 등에 영향을 준다. 좋아하는 음식을 먹거나, 멋진 옷을 입거나, 갖고 싶었던 물건을 구매하며, 여행을 가거나, 업무 성과를 달성하거나, 좋은 음악을 들을 경우에도 도파민이 분비되기에 대화창에 있던 다른 분들이 운동과 달콤한 빵을 이야기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포르노, 술, 담배, 약물 및 오락 등도 도파민 분비를 증가시킨다는 것은 가장 널리 알려진 사실일 것이다. 도파민은 내가 우울증 약으로 먹고 있는 세로토닌과 함께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호르몬이다.
도파민의 분비량은 20세 전후에 최대가 되고 나이가 들수록 줄어들며, 노년이 되면 최대 50%까지 줄어들 수 있다는 내용에는 '그럼 나는 이 약을 먹지 않으면 노년에 도파민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것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대체 약을 언제까지 먹어야 하는 걸까? 감정 조절 부문에서 도파민이 결핍되거나 뇌가 도파민에 내성이 생기면 무엇을 해도 금방 질리고 쉽게 귀찮아지며, 모든 일에 쉽게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되는데, 지금 딱 나의 상황이기에 도파민은 이제 나에게 밥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이 약을 오랫동안 먹는 것은, 신경 써서 제 때 먹어야 하는 불편함도 있지만 어디선가 주워들은 '중독'에 대한 염려가 더 컸다. 의사는 소량이고, 일시적으로 먹는 것이라 괜찮다고 했지만 약을 먹는 환자 입장에서는 의사의 말을 100% 믿고 맘 편히 지낼 수는 없다 (어쩌면 이 불안과 의심도 우울의 연장선일지도 모르겠다.) 책에서 말하길, 도파민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마약이나 기타 각성제들은 기본적으로 도파민 분비를 촉진하거나, 도파민의 재흡수를 막아서 도파민의 총량을 늘리는 약물들이다. 도파민을 최대 1,200%까지 증가시키는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을 투여하면 흔히 '다행감'이라고 불리는 극도의 행복감과, 며칠 동안 잠이 오지 않을 정도의 극단적인 각성 효과 그리고 작업 능력의 향상이 일어나게 하지만, 인체는 항상 내, 외부의 자극에 반응하여 향상성을 유지하려 하기에 의존증 문제가 발생한다. 그게 바로 내가 우려하는 중독이다.
애나 렘케 박사는 시스템의 관점에서 이러한 이를 이해하고 대처하는 방법, 일명 '도파민 디톡스'를 제시한다. 도파민 디톡스는, 과도한 도파민 분비로 인한 정신적, 신체적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건강한 도파민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여러 가지 활동과 생활 습관 개선을 실천하는 프로세스이다. 중독의 원인인 스마트폰 사용시간을 줄이고 자극적인 소셜미디어 활동을 제한하는 것 외에도 명상, 걷기, 운동, 올바른 식사, 가족 및 친구들과의 대화 등을 통해 시간을 보내며 도파민 수준을 조절하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말이다.
결국, 단톡방에서 주고받은 이야기가 우리의 해결책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우리 모두 정신과 박사였나 보다.) 애나 렘케 박사가 말하는 도파민 디톡스를 할 경우, 스트레스 해소와 정신 건강 회복, 일과 관련된 생산성과 성취감 또한 향상될 것이라 하고, 결국 답은 그것들 밖에 없는 것 같으니 하는 수 없이 하나씩 실천해 보려고 한다. 큰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내 일상을 송두리째 바꿔야 하는 것도 아니니까 약에 더 의존하기 전에 말이다. 일단 신발을 신는 게 가장 시급하다.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기 위해 지인들의 도움을 얻어야겠다. 약속을 잡고 누구든 만나는 것부터 STAR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