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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이 Apr 10. 2024

어떻게 얘네들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그의 꿈은 수의사다. 동물을 좋아한다는 이유, 그거 단 하나다. 본인 몸에 난 상처도 징그럽다고 못 보고, 주삿바늘이 들어가기도 전에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흘리면서 동물들을 어떻게 치료해 줄런지 의문이 들지만 본인이 하겠다니 말리지는 않는다. (아직 수의사가 되기 위한 벽이 어마어마하게 높다는 걸 몰라서 그러는 것 같다.) 아무튼, 본인 꿈이 그렇다는 이유로, 자꾸 집에서 동물을 키우고 싶어 해 매번 난감하다. 알레르기와 아토피가 있는 2호는 약을 달고 살아야 하고, 1호가 키우고 싶어하는 동물은 늘 상상을 초월한다. 어느 누구보다 귀하고 소중한 그의 꿈이, 야생의 동물들을 살펴주는 일이라며 지금부터 경험을 만들겠다는데 어느 누가 말릴쏘냐. 그 꿈을 이루기 위한 발걸음은 집에 생명체를 들이는 데에 아주 괜찮은 이유로 작용하기에 늘 우리 부부는 OK를 외쳐야만 했다.




 첫 번째 동물은 단연, 개들인 초코랑 파이다. 이전에 글로 남겼듯이 이 녀석들은 친정집에서 키우고 있던 개들인데 노견이라서인지, 태어나서부터 키워서 인지 얌전하고, 똥오줌을 잘 가려서 아이와 함께 키우기에 나쁘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은 아이들과 개가 함께 자라면 정서에 좋다는 것이 생각도 났고, 나 또한 초코와 파이에게 많은 정이 들어있는 상태라 딱히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산책도, 목욕도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정도의 난이도이니 남편의 귀찮음을 모른 체하고 우리 집으로 데려와 함께 살고 있다. 지금은 초코와 나란히 누워서 장난치는 것을 좋아할 정도로 남편도 정이 흠뻑 들어 초코 파이를 비롯한 우리 식구 모두가 행복하고 사이좋게 지내고 있다.

사랑이들 ♡

두 번째는, 누에였다. 1호가 다니던 어린이집은 한 달에 한 번씩 동물체험이라는 명목하에 동물들이 어린이집에 와서 소개를 시켜주고 직접 만져보며 교감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어느 여름날은 선생님이 누에를 가져오셨는데, 직접 키우면서 누에고치를 틀고, 번데기 과정을 지나 나방이 되는 과정을 관찰하라며 각 가정에 5마리씩 보내주셨다. 노란 버스에서 아이가 젓갈통 같은 빨간 뚜껑에 투명한 통을 들고 내리는 순간, 소리를 지르자 차량지도를 하시던 원장님이 웃으셨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징그럽고, 소름 끼치던 누에도 결국엔 아이들을 위해 무서움을 이겨내고 나방이 되기까지 열심히도 키웠다. 유치원에서 충분할 거라는 뽕잎은 일주일 만에 다 먹여서 남편회사와 벌레와 가시 덩굴이 가득한 숲까지 헤쳐가며 뽕잎을 따오는 정성까지 보였으니 내가 생각해도 그때 나는 용감하고 멋진 엄마였다. (다시 하라면, 절대 못할 듯싶다.)

누에고치 실 뽑는 중

세 번째는 배추흰나비였는데, 누에와 마찬가지로 학교에서 나눠준 관찰 선물(?)이었다. 애벌레가 상태로 화분과 같이 와서 혼자 번데기가 되었다가 나비가 되어 방생해 주기까지 사람이 챙겨줄 것이 없었고, 그 기간이 짧았기에 이 아이는 이름도 없이 잠시 우리 집에 머물다가 자연으로 돌아갔다.




네 번째는,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다. 이 녀석들의 성장과정은 매미 만만치 않게 안타깝다. 알에서 태어나 3령이 되기까지 애벌레로 지내는 녀석들은 흙에 있는 영양분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그렇게 4개월 정도 살다가 번데기가 되어 10일 정도를 보낸 후,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의 모습으로 1~2주 정도 살다 삶을 마무리한다. 그 1~2주 사이에 그들은 후손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을 (?) 하는데, 집이 조용할 때 (특히 자려고 할 때) 유독 크게 들리는 그들의 일하는 소리는 성인이 듣기에도 민망하다. 그렇게 그들의 노고로 태어난 알은 30~50개 정도 낳는데 바로 분리하지 않으면 부모들이 잡아먹기에 주도면밀하게 움직여야 한다. 알을 다 낳으면 암컷이 먼저, 그리고 홀로 남은 수컷도 수명을 다하게 되고 그들의 후손들이 같은 삶을 반복하게 된다. 오늘도 우리 집에서는 2마리의 장수풍뎅이 (암컷과 수컷)로 성충이 되어 둘만의 신혼방을 만들어 주었다. (설마 신혼 첫날밤부터 시끄럽진 않겠지?) 이 곤충들을 키우는 건 성장과정을 살펴볼 수 있고, 손이 많이 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하급수적으로 개체 수가 늘어나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혹시 장수풍뎅이와 사슴벌레를 키울 생각이 있다면 그전에 알들을 나눠 줄 인맥을 많이 넓혀 놓으시길 바란다.

허물벗는 장수풍뎅이


네 번째는 오늘 입양해 온 녀석이다. 바로 도마뱀. 그중에서도 레오파드 게코라는 녀석이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도마뱀만큼은 정말 키우고 싶지 않았는데, 1호가 격렬하게 반대하는 부모를 설득하기 위해 1년을 노력했다. 평소 잘 읽지 않던 백과사전 같은 도마뱀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고, 노트에 정리를 하는 건 기본이요, 책사과 책장을 깔끔히 정리하더니 도마뱀 상자를 넣을 곳까지 생각해 두고 책장 1칸을 비워두었다. 거기다 매일 보란 듯이 도마뱀이 나오는 영상(영어로 보니 TV보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을 보며 나에게 설명을 해주며, 엄마가 무서워하는 벌레를 먹지 않고 크기도 많이 커지지 않는 도마뱀으로 자신이 고르겠다며 가스라이팅을 하기 시작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더니 세상에서 벌레와 그다음으로 양서류/파충류를 질색하는 우리 부부의 집에 벌레를 먹는 도마뱀이 살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새 식구 <파이리>를 소개합니다~!

목이 부어서 열이 38.7까지 올라가는데도 해열제를 먹고는 파충류샵을 가기 위해 그동안 소원상자(소원을 이루기 위해 모아두는 저금통)에 모아두었던 돈들을 챙기는 1호를 보며

 "쟤도 참 대단하다. 저 정도 노력이면 나중에 커서도 뭐라도 하겠지."

라며 남편과 나는 서로를 위로했다. 그동안 파충류샵은 일정이 없는 주말이면 가서 어떤 도마뱀이 있는지 (매 번 갈 때마다 다른 애들이 있다.) 살펴보고, 본인이 책과 영상에서 본 것들을 토대로 나중에 무엇을 살 것인지, 그래서 얼마가 필요한지 나름의 계획을 하며 들락거렸기에 우리 부부도 어디까지 허용해 줄 것인지 나름의 전략을 펼쳤다. 그래서 합의를 본 것이 레오파드 게코라는 키우기 무난하고, 너무 비싸지 않은 가격대에서 다른 녀석들의 비해 크기가 작은 '게코 도마뱀'이었다. 그중에서 1호는 '레오파드 게코'라는 무늬가 화려하고 다양한 녀석을 Pick 한 것이다. 그렇게 수차례 갔던 파충류 샵인데, 오늘은 입양을 할 마음을 먹고 가서 인지 직원들에게도 더 적극적으로 질문을 하게 되고, 우리 집에 어떤 녀석을 데려갈지 고르면서 보니 징그럽고 혐오스러웠던 녀석들이 귀엽고 사랑스럽기까지 하다. (더 이상 자라지 않았으면 참 좋으련만..) 사람이란 게 참 간사하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다. 그렇게 도마뱀 한 마리와 사육장, 먹이 등을 사들고 집으로 돌아온 1호는 결국 약기운에 그대로 뻗어서 잠이 들었고, 나는 1호가 빙의된 듯 도마뱀의 눈과 속눈썹에 반해 수시로 살펴보기 시작했다. (단, 사육장 안에만 있어야 한다.)


 다음엔 또 어떤 생명체가 우리 집으로 올지 예상조차 할 수 없지만, 벌써 걱정과 기대가 된다. 이러다 정말 우리 집이 미니 동물원이 되어 <세상에 이런 일이> 혹은 <동물농장>에 나오는 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큰일이다!! 오늘부터 급하게 다이어트를 시작해야 한다.


작년에 먹다가 얼려둔 닭가슴살이 어디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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