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말리는 경험에서 깨닫게 된 UX
드라이기는 뜨거운 바람만 나오는 기계인 줄 알았다.
적어도,
없어지기 전까지는.
다이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예쁘고, 공학적이고, 있어 보이는 느낌.
갖춰두고 사는 집의 안방(혹은 화장대)에 하나쯤 있는 물건.
은연중에 내 마음 속에도 다이슨의 이미지가 남아있었다.
그래서, 다이슨 슈퍼소닉을 샀다. 조금은 충동구매였다.
비싼만큼 처음에는 조심히 썼다.
시간이 흐를수록 3만원짜리 드라이기마냥 막 사용하는 일상의 물건이 되어갔다.
어느 날 다이슨 드라이기가 고장났다.
as기간은 지났기에 사설 수리센터에 맡겼고 8만 원 정도 나왔다.
비싸다 싶었지만 한 번 더 쓰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까우니까.
몇달 후 드라이기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수명이 다했다는 메시지였다.
집에 서브로 두었던 몇만 원짜리 드라이기를 꺼냈다.
같은 사람, 같은 공간, 같은 시간.
달라진 건 도구 하나였다.
하지만 나(와 남편)는 미묘한 차이를 느끼기 시작했다.
1) 머리 말리는 경험
다이슨 쓸 땐 머리 말리는 과정에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냥 말리면 끝이었다.
(무게가 있는 탓에, 가끔씩 팔이 아프긴 하지만.. ^_ㅠㅠㅠㅠ)
그런데, 일반 드라이기를 쓸 땐 신경이 쓰였다.
'두피가 너무 뜨겁다.'
'바람이 왜 이렇게 거칠지?'
두 생각이 계속 교차하면서, 머리를 말리는 경험이 계속 불편했다.
2) 아이 머리를 말려야 할 때
다이슨을 사용할 땐 아이 머리를 말릴 때, 온도 생각을 안했다.
일반 드라이기로 바꾼 후엔 계속 판단해야 했다.
두피 아플까? 너무 뜨겁나? 아이의 반응을 확인하며 바람을 조절했다.
3) 교차 확인
남편은 감각이 예민한 편이 아니다.
그런데 일반 드라이기를 쓰자마자 그가 하는 말.
"다이슨이 좋았어. 바람이 달라."
감각의 극단에 있는 두 사람의 의견이 같았다는 건, '이건 사야 해' 라는 뜻이다.
일반 드라이기를 쓰는 일주일 동안, 주머니를 열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기울어갔다.
드라이기를 하루에 3명이 매일 사용하고 있다.
머리 말리는 스트레스, 아이 걱정, 생각해야 하는 횟수. 이걸 다 합치면 보이지 않는 비용이다.
가격은 여전히 부담이었다. 갑자기 40여 만원을 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니까.
대안이 없을지 몇 가지 제품을 찾아봤다.
어느 브랜드는 종류가 너무 많고, 다른 브랜드는 as를 택배로만 처리가 가능했다.
사용감이 만족스러울지도 모르다 보니 굳이 모험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추구하는 기준 중 하나는 아래와 같다.
자주 쓰는 물건은 기분이 좋아야 한다.
그렇게 다시 다이슨 드라이기가 부활했다.
사는 김에 신제품을 사는 게 낫다 싶어서 가장 최근 버전으로 구입했다.
사람마다 자동 온도 조절 기능에 호불호가 있는데,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마음에 드는 기능이었다.
사용자가 판단을 할 필요가 없고, 기계가 알아서 처리해 준다.
(하지만 역시 무겁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자세를 잘 잡아야 한다 ㅠㅠㅠㅠ)
머리를 말릴 때, 불편한 생각이 사라졌다.
머리가 마를 때, 열보다 바람이 중요하다.
열만 있고 바람이 없으면 찜질방 안에 있는 것과 같다.
그래서 좋은 드라이기(머리를 말리는 기준)는 다음과 같은 요소가 필요하다.
직진성: 물기를 어디로 보낼 것인가
밀도: 얼마나 집중해서 보낼 것인가
일관성: 그 상태를 얼마나 유지할 것인가
조건이 맞아야 머리카락도 빨리 마르고, 두피도 덜 자극받는다.
생각해 보면 내가 일반 드라이기를 쓸 때 불편했던 건 성능이 낮아서라기보다,
바람과 온도를 내가 계속 조절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반대로 다이슨은 내가 편히 머리를 말릴 수 있었다.
그래서 나한테는 이번 다이슨 구입이 예뻐서, 그냥 갖고 싶어서가 아니라
내게 가장 맞는 (=가장 적합한 UX) 드라이기였던 셈이다.
나는 스타일링을 열심히 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에어랩은 안 쓴다.
나한테 중요한 건 일상을 불편하지 않게 해주는 물건이었다.
여전히 비싸다고 생각은 하지만,
없다 있으니까 나의 피로를 덜어주는 물건이라는 건 확실하다.
나의 일상에선 충분한 이유였다.
『일상의 UX 실험실』은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하고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사람과 제품, 시스템이 만드는 경험을 다각도로 탐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