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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은 센스가 아니라 기준이다

선물 UX로 보는 관계와 선택의 구조

by LINEA


선물을 고를 때마다 고민이 된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선택이 조금 덜 어려워졌다.
쌀가게, MoMA 스토어, 그레인스쿠키를 보며 깨달은 것.



선물, 왜 어려운가


선물은 늘 어렵다. 생일이나 축하, 위로가 필요한 날, 무엇을 골라야 할지 고민에 부딪친다.

여기저기 웹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종착지는 카카오톡 선물하기다.

“이 사람이 좋아할까?” 고민하며 익숙한 브랜드를 검색한다.

결론이 나지 않으면, 결국 추천 탭에 보이는 제품이나 커피 교환권 같은 무난한 것을 선택한다.


그런데 나는, 어느 순간부터 이 과정이 예전만큼 어렵지 않았다.

왜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나는 선택할 때 비용, 관계, 상황, 실용성, 의미라는 다섯 가지 기준을 적용하고 있었다. 기준을 잡으면, 선택 과정에서 헤매는 시간이 줄어든다.


선물은 마음을 전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누구에게, 어떤 상황에서, 얼마의 부담으로, 무슨 의미를 전달할 것인지 종합적으로 고려하는 일이다.



선물도 구조화될 수 있다


생각의 출발은 『도쿄의 디테일』에서 본 장면이었다.


- 아코메야 도쿄: 제품 정보 설계

쌀의 종류가 격자 형태로 진열되어 있고, 각 칸마다 쌀의 특징을 설명해 두었다.

정보 전달을 통해 누구에게/어떤 상황에서/어떤 의미로 선물할지를 고객이 판단하도록 돕는 구조였다.


스크린샷 2025-11-18 오후 9.49.42.png 출처: 『도쿄의 디테일』, 생각노트, 2018


- MoMA 디자인 스토어: 관계를 카테고리화한 선물 코너

For Him / For Her / For Kids 라는 세 가지 카테고리가 나뉘어 있다.


For Him: 검은색 배경에 책, 시계, 디자인 소품 등

For Her: 붉은색 배경에 그릇, 컵, 가방 등

For Kids: 초록색 배경에 장난감, 인형, 아동용 책 등


카테고리 구조는 관계와 상황을 고려한 선택지를 미리 제시하는 방식이었다.

고객은 '누구에게 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카테고리를 선택하고, 가격대와 취향을 조합하면 됐다


스크린샷 2025-11-18 오후 9.49.51.png 출처: 『도쿄의 디테일』, 생각노트, 2018


쌀은 포장·지역성·정보 제공으로, MoMA에서는 카테고리·관계·취향으로 구조가 드러났다.

선물할 때 기준을 잡을 수 있겠다 싶었고, 내 선택 방식에도 비슷한 구조가 있는지 살펴보았다.



(나름대로 정한) 선물의 기준


내가 선물을 고를 때 떠올리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비용 – 얼마까지 쓰는 게 편안한가?

선물의 가격은 관계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너무 비싸면 받는 사람이 부담스러워하고, 너무 저렴하면 성의 없다는 오해를 받는다.

나는 관계와 상황에 따라 이렇게 구분한다.


지인, 동료: 2~3만 원대

친구(근황을 아는 사이): 3~5만 원대

가족, 가까운 사이: 5만 원 이상


2) 관계 – 어느 종류까지 가능한가?

관계는 선물의 범위를 결정한다.
같은 금액이라도, 어떤 거리에서 주고받는지에 따라 현실적인 선택이 달라진다.

나는 관계의 거리감을 먼저 본다.


거리감이 먼 경우: 무난한 구성 (커피쿠폰, 치킨쿠폰 등)

거리감이 중간인 경우: 일상에서 바로 쓸만한 것, 실용성 중심

거리감이 가까운 경우: 취향에 맞추거나, 현금(상품권)으로 선택권 제공


3) 맥락 – 지금 그 사람이 어떤 조건인가?

상황을 고려하지 않으면 어색한 선물이 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1인 가구: 대용량은 보관이 어려움

식단 조절 중: 디저트는 피하면 좋을 것

바쁜 직장인: 관리가 필요한 것은 처리 비용이 큼

단체 모임: 제품의 양, 나눠 먹기 쉬운 구성


맥락을 고려한 선물은 상대방의 일상에 어우러진다.

선물은 주는 사람의 의도만큼이나, 받는 사람의 상황이 중요하다.


4) 실용성 – 실제로 어떻게 쓰이게 될까?

실용성은 제품 자체가 가진 사용 구조에 관한 기준이다.
상황과 관계없이, 물건이 기본적으로 갖춘 기능성을 본다.


소비 가능: 먹거나 사용해서 없앨 수 있는가

휴대 편의: 가지고 이동해도 제약이 적은가

제품 보관: 공간·유통기한이 여유로운가

개별 포장: 사용 방식의 자유도가 높은가


실용성은 사람의 상황이 바뀌어도 유지되는 ‘제품의 기본 구조’다.


5) 의미 – 이 선물은 어떤 디테일을 보여주는가?

선물은 물건이자, 의미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행지에서 구입한 제품: 그곳에서 너를 생각했다는 신호

직접 만든 쿠키: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는 흔적

브랜드 선물 세트: 품질이 예상가능하고, 보기에도 좋은 형태


같은 쿠키라도, 직접 만든 것과 브랜드 제품은 다른 의미를 전달한다.

선물의 가치는 가격만큼, 어떤 의미가 함께 건네지는가도 중요하다.



케이스 하나: 그레인스 쿠키


그러던 중 문득 그레인스쿠키*라는 브랜드가 생각났다.

(*그레인스쿠키는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쿠키 브랜드다. )


선물을 할 때 이 브랜드를 종종 선택했는데, 왜였을까?

돌아보면, 그레인스쿠키는 여러 기준이 겹치는 드문 제품이었다.


- 가격대가 2~4만 원대로 조절이 되고(비용),

- 지인·동료·아이 있는 집 등 거리감이 다른 관계에도 무리가 없고(관계),

- 단체·어린이집·원거리 같은 여러 상황에도 잘 맞는다(맥락).

- 개별 포장과 상자는 이동·보관·소비의 흐름을 단순하게 만들고(실용성),

- 브랜드 특유의 잘 만들어진 포장이 예상 가능한 품질을 드러낸다(의미).

스크린샷 2025-11-25 오후 1.39.23.png 출처: 그레인스쿠키 홈페이지


대부분 매장이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 자리 잡은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사람들이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고르러 오는 곳이기도 하니까.
판매 공간까지 선물의 맥락 안에서 설계되어 있었다.


결국 그레인스 쿠키가 무난한 선택지가 된 이유는
브랜드 이미지보다는 선물로서의 구조가 잘 정리된 제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의 오미야게(お土産)


선물을 생각하다 보니, 일본의 오미야게로 이어졌다.

일본 오미야게는 선물 UX의 교과서 같은 존재다.


형태(소포장·휴대성)와 관계 톤(가벼운 분배 구조)이 동시에 드러나

선물이 어떤 흐름에서 작동하는지 가장 단순한 예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선물의 형태

오미야게는 대부분 소포장이다.
여러 사람에게 나눠줄 수 있고, 필요한 만큼만 열어 먹을 수 있다.
지역 특산이나 명물을 강조해 ‘어디를 다녀왔는지’가 바로 드러난다.
<도쿄 바나나> <○○지역 한정판> 같은 이름은 과자에 여행지의 맥락을 덧붙인다.


소포장·지역명·가벼운 무게는, 여행지 → 이동 → 전달까지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연결한다.


선물-관계의 톤

오미야게는 특별히 준비했다 보다는 ‘갔다 왔고, 나눠 먹자’에 가까운 톤을 갖는다.
부담을 줄이면서도 신경을 썼다는 것을 보여주는 구조다.


형태와 톤이 함께 작동하면서 오미야게는 선물이 어떻게 쓰이는지를 심플하게 보여준다.
선물은 물건 자체보다, 맥락과 관계가 겹쳐진 순간을 선택하는 경험이라는 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선물을 보는 또 하나의 방식


우리는 “좋은 선물이 뭘까?”라고 묻지만
정작 “무엇을 기준으로 고르고 있을까?”는 잘 생각하지 않는다.
기준이 없으면 선택은 매번 처음부터 다시 시작된다.


이 글은 선물을 잘 고르는 법을 제시하려는 게 아니다.

다섯 가지 기준(비용·관계·맥락·실용성·의미) 또한 정답이 아니다.

선물을 고를 때, 어떤 구조로 선택이 이루어지는지 확인해 보는 하나의 방식이다.


상황에 따라 기준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건 기준보다, 내가 무엇을 보고 판단하고 있는지를 펼쳐보는 일이다.



그 정도만 생각해봐도,

다음 선물을 준비할 때 조금 덜 막연해지지 않을까.




『일상의 UX 실험실』은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하고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사람과 제품, 시스템이 만드는 ‘좋은 경험’을 다각도로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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