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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3,000원을 더 지불한 이유

스타벅스 텀블러에서 발견한 일상의 UX

by LINEA

스타벅스 매대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짧고 넓은 머그형 텀블러 하나, 세로로 긴 텀블러 하나.
둘 다 매트한 재질에 손잡이가 있고, 색도 비슷했다. 그런데 눈은 계속 오른쪽으로 갔다.


스크린샷 2025-11-04 오후 1.38.08-side.png 출처: 스타벅스 홈페이지


원래 사려던 건 왼쪽 텀블러였지만 결국 오른쪽 제품을 선택했다.

3,000원이 더 비쌌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디자인 전공자는 아니다. 하지만 이런 감각의 이유를 찾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오늘은 텀블러를 주제로 조금 더 분석을 해보려고 한다.

이것이 바로 3,000원의 가치


모양: 비례에 따라 다른 느낌


짧은 머그형은 중심이 퍼져 있고, 긴 텀블러는 위로 선이 이어진다.
높이의 차이 같지만 시선이 머무는 방식이 다르다.


머그형은 가로로 안정돼 있고, 긴 텀블러는 세로로 정리돼 있다.

둘 다 균형 잡혔지만 인상은 다르다. 같은 기능이라도 비례가 다르면 느낌이 달라진다.

(세로는 '멀끔하네' 라면, 가로는 '날렵함이 덜하네'에 가깝다)


프린팅: 무엇을 드러내고 싶은가

한쪽은 큰 폰트로 브랜드명을 컵 전체에, 다른 쪽은 로고만 작게 표현되어 있다.


스크린샷 2025-11-04 오후 1.44.31.png

- 전자는 “나, 스타벅스야.” 하고 말을 걸고

- 후자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잖아.” 하고 가만히 있다.


글자가 많을수록 제품의 설명처럼 느껴지고, 최소한의 로고만 남았을 때는 형태 자체가 브랜드가 된다.

같은 컬러와 질감을 가져도, 어떻게 드러내느냐의 차이가 인상을 가른다.


뚜껑: 물건의 목적


뚜껑 하나가 물건의 목적을 바꿔놓는다.
머그형은 덮개에 가깝고, 긴 텀블러는 완전한 뚜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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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멍이 있는 머그는 책상 위에 두고 마시기 좋다.
반면 뚜껑이 달린 텀블러는 닫아둘 수 있기에 들고 다녀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뚜껑의 형태가 사용자의 행동에 영향을 준다.

덮개형은 지금 마시기 위한 컵이라면,

뚜껑형은 더 오래 보온이 가능하고, 이동도 되는 컵에 가깝게 느껴지지 않을까.


용량: 시각과 눈의 균형


473ml(좌)와 503ml(우). 30ml의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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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텀블러는 높이에 비해 폭이 좁아, 같은 양이라도 덜 들어간 것처럼 보인다.
실제로는 비슷한 크기인데, 눈에는 살짝 비어 보이기 때문에 용량을 늘린 듯하다.


세로로 긴 구조는 무게 중심도 높을 것이다.

손에 쥐었을 때 흔들림이 덜하도록 벽 두께나 뚜껑 무게가 조금 더해졌을 가능성도 있다.

정확한 수치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체감상 그런 보정이 들어갔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30ml의 차이는, 눈으로 보이는 안정감과 손으로 느끼는 균형을 맞추기 위한 설계에 가깝다.


제품 카피: 디테일의 차이


머그 텀블러 제품

긴 텀블러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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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문을 보면, 머그보다 긴 텀블러가 설명이 두 문장 더 길다.

(표현을 보아하니 담당자가 그걸 치밀하게 계산해 쓴 건 아닌 듯 보이지만...)

그래도 소개문구가 늘어난 만큼, '좀 더 좋은 제품인가..?' 하는 인상은 남는다.


더 낫다는 느낌


3,000원을 더 냈다. 생각지 않게.

처음엔 머그 텀블러를 고려했는데, 결국 긴 텀블러를 사들고 나왔다.


스스로 이유가 궁금해서 두 제품을 살펴봤다.
- 형태, 로고, 뚜껑, 용량, 카피.

작은 차이들이 쌓여 다른 인상을 만들고 있었다.

여러 요소가 겹치면서 ‘잘은 모르겠는데 이게 낫네’ 하는 감각을 준 것이다.


거기에 쓰임이 더해지면 돈을 더 낼 이유가 생긴다.
감각과 기능이 자연스럽게 맞물릴 때, 제품의 가치는 높아진다.


이번이 그랬다.
텀블러 하나였을 뿐인데,
디자인이 어떻게 고객의 선택을 이끌어 내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일상의 UX 실험실』은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관찰하고 기록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사람과 제품, 시스템이 만드는 ‘좋은 경험’을 다각도로 탐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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