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옌데 Mar 20. 2020

인간에게 주어진 땅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것.

2.5평의 창문 없는 고시원,
5평의 고시촌 원룸,
8평의 베란다 딸린 원룸,

12평의 투룸 빌라.

나의 다음 정착지는 어디일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좁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누굴까. 바로 교도소에 수감된 재소자들이다. 대한민국 교도소의 평균적인 방 넓이는 약 3.6평이고 보통 4명에서 6명이 나눠 사용한다. 여기서 화장실과 책상 등의 공유시설을 제외하면 재소자당 0.3평이 각각의 개인에게 허락된 공간인 셈이다. 신문지 두 장 반을 이어 붙인 것보다 조금 더 작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 -예를 들면 가리봉동의 벌집촌 등에서 기거하는 기초생활수급자- 조차도 그보다는 조금 더 넓은 공간에서 생활한다. 역시 사람은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

  교도소가 아닌 구치소의 경우에는 이보다 다섯 배 정도 넓은 1.5평의 독거실이 제공된다. 구치소는 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미결수들이 머무는 곳이다.
  내가 15년간의 브라질 생활을 마치고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일단 국내 사정을 알아보기 위해 저렴한 고시원에 들어갔다. 설계면적 2.5평의 고시원의 경우, 내가 직접 측정해 본 결과 실평수는 1.5평이다. 즉, 구치소와 고시원은 면적 측면에서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한 대상이다.


  구치소에서는 재소자들에게 하루 세끼를 제공해 주고 식판 설거지 셀프지만, 고시원은 유통기한이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쌀과 계란, 라면이 무한 제공되는 대신에 조리와 설거지가 둘 다 셀프다. 이런 면에서는 구치소가 고시원보다 낫다.

  내가 고시원에서 살던 네 달 동안에는, 국정농단 사태를 일으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퇴보시킨 박 모씨와 동급의 면적에서 살아야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건 그만큼 무거운 중죄다. 그러므로 좁은 공간에서 살아야 하는 형벌을 받게 된다.

  이 두 거주공간의 중요한 차이점을 하나 더 언급하자면, 구치소는 입소가 무료이지만 고시원은 월세가 40만 원이다. 그리고 고시원 방에 손바닥만 한 창문이 있으면 월세가 5만 원 추가된다. 마음대로 나갈 자유가 없다는 점만 빼면 구치소가 고시원보다 단연코 더 살기 좋은 공간이다.
  그 4개월 동안, 인간에게 햇빛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는지를 뼈에 새겼다.


  다음 내가 옮겨간 곳은 신림동 고시촌의 5평짜리 원룸(실평수는 4.5평)이었다. 창문이 단 하나밖에 없었던 이곳에서는 환기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바닥에 다리를 마음대로 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도  수 있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고 세상 만물의 정의는 상대적이다. 취업에 성공한 후에는 합정동의 8평 원(실평수 7평)에서 6년간 거주했다. 다행히 좋은 집주인을 만나 6년간 단 한 번도 월세와 보증금을 올리지 않고 재계약을 할 수 있었다. 넉넉하진 않아도 그럭저럭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성인 남성 한 명에게는 이 정도의 개인 공간이 적당할 수도 있지만, 반려동물이나 룸메이트를 들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옆 건물에 일조권을 빼앗기는 바람에, 한낮에도 방 안이 그리 밝지 못했다. 다음에는 꼭 환기가 잘 되고 햇볕이 잘 드는 15평 이상의 공간으로 이주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결혼을 한 지금, 나는 아내와 살림을 합쳐 홍대 인근의 12평짜리 투룸 빌라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동향이라 아침마다 햇살이 거실을 환하게 비추고, 거실과 침실과 베란다의 창문을 다 열면 환기도 흡족할 만큼 잘 된다. 서울로 이주한 지 8년 차에, 드디어 사람의 기본적인 필요를 충족할만한 환경에 도달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온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이룬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인간이 존엄성을 박탈당하지 않고 자존감을 세우면서 쾌적하게 살 수 있는 최소한의 개인 공간은 얼마인가?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그것을 6평으로 정하고 있다. 다양한 크기의 공간에서 거주해 본 나의 견해는 다르다. 최소한 그보다 두 배, 즉 10~15평 정도의 공간이 필요하다. 6평 이하의 공간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걸 금지하는 법안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5평 이상의 공간은 1인 가구에게는 사치에 가깝다. 혼자서 그 공간을 청결하게 유지하려면 많은 노동력이 요구된다. 로봇청소기 정도로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6평 이하의 공간은 절대로 1인 가구의 주거에 충분하지도, 적절하지도 않다.


  탈무드에 땅에 관한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한 농부 어느 날 악마를 나서 계약을 맺었다. 해가 뜰 때부터 질 때까지 말을 타고 달려서 돌아온 만큼의 땅을 받기로 했다. 농부는 한 뼘이라도 더 많은 땅을 얻기 위해서 하루 종일 말을 타고 달렸다. 하지만 욕심을 너무 부린 나머지 결국 돌아오자마자 기진맥진해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결과적으로 죽은 농부에게 주어진 땅은 그의 시신을 담은 관 한 짝 크기의, 한 평 남짓한 묘지가 전부였다.

  현대사회에서는 이제 그마저도 비싸다는 이유로 화장을 하여 조그만 항아리에 담아 유리 서랍에 보관한다. 심지어 그것조차도 여의치 않으면 강이나 들판에다 뼛가루를 뿌린다. 한국에서 2020년대의 오늘날을 살아가는 현대인에게는 이제 죽어서도 단 한 평의 땅조차 쉽게 허락되지 않는다.


  내가 교회를 다니지 않은지는 오래됐지만, 구약성서 레위기의 율법에 '누구든지 절대로 땅을 사고팔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는 것이 기억다. 조물주께서 이 땅에 이런 현실이 도래할 것을 수 천 년 전부터 이미 알고 계셨던 게 닐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