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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옌데 May 22. 2020

아버지가 나에게 물려주신 것은

유산과 유전이란 무엇인가

  내게 남겨진 것들, 내가 물려받은 것들에 대해 돌이켜본다.




  아버지는 한 평생 아무런 예술적 소양을 가져보신 적이 없는 분처럼 보였다. 아예 교양이 없는 분은 아니었지만, 단 한 번도 음악을 거나 노래를 흥얼거리시는 걸 본 적이 없었고, 미술이나 문학과도 담을 쌓으신 채 살아오셨다.


  전시회나 박물관은 아버지에겐 의미 없는 공간이었고, 어쩌다가 가족들과 함께 영화관이나 음악회라도  아니나 다를까 10분 만에 코를 골며 잠드시기 일쑤였다.


  문화생활이란 걸 즐기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당연히 우리 삼 남매 중 누구도 아버지 앞에서 예술의 예 자도 언급해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원래 그런 분이셨으니까.


  당신의 자녀가 어릴 때부터 그림에 흥미를 보일 때에도, 그중에서 제일 잘 그려진 그림을 골라 회사 동료분들에게 자랑 뿐, 정작 나에게는 흔한 격려의 말 한마디조차 제대로 안 하신 분이셨다.


  인생에서 예술이란 게 없어도 아쉬움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이 잘 살 수 있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내 아버지가 바로 그랬다.


  음악, 미술, 문학이 없는 삶을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나와는 완전히 정반대다. 당연히 나의 예술적 기질은 평소에 책을 즐겨 읽으시 어머니 쪽으로부터 왔겠거니 하고 짐작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20대 중반이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심각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애지중지하던 나의 베이스 기타를 팔아서 생활비에 보태는 게 어떻겠냐고. 나는 차마 한 마디 저항조차 못하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고 월세가 밀리기 시작하던 때였다. 나는 예술이란 게 인간이 삶을 지속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의식주 중 어떤 요소에도 들어가지 않는 일종의 사치재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야 했다.


  우리가 삶을 지탱하기 위해 꼭 해야 할 모든 경제 행위들을 먼저 행한 뒤에, 시간적-정신적-육체적 여유가 남아있을 때에만 비로소 문화생활이라는 사치를 부리는게 가능하다.


  한 곡의 음악을 감상하는 것도, 영화를 하나 시청하는 것도, 미술관을 관람하는 것도, 책 한 권을 펼치는 것조차도 모두 그 사람이 가진 삶의 여유로부터 나오는 것이었다. 그건 분명 일종의 특권이었다. 그리고 그때 나는, 일시적이긴 했지만 그 특권을 누릴 자격이 없었다.




  내가 한때 내 몸처럼 아꼈었던 베이스 기타와 앰프는 무심하게도 헐값에 팔려버렸다. 그 돈을 어머니께 드리면서, 나는 지나가는 말처럼 가볍게 여쭤보았다.


그런데, 우리 아버지는 왜 지금까지 한 번도 문화생활을 제대로 해보신 적이 없으세요?



  어머니는 복잡한 눈빛으로 나를 한참 동안 물끄러미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서랍 속에서 낡은 사진첩 하나 꺼내어 보여주셨다. 오래된 흑백 사진 속에는 나랑 똑같이 생 코를 가진 한 청년이,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무대 위에서 열정적으로 색소폰을 연주하고 있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전혀 물려받은 게 없었다고 생각했던 건 나만의 착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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