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 몸, 그리고 회복에 대한 오래된 질문
한 달 넘게 감기를 앓으면서 확실히 느끼는 중입니다.
몸이 아프면 공간을 대하는 감각이 달라집니다.
카페 의자의 높이가 유난히 불편하게 느껴지고, 사무실 천장은 평소보다 낮아 보입니다. 지하철 열차가 지나갈 때의 소음도 한 겹 더 크게 울립니다.
그제야 알게 됩니다. 공간은 일정한 배경이 아니었고, 몸의 상태에 따라 지각되고 즉각 재구성되며 모습을 달리하는 환경이었다는 것을요.
아프면서 자주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공간에서는 조금 덜 아픈 것 같고,
어떤 장소에서는
괜히 더 긴장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대답을 찾기 위한 생각의 실마리는 자연스럽게 건축으로 이어졌습니다.
며칠 전 출근길에 듣게 된 한 팟캐스트가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건축은 사람을 치유할 수 있을까.
Can Architecture Heal Us?
조금 과장된 물음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 이 질문은 건축 역사에서 매우 오래된 질문입니다.
건축은 오랫동안 건강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습니다.
특히 20세기 초 근대 기능주의 건축은 빛과 공기, 위생을 해방의 언어로 사용했습니다. 요양소와 병원, 공공주거는 몸을 회복시키기 위한 장치로 설계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핀란드의 파이미오 요양소(Paimio Sanatorium)입니다. 알바 알토(Alvar Aalto)는 이 요양소를 “치유를 위한 기계”로 설계했습니다. 침대에 누운 환자의 시선을 기준으로 천장을 기울였고, 소음과 눈부심을 최소화했죠. 이 시기의 건축은 적극적으로 개입했고, 치료를 목표로 했습니다.
그러나 한계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건강은 규범이 되고, 공간은 사람의 행동을 교정하는 장치가 되기 쉽습니다. 치유가 관리로 바뀌고, 보호가 통제로 이어지는 순간들이 나타나면서 아픈 몸은 보호받는 동시에 끊임없이 관찰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사회과학은 오래전부터 이 문제를 경고해 왔습니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병원, 학교, 감옥과 같은 근대의 제도적 건축을 분석하며, 공간이 어떻게 몸을 규율하고 정상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건강은 언제든 규율의 언어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아픈 몸은 보호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관리의 대상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문제의식 위에서, 오늘날의 ‘치유하는 건축’은 다른 질문을 던집니다.
어떻게 하면 돕되 강요하지 않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돌보되 규정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전환이 나타납니다. 덴마크의 도르테 만드루프(Dorte Mandrup)가 설계한 공공 건강 센터는 병원을 닮지 않았고, 치료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습니다. 대신 일상적인 장소처럼 느껴지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들어와도 되고, 머물러도 되고,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괜찮은 공간입니다.
이 건물의 핵심은 ‘넛지’라는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잘 알려진 것처럼 넛지는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와 캐스 선스타인(Cass Sunstein)이 제시한 개념으로, 강요하지 않고 선택의 구조를 바꾸어 행동을 유도하는 방식입니다. 무엇을 하라고 말하지 않고, 선택의 환경을 조금 바꾸는 전략이죠. 건물에서 엘리베이터는 눈에 잘 띄지 않게 배치되고, 계단은 자연스럽게 걷고 싶어 지도록 설계됩니다. 운동하라는 말은 없지만, 몸은 스스로 반응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 부담이나 훈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건강은 여기서 의무가 아니라 가능성으로 존재합니다. 사람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하는 존재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선택이 과연 어디까지 자율적인 것인지, 혹은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작동하는 또 하나의 통제는 아닌지에 대해서는 별도의 논의가 필요합니다.)
공공성에 대한 태도 또한 인상적입니다. 이 공간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누구도 과하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넓은 공간은 서로의 존재를 느끼게 하면서도, 각자의 거리를 존중합니다. 함께 있지만, 침범하지 않는 상태입니다.
도시 이론에서도 이와 유사한 통찰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도시를 오래 관찰해 온 이들은 건강한 공간의 조건으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를 이야기해 왔습니다. 일례로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건강한 도시가 작동하려면 사람들이 목적 없이 머무를 수 있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계획되지 않은 만남, 느슨한 관계, 예측 불가능한 체류. 만드루프가 설계한 건강 센터에서 사람들이 계단에 앉아 쉬고, 프로그램이 끝난 뒤에도 자연스럽게 다시 모이는 모습은 그런 공간이 실제로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건물에 대해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따로 있습니다.
팟캐스트 속에서 건축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다시 방문했을 때 한 여성이 계단에 누워 잠들어 있었는데, 아무도 그녀를 깨우지 않았고, 아무도 문제 삼지 않았다고요. 그 모습을 보며 이 공간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이죠.
이 장면은 많은 것을 말해 줍니다. 공공 건축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태’가 허용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러나 회복은 종종 바로 그 순간에서 시작됩니다. 긴장이 풀리고, 몸이 스스로를 방어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에서 말입니다.
감기몸살을 앓는 지난 한 달을 돌아보면, 저를 가장 회복시킨 공간은 병원이 아니었습니다. 조용히 마음 편히 앉아 있을 수 있었던 집안 한구석, 또는 잠시 스쳐가는 중이라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시 멍하게 있어도 괜찮은, 그런 자투리 공간들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몸이 조금 느슨해졌고, 숨이 조금 더 깊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처음의 질문이 자연스레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건축은 우리를 낫게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건축은 우리가 스스로 회복할 수 있도록,
얼마나 조용히 자리를 내어줄 수 있을까,
라는 질문으로요.
치유는 언제나 눈에 띄는 변화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 이미 시작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말이 멈추고, 요구가 사라지고, 몸이 자기 리듬을 다시 찾는, 한 번쯤은 다들 경험해 보았을 그런 시간입니다.
어쩌면 건축이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무언가를 더하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설명을 줄이고, 지시를 거두고, 판단을 비우는 일, 뭐 그런 종류의 일 말입니다. 그렇게 남겨진 빈자리에 사람의 몸과 시간이 천천히 스며듭니다.
건축은 그저 거기 있습니다.
앞서 나서지 않고, 뒤에서 밀지 않으며, 조용히 자리를 지킨 채로.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회복은 아주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아마도 그렇게-
예, 그렇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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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 Alvar Aalto, Paimio Sanatorium, 1933
• Michel Foucault, 『감시와 처벌』
• Henri Lefebvre, 『공간의 생산』
• Richard Thaler & Cass Sunstein, 『넛지』
• Jane Jacobs, 『미국 대도시의 죽음과 삶』
• Danish Architecture Center, Let’s Talk Architecture Podcast
• Centre for Health, Copenhagen (Dorte Mandrup Arkitek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