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읽는 건축

건축은 언제 완성되는가

― 중세 대성당이 던지는 질문

by 이민정

우리는 흔히 위대한 건축에는 위대한 건축가가 있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나의 통일된 비전과 완결된 설계, 그리고 그것을 관철한 단일한 의지가 있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중세의 건축을 살펴보면 이러한 믿음은 쉽게 흔들립니다.


오늘날 우리가 떠올리는 의미의 ‘건축가’는 비교적 최근에 형성된 직업 개념입니다. 설계를 전문적으로 담당하고, 시공과 분리된 채 아이디어를 생산하며, 개인의 명성과 저작권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건축가는 18세기 이후 점차 등장하여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전문직으로 제도화되었습니다. 중세 유럽의 대성당 건설은 이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중세의 건축 현장에는 오늘날 의미의 건축가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석공, 목수, 유리공, 기술자들이 있었고, 이들을 총괄하는 인물로 마스터 메이슨(master mason) 혹은 마지스터 오페리스(magister operis 단일 프로젝트 담당자), 마지스터 오페라룸(magister operarum 복수의 프로젝트 담당자)이 있었습니다. 설계와 시공을 분리하지 않은 상태에서 구조 판단, 현장 관리, 장인 조직을 동시에 담당한 역할. 설계자는 현장에 있었고, 만드는 과정 자체가 설계의 일부였습니다.


이 시기의 설계는 오늘날과 같은 완결된 도면에서 출발하지 않았습니다. 간단한 스케치나 기하학적 기준선, 목형(template)은 존재했지만, 건축은 현장 판단과 축적된 경험에 따라 조정되며 진행되었습니다. 지식은 문서보다 손과 몸에 남아 있었고, 건축은 하나의 완성된 작품이라기보다 시간 속에서 계속 수정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설계와 시공, 아이디어와 노동의 분리는 중세의 방식이 아니라 근대 이후에 형성된 구조입니다.


또 하나의 오해는 중세의 대성당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계획으로 지어졌다는 믿음입니다. 실제로 대부분의 성당은 수십 년, 때로는 수백 년에 걸쳐 건설되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중세 건축의 방식은 과거의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죠. 오늘날에도 여전히 완공되지 않은 채 이어지고 있는 성당이 있습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입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중세 건축은 아니지만, 한 세대를 넘어 이어진다는 점에서 중세 대성당의 건설 방식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 성당은 19세기말 안토니 가우디의 구상에서 출발했지만, 그는 생전에 건물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이후 수많은 건축가와 장인들이 그의 흔적을 해석하고 계승하며 공사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사그라다 파밀리아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시간 속에서 누적된 선택들의 결과입니다. 누군가의 설계가 끝나고 다른 누군가의 해석이 시작되며, 건축은 하나의 완결된 결과물이 아니라 지속되는 과정으로 남아 있습니다. 이러한 사례는 묻습니다. 건축이란 과연 언제 완성되는 것인지, 그리고 ‘짓는다’는 행위는 어디까지를 의미하는 것인지를 말입니다.


다시 중세로 돌아가볼게요. 건축 과정 가운데 계획은 바뀌고, 지역 공동체의 의견과 후원자의 의지, 기술 조건의 변화가 개입합니다. 이러한 변화의 계기 가운데 가장 결정적인 것은 종종 화재와 같은 파괴였습니다.

일례로 1170년, 영국 잉글랜드 캔터베리 대성당에서 토머스 베켓이 제단 앞에서 살해됩니다. 그의 죽음은 개인적 비극이 아니라, 당시 사회를 관통하던 권력 구조의 충돌을 드러내는 사건이었습니다. 베켓은 원래 국왕 헨리 2세의 최측근으로, 왕의 재상으로서 세속 권력을 대변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1162년 토마스 베켓으로 임명된 이후 그는 왕이 아니라 교회의 입장에서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토머스 베켓의 순교(1170), 출처: 『The Island Race』, 윈스턴 처칠 저, 티모시 베이커 요약.

갈등의 핵심은 사법권에 있었습니다. 헨리 2세는 성직자 역시 왕의 법정에서 재판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베켓은 성직자는 교회법에 따라야 한다고 맞섰습니다. 이는 단순한 법적 논쟁이 아니라, 교회가 왕권으로부터 독립된 권위를 가질 수 있는가를 둘러싼 문제였습니다. 베켓은 왕이 추진한 교회 통제 정책을 공개적으로 거부했고, 그 결과 망명과 복귀를 거치며 갈등은 더욱 격화됩니다.


1170년, 베켓이 캔터베리로 돌아온 직후 상황은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왕의 분노 섞인 발언을 계기로 네 명의 기사들이 대성당 안으로 난입했고, 베켓은 제단 앞에서 살해됩니다. 이 사건은 곧바로 순교로 받아들여졌고, 베켓은 성인으로 추대됩니다. 그의 무덤은 유럽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중심지가 되었으며, 캔터베리 대성당은 종교적·공간적 위상이 크게 변화하게 됩니다.

순교자가 된 그의 무덤은 유럽 전역에서 순례자들이 모여드는 중심지가 됩니다. 그리고 1174년, 그의 죽음 이후 불과 몇 해 지나지 않아 대성당 동쪽 구역이 대형 화재로 크게 파괴됩니다.

조너선 포일(Jonathan Foyle)이 그린 캔터베리 대성당 동쪽 구역 컷어웨이 드로잉

이후의 재건 과정은 수도사 제르바이스(Gervase of Canterbury)의 기록에서 비교적 상세히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기록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설계했는가 보다, 재건을 둘러싼 논의와 합의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입니다. 캔터베리의 재건은 단일한 천재의 구상이 아니라, 여러 이해관계와 기술적 판단이 충돌하고 조정되는 과정이었습니다.

재건을 위해 초빙된 인물은 북프랑스 상스(Sens) 출신의 장인 윌리엄 오브 상스(William of Sens)였습니다. 그는 도착 직후 새로운 설계를 제시하기보다, 며칠 동안 불에 그을린 벽과 구조를 면밀히 살폈습니다. 이후 노르망디 캉(Caen)에서 석재를 조달하고, 운반과 가공을 위한 장비와 목형을 준비하며 작업을 시작합니다. 설계는 완성된 도면이 아니라, 현장에서의 결정과 준비 과정을 통해 구체화되었습니다.

윌리엄 오브 상스

윌리엄 오브 상스는 구조와 기술을 이해하고 현장을 통제하는 인물이었지만, 작업 도중 비계에서 추락하는 사고를 당해 끝까지 공사를 마치지 못합니다. 이후 재건은영국인 장인 또 다른 윌리엄, 이른바 윌리엄 더 잉글리시맨(William the Englishman)에 의해 이어졌고, 1181년경 동쪽 끝이 완성됩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설계는 유지되었으나, 중단과 계승의 흔적은 건물 곳곳에 남게 됩니다.

캔터베리 대성당 동쪽 구역(East End)

캔터베리 대성당의 동쪽 구역은 하나의 거대한 성물함처럼 구성되었습니다. 이전까지 성인의 유해는 대체로 지하 크립트에 안치되었지만, 여기에서는 성물이 시각적으로 드러나는 위치로 상승합니다. 제단은 높아지고, 공간은 단계적으로 위로 전개되며, 높은 창을 통해 빛이 내부로 유입됩니다. 건축은 이곳에서 신학적 의미를 공간적으로 구성하는 장치가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가 모두에게 즉각적으로 환영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중세에서 ‘새로움’, 즉 노비타스(novitas)는 언제나 긍정적인 개념은 아니었습니다. 새로움은 종종 전통에서의 이탈이나 위험한 실험으로 받아들여졌고, 공동체 내부에는 기존 형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존재했습니다. 중세의 건축은 파괴와 보존, 전통과 변화 사이의 긴장 속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중세의 건축은 완결된 하나의 작품이 아니라, 오랜 시간에 걸쳐 이어진 과정이었습니다. 하나의 설계가 끝나면 또 다른 해석이 시작되고, 건축은 세대를 건너며 형태를 바꾸었습니다.


건축을 이해한다는 것은 형태를 감상하는 일이 아니라, 그 건물이 아직도 삶 속에서 생동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일입니다. 중세의 대성당은 오늘날에도 우리에게 묻습니다. 건축은 완성되는 대상인지, 아니면 시간을 품은 채 계속 지어지는 존재인지를 말입니다.


참고문헌

1. Peter Kidson, “Gothic Architecture: Problems of Definition”, Journal of the Society of Architectural Historians.

2. Robert Branner, Gothic Architecture, Yale University Press.

3. Paul Frankl, Gothic Architecture, Yale University Press.

4. Otto von Simson, The Gothic Cathedral, Princeton University Press.

5. Gervase of Canterbury, The Historical Works of Gervase of Canterbury (trans. William Stubbs).

6. Jean Bony, French Gothic Architecture of the 12th and 13th Centuries, University of California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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