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탈북자 친구 진옥(가명)으로부터 점심식사 초대를 받아 그녀가 사는 곳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녀는 부산의 끝자락,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산등성이의 어느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었다. 어림잡아 20년을 부산에서 살았지만 내가 사는 곳에서 두어 시간이 걸리는 그 지역은 길이 멀어 가 본 적이 없었다. 지하철역을 나오자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가 너무도 생소했다. 신도시의 현란한 세련미가 뿜어내는 비릿한 어지러움은 느낄 수 없었다. 바람이 불었고, 간간이 보이는 모래둔덕에 날아 앉은 갈매기가 내가 사는 부산이 바다의 도시라는 것을 확인해 주었다. 보랏빛 수정 원석처럼 커다란 덩어리들이 삐죽빼죽 땅에서 솟아난 듯한 아파트들이 그리는 미로의 정원을 지나자 작은 섬들이 내려다보이는 언덕 끝에 달했다. 그렇게 찾아간 그녀의 집 앞. 초인종을 누르자 온 가족과 친구들이 현관으로 쏟아져 나오며 나를 맞았다.
15평쯤 되는 자그마한 아파트에 살고 있는 진옥. 이 집은 그녀의 상 차림새만큼이나 꾸밈이 없었다. 곱상하게 생긴 유리병에 담긴 장미향 디퓨저를 든 내 손이 어색했다. 2평쯤으로 보이는 좁은 거실에 어른 일곱 명이 상 하나 둘레로 모여 앉았다. 맞은편에 앉은 진옥의 등 뒤로 거실 한자리를 차지한 커다란 냉장고가 인상적이었다. 함께 앉은 진옥과 그녀의 언니는 자연스럽게 ‘남한’에서의 삶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렇듯 삶의 이야기는 장소와 집 이야기에서 시작한다. 고향과 탈북 전까지 가족과 함께 살던 집의 풍경. 대기근 때 굶주림으로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회상 등, 영화나 소설 속에서나 보고 들을 법한 믿기지 않는 이야기들에 정신이 아득해질 때 즈음 벌써 저녁시간이 다 되었다는 것을 깨닫고 또 만나자는 인사로 다음을 기약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이 어지러웠다. 한편으로는 그녀의 고단했던 삶의 여정이 희미하게나마 그녀의 눈물에서 느껴졌기 때문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돌봄도, 돌아봄도 없었던 철저한 무관심함에 투명하게 방치된 이웃의 모습이 감사를 모르는 나의 일상에 겹치며 생경하게 드러난 나의 굳은 시선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을 것이다.
진옥과 이야기를 나눌 때 문득 천상병 시인의 <우리집 뜰>이 떠올랐다.
서울과 의정부가 맞붙은 곳에
자리 잡은 이 집은 가난한 집이다.
그래도 뜰은 볼 만하다.
감나무와
버드나무와
무궁화 꽃이 피며
이름도 모를 잡나무가 있다.
장모님과
여고 삼 년인 영진과
마누라 그리고 셋방 든 홍 씨와
합해서 일곱 명이 살고 있는 이 집은
뜰로서 부끄럽지 않다.
언제나 푸르고 녹색인 뜰
맑고 곱고 아담한 뜰
나는 생각나면
이 뜰에서 쉰다.
그 포근함이여
깨끗한 공기여.
한 사람의 일생은 늘 집과 함께이다. 집은 사는 곳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좁고 볼품없는 집이라 할지라도, 아무리 가난하고 아픈 시간이라 할지라도 집의 기억에는 삶이 묻어있기에 그 향이 짙고 풍성하며, 돌아볼 시 마음의 쉼을 허락한다. 감나무와 버드나무와 무궁화꽃, 무명의 잡나무가 자리 잡은 맑고 고운 뜰, 시인의 마음이 머물러 쉬어가는 포근한 뜰은 시인의 기억과 상상 속에서 언제나 푸르러 바야흐로 시(時)가 된다.
진옥은 담담히 이야기를 이어가다 어느새 눈물을 뚜닥뚜닥 흘리기 시작했다. 새로이 정착한 사회에서 느끼는 소외감은 바로 ‘이것’ 때문이라고 어느 하나를 콕 집어 말할 수 있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그녀가 시인한 바와 같이 큰 부분은 집에 대한 그녀의 기억과 현재의 삶 사이에 난 깊은 골 때문이리라. 집에 대한 기억은 온몸에 엉겨 붙은 삶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에 대한 정서적 반응 등 심리적 현상까지 복합적으로 포괄한다. 이에 사람들은 일탈이나 휴식을 위해 짧은 시간 타지나 이국으로 여행을 가기도 하고, 갑작스레 삶의 환경이 바뀔 때 우리는 문화충격을 경험하거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기도 한다.
‘새터민’으로서 '다문화가정'으로 분류되어 남한에 정착한 지 6년째라는 진옥. 주택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이웃과의 자연스러운 식사와 어울림이 많은 북에서의 생활이 몸에 익은 탓에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남한 사회에서 적응하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아파트 중심 사회에, 엘리베이터에서조차 이웃들을 보아도 눈길을 거두는 일이 많고 인사를 나누는 것이 어색하다는 것이다.
집과 삶의 방식에 대한 몸의 기억은 떨어질 수 없다. 이에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에 대한 사유한다는 살아온 삶을 대하는 기억으로 지속되는 과거에 대한 태도이자 살아갈 삶을 마주하는 지금에 있어 미래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는 것과도 같다. 만약 진옥이 집을 짓기 원한다면 그녀는 적어도 지금 그녀가 사는 곳 같이 짓지는 않을 것이다. 집 지음은 삶 지음과 직결된다. 일찍이 폐허가 된 영국 의회의사당을 다시 지을 것을 약속하는 1943년 연설에서 윈스턴 처칠이 했던 “우리가 집을 짓지만, 다시 그 집이 우리를 짓는다(We shape our buildings, thereafter they shape us).”라는 말은 그래서 70여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몸을 누이고 음식을 나누며 살아가는 집과 일상생활이 이루어지는 삶의 세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정해진 관계들 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습관적으로 행한다. 하던 대로 행하고, 보던 대로 보고, 듣던 대로 듣는 반복적이고 동일한 관계. 그 속에는, 그러나, 매 순간 결코 같을 수 없는 삶의 순간들이 품는 우연성이 숨어있다. 어제 본 하늘이 오늘의 하늘과 같을 수 없으며, 어제의 출근길이 오늘의 출근길과 같을 수 없다. 하물며 화병에 꽂힌 꽃도 실은 눈에 띄지 않게 매일 시들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일상생활의 반복적 흐름이 갖는 동질성으로 인해 매 순간의 비동질성, 즉 시선과 의식의 습관적 운동을 거두는 찰나에 일어날 수 있는 무한한 열림에 무심할 때가 많다.
건축에 있어 전통을 다룸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물려받는 것, 지속되는 정신과 사유의 방식이 지니는 관성의 힘에 의해 익숙한 시선을 타고 습관적으로 형태를 반복하거나 건축 요소들을 부분적으로 취하여 재현해내기는 쉽다. 반대로 전통을 등지고 미증유를 찾아 혹은 이것 아닌 다른 무엇을 향한 현실부정적 열망을 업고 빠른 속도로 나아가는 현대의 기술 혹은 미래의 비전에 심취해버리기도 쉽다. 어느 쪽에 의지하더라도 전에 없던 덩치 큰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수는 있겠지만, 사람들의 기억과 공감하며 그들의 정서를 더욱 넉넉하게 하는 건축은 기대하기 어렵다. 습관적인 몸과 의식의 운동을 멈추고 동일한 것에서 새로운 것을 보게끔 하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대지와 맥락을 돌아보고 사람을 향한 돌봄의 시선에서 나오는 건축가의 통찰력에 의해 가능하다. 그만큼 건축가의 시선은 중요하다.
모든 사람은 풀과 같고, 그들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에 핀 꽃과 같다. 언제 올지 몰랐듯 언제 갈지 모르지만 ‘더불어 삶’으로 쌓여간 서로에 대한 기억은 마음에서 마음으로, 정신에서 정신으로 이어져가며, 그것의 전해짐으로 우리 존재는 들꽃처럼 이어진다. 사람의 집을 짓는다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늘 반복되고 같아 보이는 임의적 관계들 너머에서 기억 덩어리들이 그려내는 어른거림을 통찰하는 것, 그리하여 풀의 푸르름과 들에 핀 꽃의 아름다움이 그대로 지켜지면서도 주변과 함께 어울리게끔 필연적으로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일 것이다. 건축가의 통찰력은 땅의 기억을 돌아보게 하고 주변을 돌보게 한다. 이 시선에 건축가의 정서가 다시 켜 입혀지고, 이것이 거주자, 지역민과 공감대를 형성하면 건축은 삶의 배경적 공간에서 삶의 예술, 삶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는 시(時)로 거듭난다. 사람의 집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