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 MSG 스피어돔에서 발견하는 시원의 형태
건축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서로 다른 성질을 지닌 재료들이 모여, 그것들이 원래 지닌 특성과는 전혀 다른 공간의 형태로 태어나는 구축의 과정에 이야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각기 다른 색깔과 성질의 실을 어떻게 조합하여 어떤 패턴으로 짜는지에 따라 서로 다른 디자인의 옷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건축도 어떤 재료들을 어떻게 조합하여 어떤 목적, 어떤 분위기의 공간으로 만드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물이 등장합니다. 그러한 과정 중에 있었던 모든 고민들과 가능했던 선택의 갈래들, 그리고 그 가운데 내린 수많은 결정들이 건축 형태에 이야기로 스며있습니다. 이야기가 곧 의미입니다. 비슷한 재료를 사용했던, 예전에 있었던 유사한 공간, 그리고 그와는 다른 지금의 공간- 각기 다른 공간에 의미가 있는 이유입니다.
건축의 의미에 접근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재료와 재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형태에 집중해 보는 것입니다. 각 재료의 색, 질감, 강도 등 서로 다른 물성이 주는 느낌을 인식하고 이들에서 차가움, 따뜻함, 섬세함, 둔탁함, 가벼움, 무거움.. 섬세하게 하나하나 짚어가면 여러 감각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감각은 기억을 불러일으킵니다. 새로운 기억을 만들어내기도 하지요. 기억에서 역사가 소환되고, 기억에서 새로움이 만들어집니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문화권마다 친숙한 재료들이 다르고, 친숙한 건축구조, 구축 방식, 그리고 이들이 표상하는 바가 다릅니다. 그 가운데 일부는 인류보편적인 것도 있을 수 있고, 반대로 아주 특수하여 한두 집단에서만 통용되는 것도 있을 수도 있습니다. 마치 언어처럼 건축이 기호가 될 수 있고, 혹은 더 깊은 차원으로 내려가면서 국가, 사회, 집단, 개인 등 관계를 정의하는 여러 차원에서 정서적으로 교감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는 지점입니다.
저는 요즘 동그란 형태의 건축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 -바로 얼마 전이죠- 올해 7월 초대형 공연장 MSG 스피어 돔이 등장했는데요. 세계에서 가장 큰 구체 건축물로, 무려 3조 원을 투입했고, 높이는 112미터 지름 157미터에 달한다고 합니다. 건물 외벽 전체에 하키 퍽 크기의 LED 120만 개를 설치해서 놀라운 연출들을 보여 주는 걸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고 있어요. (참고로 현재 런던에도 똑같은 걸 지을 예정이고, 우리나라에도 경기도 하남시에 2025년에 착공하여 2028년에 준공을 목표로 협약을 체결해둔 상태라고 해요.)
미국 독립기념일에 맞추어 처음으로 조명을 켜고 대중에게 알려진 이 대형 돔을 보면서 서양건축사에서 돔 구축의 역사를 짚어보자 생각했고, 돔의 평면에 나타나는 동그라미에서부터 시작하여 옛날부터 지금까지 건축에서 어떤 의미를 담고, 어떤 방식으로 구축되며 변화해 왔는지를 살펴보고 있어요. 제가 연구하는 부분들 가운데 일부를 몇 차례에 걸쳐 여기 공유할까 합니다. 이 글은 그중 첫 번째로, 근원적 형태로서 원, 삶과 죽음 가운데 죽음과 관련된 원형 건축물을 살펴봅니다.
인간이 동그라미, 원의 형태를 이용한 것은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왜 동그라미일까요? 학자들은 원이 태양면(Sun’s disk)을 닮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인간의 삶에 동그라미가 있었던 흔적은 자그마치 기원전 약 4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살았던 중기 구석기시대, 프랑스 도르도뉴 지방의 문화 무스테리안 문화에서는 다양한 크기의 붉은 원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돌 공, 반구형 구멍들은 노르웨이에서 몰타까지 광범위하게 발견됩니다. 인간의 원시 주거형태도 원형 오두막이었습니다. 동서양 나눌 것 없이,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주거 평면 형태입니다. 선사시대 사람들은 삶의 공간을 원형을 기본으로 꾸민 것에서 그치지 않고, 사후 세계의 주거 공간인 무덤도 원형을 기본으로 만듭니다.
토로스는 큰 입구와 코벨 쌓기로 축조한 높은 내부공간을 지닌 건물을 말합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토로스는 영웅들과 신을 모시는 신전으로 발전했습니다. 그래서 서양건축사에서 토로스는 주검과 관련된 제례의식들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사실 어떤 모양이든 기하학적 형태 자체에 의미가 있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기하학적 형태의 수학적 정의를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듯, 동그라미는 동그라미, 네모는 네모일 뿐입니다. 의미는 인간이 부여한 것입니다.
원형은 다양한 의미를 갖고 지속되었으나 주된 기능은 항상 종교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토로스는 죽음 및 사후세계의 개념과 결합한 기념비적 구조물로 넓은 의미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만, 그보다 더 상세하게 중요성을 밝히긴 어렵습니다. 추정하건대, 아마도 원시 인간의 주거공간 평면이 둥근 형태였기에 원형 평면을 가진 토로스의 형태 또한 하나는 삶, 다른 하나는 죽음으로 종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토로스와 함께 돌고 도는 삶과 죽음을 상징하는 것들이 또 있습니다. 옴파로스(Omphalos)와 보스로스(Bothlos)입니다.
옴파로스는 일부 세대에는 꽤나 익숙한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1990년대인가 국내에서 유행했던 캐주얼 패션 브랜드 중에 '옴파로스'라는 브랜드가 있었기 때문이에요. 사실 옴파로스가 어떤 경유로 20세기 패션 브랜드의 이름이 되었는지는 저도 궁금해지긴 합니다. (아시는 분 있으시면 알려주세요!)
옴파로스는 고대 그리스 신전 앞에 두던 돌을 부르는 말입니다. '배꼽', '세상의 중심'을 의미하고, 선사시대 그리스 종교에 깊이 뿌리를 두고 있어요. 고대 그리스인들은 옴파로스가 신을 만나는 통로라고 생각했고, 풍요, 번영, 부활을 상징합니다. 옴파로스는 곳곳에서 발견되는데 그리스 델포이 아폴로 신전 앞의 옴파로스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아폴로 신전 앞 옴파로스에는 여러 가지 설이 전해집니다. 하나는 아폴로가 대지의 여신인 가이아에게 힘을 인계받았는데, 이때 예언의 힘을 가진 옴파로스 돌을 같이 받았다는 주장입니다. 또, 아폴로가 죽인 피톤의 매장 고분을 표상하며, 생명을 주는 풍요의 여신을 그리면서 죽음 이후 새 생명을 주는 여신의 자궁으로 돌아가는 것을 상징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지하동굴로 들어가는 입구로, 땅 밑에 거하는 풍요의 여신의 방을 덮는 덮개라는 설도 있어요. 어느 쪽이든 생명을 주는 땅, 그리고 생이 다 하였을 때, 다시 땅으로 돌아가 부활을 기다리는 생의 순환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람. 기원과 관련한 제의 공간 중 하나인 보스로스도 흥미롭습니다.
선사시대 그리스에는 둥근돌 앞에 봉헌물을 놓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희생물을 보스로스라고 부르는 원형 구덩이에 넣고 동물의 피로 만들어진 제주(祭酒, libations)를 바쳤는데요. 우물터처럼 보이기도 하는, 돌로 둘레를 쳐서 만든 이 원형 구덩이는 미테네의 원주형 무덤 위에 형성된 거대한 규모의 환상형 제단처럼 벽돌로 쌓은 원형제단으로 발전합니다.
오늘 마지막으로 살펴볼 공간은 헤로움(heroum)입니다. 헤로움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인간과 신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demigods) 혹은 영웅들의 집으로 만들어진 토로스를 말합니다.
헤로움으로는 아스클레피온이 유명합니다. 아스클레피온은 아스클레피오스(Asclepius)에게 봉헌된 헤로움을 말합니다. 아스클레피오스는 의학과 치료의 신으로, 아폴로와 테살리아의 왕 플레기아스의 딸 코로니스 사이에서 태어난 반신반인인데요. 뱀이 휘감고 있는 지팡이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뱀은 아스클레피오스의 분신인데요. 뱀은 땅 위아래를 미끄러지듯 자유자재로 다닙니다. 일반적으로 지옥을 상징하는데, 고대 그리스인들은 뱀이 환자들의 곪은 상처와 발을 날름거리면서 의식이 없는 지하세계와 빛이 있는 지상세계를 오간다고 생각했습니다. 상처 치료가 잘 되면 빛의 세계에 머물고, 아니면 땅으로 돌아가게 되니 삶과 죽음, 지상세계와 지하세계의 경계를 자유로이 오가는 상징적 동물로 어울리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아스클레피온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봉헌된 건물인 만큼 아스클레피오스 제례의식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360-330년 사이에 지어졌으며 에피다우로스에 위치한 아스클레피온이 대표이고요. 고대 그리스 시대의 다른 여러 신전들처럼, 이곳에만 지어진 것이 아니라 여러 곳에 지어졌습니다.
자신들이 신의 혈통이라 주장했던 아스클레피아즈(Asclepiads) 가문이 뿌리를 내렸던 곳이자 의학의 아버지라고 알려진 히포크라테스의 고향인 코즈(Cos, 혹은 Kos) 섬에 있는 아스클레피온 역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에피다우로스의 아스클레이온 헤로움은 지상층과 지하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형으로 만들어진 지상층 공간은 내부와 외부가 두 개의 커다란 원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바깥쪽에는 26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둥글게 서 있고, 안쪽에는 다시 1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서 있는 형태입니다. 그 바닥은 검은색과 하얀색 마름모꼴이 나선형으로 회전하는 운동감을 표현하며, 그 아래 지하층은 미로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돌을 쌓아 만든 원형의 제단과 신전들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돔의 시초입니다만, 이러한 건축물들이 실제로 돔으로 덮이기까지는 또 한동안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삶과 죽음의 원형건축 가운데 신과 반신반인, 신화 속 영웅들의 죽음의 공간을 위주로 살펴보았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시대를 군림했던 제왕들의 원형건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